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2003년 10월 금강산을 다녀 온 후 후기를 조종동기회에 올린 것을 소개합니다. 언제 다시 금강산 관광길이 트인다면 다시 한번 더 가 보고 싶습니다)
지난 여름 집사람과 같이 9박 10일의 여정으로 유럽여행을 계획하였으나
갑작스런 업무관련 해외 출장과 겹쳐 동반 여행을 취소하고 나 혼자만 유럽을 다녀왔다.
아쉬웠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관광 여행은 돈 쓰러 가는 것이고 업무관련 여행은 돈 벌려고 가는 것이다.
이 두 여행을 비교하기는 좀 뭣하지만 천당과 지옥의 차이 만큼이나 다르다고 할까?
사실 업무 관련 여행은 많이 다녔지만 주로 공항에서 현장 또는 사무실 또는 공장으로만 다녔지
출장지 바로옆에 관광지가 있어도 구경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출장 중 틈새 관광은 그많은 여행중에 얼마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이번에 회사의 배려로 2박3일 동안 말로만 듣던 금강산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금강산을 처음 접한 것은 군시절 DMZ감시 비행임무를 수행할 때였다.
DMZ감시 비행임무는 전방 항공부대에서 수행하는 임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이며 통상 거의 매일 휴전선 남방 한계선 위를 2000미터 높이로 비행하며 적정을 공중에서 감시하고 이상유무를 사령부에 보고하는 것이다.
날씨가 쾌청한 날에 백암산 상공에서 금강산을 보면 봉우리 계곡까지 선명하게 보일정도였다.
보통 육안으로도 산 봉우리의 윤곽을 식별할 수 있었을 때가 많았고
더 자세히 볼려는 욕심으로 관측장교 망원경 뺏어다 정신없이 보다가 T탑을 넘어갈뻔했던 적도 있었다. (T탑 : 조종사들이 비행 중 휴전선을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철책선 남방에 설치된 월경방지 표지, 이 선을 넘으면 월경을 막기 위해 대공사격을 받게 됨)
여러 나라를 여행하였고 또 많은 산들을 보았지만 금강산보다 더 우아하고 아름다운 산은 본적이 없었다.
아시다시피 금강산은 철따라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지역은 주로 외금강 지역이다.
외금강에서 손 꼽는 곳은 아무래도 구룡연 만물상 해금강 그리고 삼일포를 대표적인 구경거리로 보고 있다.
정말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경치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 아니라 "금강산은 식전경"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산을 구경하는 동안 날씨가 좋아서 산뜻하게 온 산을 구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년 중에 산 전체를 깨끗하게 볼 수 있는 날은 흔하지 않다고 한다.
이번에 간 곳은 구룡연 만물상 삼일포를 들렸다.
그 중에도 만물상이 압권이었다.
만물상을 가장 잘 볼수 있는 전망대(해발 850미터)가 좁아
한번에 30명만 선착 순으로 오를 수 있는 곳이다. 다행히 30명 안에 들 수 있어 만물상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만물상 입구 에서 돌아가야 했다.
삼일포는 호수공원이다. 일찌기 송강 정철 선생이 감탄 했던 곳인데....자연의 위대한 작품이었다.
구룡연은 금강산의 얼굴일 만큼 방송에도 자주 나오고 해서 눈에 익숙하였다.
해금강은 지난 태풍으로 진입도로가 끊어져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처음 산을 오를 때부터 내려올 때까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살아있을 때 꼭 한번은 보아야 할 산이다.그래야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변에는 북한 주민들도 살고 있고 그들의 행색이나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손을 흔들어주면 가끔씩 답례도 한다.
그들의 어려움은 언뜻 보기만해도 충분히 알수 있다.
초라한 지붕, 께어진 창, 깜빡깜빡 꺼질 듯한 백열등, 쓰러져가는 담장, 웃음끼없는 얼굴, 남루한 차림세,등 보기에도 딱하다.
주된 교통 수단은 도보이며 그중 형편이 좀 낳은 사람들은 자전거를 이용한다.
구룡연에 오르다 보면 초입에 북한에서 직접 운영하는 목련관이라는 음식점과 근처에 노점상이 있다.
노점상에는 그림 수건 나무조각 말린 산나물 건어물 각종 기념품 등이 있고 수준은 우리나라 60년대 시골장터 같지만 사람들은 순수하다.
목련관의 아가씨들은 서툴지만 손님들의 성화에도 웃음을 잃지않고 끝까지 성의껏 대접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알지 못하는 그들이 가장 난해하는 것은 돈계산이다.
미화로 음식값을 주고받으니 계산이 많이 서툴다.
그곳에서 냉면 한 그릇을 9불을 주고 먹었는데 양을 엄청 많이 담아 후한 인심을 보여주었다.
마음한편 안됐다는 생각도 들고 남한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행동이 북의 동포들에게 어떤 마음을 갖게 하였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였다.
어쨋든 그들도 우리와 같은 배달민족의 후손들이다.
남북이 같이 잘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평양 곡예단 공연도 보았는데 수준급이었고 그중에는 세계 써커스 대회에서 1등을 한 종목도 몇개 있다고 했다.
마지막에 할머니 몇분이 무대 앞으로 나가서 곡예단원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고 그 단원도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고
피를 나눈 따뜻한 동포애를 다시 한번 느끼기도 하였다.
지금 군사 분계선에서 금강산 온정리까지 인민군들이 철도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북한에서 사용되는 기름과 장비는 모두 남한에서 제공한 것이다.
불과 500여미터의 거리를 두고 남쪽은 국군이...... 북쪽은 인민군이 철도 연결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을 지나다보면 남북한의 국력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인민군들은 차림도 남루하고 덩치들도 작고 나이도 어려보인다.
더러는 자기들끼리 장난도 치고...천진난만한 아이들과 같아 보인다.
그들에게 남과 북의 정치적인 이슈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어떻튼 그들도 우리가 감싸 안아야할 우리의 형제들인 것만은 틀림없다.
동기 여러분들 중에서 금강산에 다녀온 분들도 있겠지만
한살이라도 더 젊을 때 꼭 한번 가서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관광온 노인분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니
아무리 경치가 좋아도 힘이 없으면 올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금강산에 가는 것이 마냥 퍼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동질성을 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나름데로 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남북이 통일되어 동포가 하나되는 날이 언제나 올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