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한류 이야기_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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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_03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3

-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

                                                                          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는 일제 강점기 민족문화말살정책에 의해 강제적으로 파괴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일제는 조선의 문화와 언어를 지우기 위해 내선일체内鮮一体 를 내세우며 황국신민화정책皇國臣民化政策을 추진했다. 민초들은 저항했지만 속절없이 핍박과 착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련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온갖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항일운동을 하며 한국문화를 수호하고 계승,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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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 1938년 1월 발매. 출처: 한국대중가요앨범

 이 시기는 농경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진입하는 단계로 문명사회로의 전환점이 일어나는 때이기도 하다. 농촌이 도시가 되는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지나야하니 당연히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새로운 서양문화가 유입되면서 우리의 전통음악인 민요와 판소리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민초들의 대중음악에 여러 장르의 서양음악이 영향을 끼쳤고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전통음악인 민요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음악위에 서양음악 형식을 빌리면서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창작된 시기였다. 유행가인 트로트가 그 중 하나이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천리마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백락에 얽힌 이야기에 의하면, 천리의 초원을 달렸어야 할 천리마가 주인을 잘 못 만나 소금 짐이나 메고 다녔다. 안쓰러운 마음에 백락이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주자 천리마는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여 하늘을 향해 크게 울었다고 한다. 알아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천리마는 결국 묻혀버리는 소금 짐이나 지는 소금장수의 말에 불과하다. 천리를 달려야 하는 명마가 소금 짐이나 끌며 매질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제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영민한 우리 조상들은 스스로 길을 찾는 천리마가 되었다. 유행가인 트로트를 통해 민족의식에 불을 지르고 자아의식을 깨워 도시의 문패와 번지수로 설명되는 노래를 하게 한 것이다. 이것은 새 시대의 새 가치를 담자는 창조의 의미이기도 하다. 고정불변의 전통에 갇혀 새 가치를 창조하지 못하는 유산상속자들과는 달리 새로운 시대상을 표출했다. 성도 이름도 사용할 수 없고 사는 집도 온전하지 못한 채 빼앗긴 나라의 슬픔을 노래했다.

 

그 당시에 부른 노래로 ‘번지 없는 주막’이란 제목의 가사이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궂은 비 나리 던 그 밤이 애절 쿠려/능수버들~”. 이 노래(트로트)는 문패와 번지수, 나의 집을 찾겠다는 열망과 역설적으로 민족적 자아를 드러내고 있다. 일제 강압의 이질적 문화틈바구니 속에서 그 시대의 갈등과 응축된 내면의 자의식을 각혈하듯 토해냈다.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의 가사를 보면 "울고 왔다 울고 가는/설운 사정을/당신이 몰라주면~”이다. 절망적이고 암울한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이웃과 가족을 위로했다. 17세에 부른 빅단마의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에서는 "나는 가슴이/두근거려요/당신만 아세요/열일곱 살이에요~”라는 가사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트로트는 일제 강점기의 고난을 거치면서 국민들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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