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이사장의 지휘 아래 서도타령 수업을 받는 대다수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진짜 10대 학창시절로돌아간듯 하하호호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얼핏 아마추어가 들어도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들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눈에 띤 건 정말로 즐기면서 배우며, 가르치는 그들의 모습이었다.
교육을 넘어 취약계층에게 일자리 제공까지!
서도소리는 평안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불린 향토가요로 ‘수심가토리’라고도 한다. 위의 음은 흘러내리고, 가운데 음은 심하게 떨리며, 아래 음은 곧게 뻗는 특이한 가락으로 느리게 부르면 구슬픈 느낌이 드는 것이 서도소리의 특징이다. 솔아를 설립한 전미경 이사장에게 서도소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중학생 시절 처음으로 서도소리를 듣고 꾸준히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이후에는 단절된 북한 지역의 음악인 서도소리를 전통문화보존의 의미로 교육도 하고,공연도 하는 임의단체를 99년에 세운 뒤에 이후 2000년에는 사단법인을 설립했어요.” 하지만 단순히 솔아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존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일자리 취약계층인 중장년층에게도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저희는 단순히 가르치고, 배우면서 전통문화를 보존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있어요. 국악 쪽은실력은 있어도 수요가 많지 않아 장기미취업자들이 많아요. 하지만 솔아의 경우에는 2급(3개월),1급(3개월)의 교육 후에 지도자과정(6개월)을 통해 전문가를 배출하고 저희가 그 전문가를 다시강사로 채용하면서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요.” 소위 취업취약계층이라고 일컫는 중장년층부터 노년층까지 솔아의 교육과정을 통해 전문강사로 거듭나고 있었다. 실제로 솔아에는 우리나라 최고령 고용보험 가입자인 민요담당선생님 이승화씨(84)가 있다. 주위에서 젊은 사람 못지 않은 열정과 체력이 넘친다고 치켜세우자 이승화 씨는 홍조를 띠며 수줍은 듯이 야기한다. “남편이 죽고 시작한 취미활동이었는데 10년 동안 배우니깐 자연히 실력이 늘게 됐어요. 주위의 추천으로 강사를 시작한지도 1년 반이 넘었어요. 솔아는 나이 많은 저에게도 이렇게 뭔가를 할수 있다는 희망을 준 기업이에요.”
3전 4기의 도전-사회적기업
솔아는 지난해 5월 서울형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됐다. 3전 4기 도전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처음 사회적기업을 접하고 ‘바로 이거다’ 싶었죠. 사명감을 느낄 정도였어요.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기 위해서 세 번을 도전했는데 떨어지고 네 번째 만에 붙었어요. 네 번째 면접 당시 이번이 아니고 여덟번이 떨어져도 또 도전하겠다고 이야기하니 붙여주시더라고요. (웃음) 제가 처음 사회적기업을 알게 된 순간부터 저에게는 꿈이였어요. 꿈을 이룬 지금은 정말 행복해요.”
하지만 많은 사회적기업이 갖고 있는 고민으로, 수익적인 부분에서 솔아 역시도 어려움을 겪었다. 봉사의 개념으로 노인요양시설이나 청소년보호시설 등에서 펼친 공연 등은 보람은 있었지만,수입이 적어 곤란을 겪기도 했다. 또한 사회적기업에 인지도가 생각보다 낮아 강사 모집도 어려웠다. “아무래도 힘든 점은 수익적인 부분이죠. 저희의 경우 사실 따지고 보면 소수의 엘리트 전문가로 교육하는 것이 여러 명의 취업취약계층 강사를 쓰는 것보다는 지출 면에서는 나아요. 하지만 다수의사람들과 함께 할때 일하는 보람을 느끼죠.그리고 아직 사회적으로 사회적기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강사모집에 어려움이 있어요. 지난 7월 1일 성북구에서 개최한 사회적기업박람회에 참가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앞으로는 박람회 등사 회적기업을 위한 홍보가 활발히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스태프 없이 오로지 공연단만으로 치러진 해외 공연
노인요양시설부터 구민회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연을 치룬 솔아.‘어떤 공연이 가장 기억에남느냐’는기자의 질문에 전 이사장은 당시가 생각나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지난 2009년 3월에 한국-베트남 수교 17주년 기념으로 전통민속음악 교류공연을 했어요. 베트남 호치민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나름 규모가 큰 공연이었죠. 하지만 지원이 많이 부족했어요. 결국 예산을 줄이다 보니 음향이나 무대 등 스태프를 데려갈 수가 없었죠. 결국 공연 당일 공연단이 스태프까지 맡으며 공연을 진행했어요. 한사람이 공연과 스태프 1인 2역을 맡다보니 정신이 없이 진행됐어요. 자칫 실수로 이어져 무대를 망칠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어요. 다행히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4개국(한국, 호주, 일본, 태국) 총영사들의 박수갈채도 받고,베트남 TV와 잡지에도 실렸어요. 정말 공연을 위해 준비했던 힘든 시간들이 눈녹듯 사라지는 순간이었죠. 공연을 마치고 귀국할 때의 느낌은 메달을 따고 돌아온 올림픽선수처럼 금의환향하는 그런 느낌이었죠. 하지만 웬걸? 서울에 오니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웃음) 사람들이 몰라줘서 아쉽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아직갈 길이 멀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죠.”
‘보는’공연이 아닌 함께‘즐기는’공연
솔아가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는 구로구의 20여 군데의 양로원에는 아이돌 못지않은 열혈 할머니 팬들도 생겼다. 공연이 끝나면 감자나 요구르트 등 작지만 소중한 선물등도 챙겨주신다. 나이가 있어 비록 몸이 불편해도 장구자락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시는 분들도 많다. 어르신들의 인기를 사로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저희는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공연을 하려고 노력해요. 특히 마지막에는 무대에 내려와서 손도 잡고 관객과 함께 즐기며 공연을 해요. 그렇게 함께 어울리다 보면 어르신들도 흥이 나 즐거워하세요.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즐기는 공연이어서 저희를 예쁘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사회적기업’이라는 꿈을 이룬 전 이사장에게 또 다른 꿈이 있을까? 그녀에게 최종 꿈을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역시나 ‘사회적기업’이었다. “저의 최종 목표는 수익적으로 다른 곳의 지원 없이 최대한 자립해서 수익 창출과 사회 목적을 실현하는 기업으로 올려놓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희가 정부 등에 지원을 받았던 것처럼 신생 사회적기업에게 돌려주는 기업으로 거듭나고 싶어요.” 그녀의 뜨거운 신념처럼 앞으로 솔아를 통해더많은 사회적기업들이 뻗어 나갈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