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85 ‘국악진흥법’이 ‘일천강에 비추는 달’이 되도록 기원하며
지난 주 목요일 ‘국악진흥법’ 시행을 기념하는 축하연회가 남산 국악당에서 개최되었다. 참으로 경사스럽고 국악 발전의 기대감을 갖기에 층분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아, 드디어 국악진흥법이 시행되는구나, 국악에 대한 발전을 기대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르며 주최한 정부 측에 먼저 감사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 문득 어린 초등학교 시절의 크레용 상자가 떠올랐다. 빨강, 노랑, 파랑 같은 삼원색은 많이 써서 키가 늘 작아졌었고 나머지 흰색, 검정색, 회색, 보라색 등 다른 색들은 사용되지 않아 키가 줄어들지 않은 채였다. 지금 생각하니 사용되지 않은 그 크레용들은 참으로 안쓰럽고 불쌍하였다는 생각이다.
축하연회에 인간문화재 등 국악계의 여러 선생님과 기업인, 그리고 각 단체장 등 80여 명의 많은 인사들이 참석하였다. 그렇게 많은 인사들이 참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왜 크레용 생각이 떠올랐을까? 아마도 늘 보이는 분들만 보여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것은 갖가지 나물을 넣어 만든 맛있는 비빔밥 같이 더 다양한 색깔로 그려진 축하연회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쉬움은 필자만의 아쉬움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이미 ‘국악진흥법’은 시행되고 있다. 이어령 선생은 "일색은 질색이다”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일색에 너무 치우친다. 다른 소리를 내는 사람을 배제하고 왕따 시킨다. 이는 ‘국악진흥법’이 시행되면서 가장 견제되어야 할 대목이다.
다색다양에서 창조적 상상력이 나온다. 정치, 사회가 이해에 따라 일색에 치우치다보니 양극화의 펜덤 정치가 조성되어 시국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국악진흥법’의 기본 정신은 다색다양한 창조적 상상력이 마음껏 발휘되도록 지원하여 국악발전은 물론, 한류 확산에도 기여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문화산업의 성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그런데 ‘문화산업 진흥법’을 또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바람직한 일이나 위와 같은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오히려 문화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만 더하여지거나, 특정 계충에게만 혜택이 주어질까 염려하게 된다.
국악에 종사하는 국악전문가들은 수십만 명에서 동호인까지 감안하면 100만 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중, 독특한 색채를 가지고 있는 전국의 수십만에 해당하는 단체들 모두가 ‘국악진흥법’은 우리를 위한 법이라고 실감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의 특별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으로 기대한다.
필자는 오늘로서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의 연재를 끝내려고 한다. 코로나를 극복하면서 4년 4개월 동안의 긴 여정은 박상진 한류 칼럼집 『한류 이야기』로 출간되었다. 구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의 결과로 생각하여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폭염이 지난 가을 쯤 "박상진의 국악 이야기(가칭)”라는 제목으로 다시 연재를 시작하려고 한다. 필자를 중심으로 몇 분의 인사들이 모여 ‘국악 진흥 연구소’를 설립하였다. ‘국악진흥법’이 ‘일천강에 비치는 달’이 되어 곳곳에 골고루 국악인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힘을 보태고자 한다.
세종대왕이 직접 한글로 작곡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정책 연구’ ‘콘텐츠 연구’ ‘대중화 연구‘ ’한류음악 연구‘ ’공연기획 연구‘ ’예술행정 연구‘ ’페스티벌 연구‘ ’각 지역별 정체성 연구‘ 등과 같은 어젠다를 여러 국악인들과 함께 공유하며 자유롭게 풀어가고자 한다.
"박상진의 국악 이야기”가 건전한 ‘비판’과 생산적인 ‘비평’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많은 질정(叱正)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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