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고가 마사오는 감수성이 민감한 유소년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다. 고가 마사오는 고가 마사오 예술대관『古賀政男藝術大觀』의 회고기에서 "큰 형의 가게에 60여명의 조선인이 있었는데, 나는 이들이 흥얼거리는 민요를 날마다 들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작고 1년 전인 1977년 <저 꽃 이 꽃>이란 노래에 대해 ”만일 내가 유소년 시절을 조선에서 보내지 않았다면 이러한 곡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라고 말함으로써, 한국의 정서와 전통음악이 자신의 음악적 기반이었음을 시인하였다.(김열규 글 참조) 그리고 한 때는 ‘아리랑’도 본인이 작곡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내 취소하고 사과한 사건도 있었다.
고가 마사오는 약 11년의 기나긴 청소년기를 한국에서 보내면서 음악가로서의 소질과 재능을 키워나갔다. 한국 전통의 민요나 판소리, 풍물 장단과 대중가요 등이 그의 음악적 형성에 큰 밑바탕이 되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고가 마사오의 음악은 처음 들어보는 곡이라도 마치 예전에 즐겨듣던 곡으로 착각할 정도로 멜로디가 친근한 곡이 많다. 그것은 당시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고가 마사오의 처지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어려운 생활의 연속으로서, 마치 식민지 조선의 백성과 정서적으로 동질감을 느끼게 되면서 조선의 음악에 더욱 호감을 갖게 된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것은, 후일 고가 마사오의 음악에 한국의 정서나 가락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진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소리바위 글 참조)
전수린과 고가 마사오는 어릴 적부터 같은 동네에 살면서 친교를 다져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친교는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으며 양국을 오가며 만날 때는 서로 포옹까지 하였다고 하니 꽤 친교가 두터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계가 어쩌면 서로에게 음악적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고가 마사오의 작곡이 먼저 작곡한 전수린의 곡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 또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사실, 이러한 내용들은 일본의 유행가와 한국의 유행가가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태동하고 성장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18회에서는 후지야마 이치로에 의해 도입된 크루너 창법과 소위 고부시(小節)와 우나리(으르렁거린다)로 불리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창법들이 가미되어 엔카의 창법이 갖춰지는 과정을 소개하였다. 고부시(小節)와 우나리(으르렁거린다, 떤다)는 악보에서는 표기할 수 없는 미묘한 억양이나 장단 같은 국악의 시김새를 의미하는데, 한국의 전통성악이나 트로트에서 표현하는 ‘꺾기’ ‘뒤집기’ ‘흔들기’ 등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창법을 잘 표현한 가수들이 미소라 히바리 등 한국계 일본인 가수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통성악에는 어떤 독창적인 특징적 요소가 있는 것일까?.
최근에 트로트 경연 방송에서 심사위원인 마스터들의 심사평에서 ‘꺾기’, ‘흔들기’, ‘떨기’, ‘뒤집기’ 등의 용어가 나온다. 이러한 용어는 발라드 음악이나 록음악, 혹은 재즈와 팝음악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다른 장르의 대중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트로트에서만 들을 수 있는 용어들이다. 이러한 트로트 창법의 기교(국악에서는 시김새라고 표현)는 민요나 판소리에서의 대표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꺾기’는 반음 위의 음에서 그 음으로 빠르게 흐느끼듯 내려오는 기교를 말하는데, 판소리와 민요 등 어느 장르에서나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특히 슬픈 음악인 계면조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뒤집기’는 방울목, 치는목이라고도 하는데, 일반사람들은 요들송 표현 같다고 하여 요들목이라고도 부른다. 요들송의 기교처럼 긴 한음 소리에 살짝 힘을 빼고 요들목을 소리에 얹으면서 소리를 뒤집는 기교를 말한다. 노래를 할 때 이러한 뒤집는 시김새를 적절히 사용하면 화사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아무 대목에서나 분별없이 사용하면 음악에 대한 격도 떨어지고 듣기 역겨운 음악이 된다.(서도명창 유지숙 글 참조)
트로트를 부룰 때 국악의 성악을 전공한 사람은 일반가수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기교들을 자유자재로 더 깊이 표현할 수 있지만, 오히려 트로트를 부를 때는 국악적 요소를 빼느라고 힘들어 한다. 자칫 트로트가 민요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악의 성악 전공자가 트로트를 부르게 되면 맛깔스러움을 느끼게 하는데 그 이유는 가창력, 바로 복식호흡을 통한 호흡법 등 소위 공력을 통한 수련 과정의 결과라고 생각해 본다.
노래할 때의 좋은 호흡은 고음, 중음, 저음은 물론 강약, 그리고 굵게 떠는음, 가늘게 떠는음 등 노래의 다이내믹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트로트는, 트로트라는 용어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독창적으로 개발된 세계에서 유일한 대중가요 스타일의 현대 민요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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