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뉴욕의 유엔본부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기증한 ‘월인천강지곡’의 활자본, 그리고 그것을 인쇄한 활자들을 복원한 조형물이 그 위용을 드러내며 전시되어 있다. 이것은 1991년 9월에 유엔에 가입한 기념물이다. <월인천강지곡>의 고본(古本)을 복사 확대한 복제품인데, 사람 키만큼 높은 유리 상자에 보관되어 있어 한눈에 띈다. 더구나 한글 활자로 된 것이기에 한국의 고유어인 한글의 독창성을 당당하게 전시하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 전시물은, 최초의 한글 활자본인 월인천강지곡을 1000년 동안 보존된다는 특별한 한지에 복원하고, 당시의 활자를 재주조하여 조형물로 전시한 것이다. 월인천강지곡은 1447년에 쓰였으니 한국의 금속활자가 1440년경의 구텐베르크(Gutenberg)의 금속활자보다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국이 막강한 한자 문화의 지배권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한글을 창제한 나라임을 만천하에 자연스럽게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월인천강지곡은 불경에 나오는 말로서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뜻은 하나의 달이 똑같은 모양으로 천(千)의 강물에 비친다는 뜻이다.
역사는 때론 소수에 의해 움직인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나라 전체의 이미지를 좋게도 나쁘게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창조는 개인의 힘이지만 그것의 결과는 국력이 된다. 최근에 살아있는 자기계발서로 평가받고 있고, 대통령이 한국 외교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극찬하며 미래문화특사로 임명된 BTS(방탄소년단), 그리고 싸이에 이어 미국의 저스틴 비버를 뛰어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튜브 구독자 수를 보유한 블랙핑크 등은 한류인 K-POP으로써 K-문화의 새로운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일제 강점기였던 100년 전 한국의 대중음악의 현실은 어떠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를 1926년 윤심덕이 불러 히트시킨 ‘사의 찬미’라고 하지만 그보다 앞선 1923년 무렵에 많은 국민들이 따라 불렀던 ‘이 풍진 세월’이라는 주장도 있다. 가사는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은 무엇이냐”로 시작하는 노래로서 원래 제목은 '희망가'이다. '사의 찬미'는 이바노비치의 왈츠곡 ‘도나우강의 잔물결’에서 곡을 흉내냈다고 하는데, 이 풍진 세월도 원작자는 영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한국인 스스로 창조적으로 작곡된 곡이 1926년경에 작곡된 전수린의 '고요한 장안'인데, 이 곡은 한국에서는 실제로 극 중에 막간 가수의 노래로 불려지고 있었던 노래이다. 전수린은 1907년 개성에서 출생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호수돈 여학교의 교장인 ‘루추부인’으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고, 어린 나이에 동요를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15세 때 송도고보를 중퇴한 전수린은 서울로 올라가 연악회(硏樂會)를 주도하고 있던 홍난파와 함께 활동하게 된다. 전수린은 한국 작곡가 최초로 ‘빅타 레코드사’에 전속되어 1932년에 '황성옛터'와 '고요한 장안'을 일본에서 발표하여 일약 유명한 작곡가가 된다.
한편, 엔카의 대부로 불리게 된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고가 마사오 작곡의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酒は 淚か溜息か)'는 1931년에 발표되었는데, 1932년에 표절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한국의 전수린 작곡의 '원정'(한국에서는 '고요한 장안'으로 발표)을 표절했다는 것이다. '원정'이 발표됐을 때 일본 박문관(博文館)에서 출판하는 잡지 '신청년'에서 고가 마사오의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가 전수린의 '고요한 장안(원정)'을 표절했다고 하는 기사(이호섭 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