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국악 이야기 2 <br>노벨 문학상의 한강과 ‘기생’의 양문석
우리나라의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스웨덴 한림원이 10일날 발표하였다. 우리나라 작가로서 노벨문학상 수상은 최초일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수상은 아시아에서 최초라고 한다. 한류의 지평이 문학으로 확산되는 것 같아서 더더욱 기쁜 일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2014년 작 ‘소년이 온다’와 4・3사건의 비극에 접근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소설을 썼다고 하여 일부에서는 한강의 노벨상 수상 선정에 대하여 떨떠름한 태도를 짓는 이들도 있는 거 같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환호하고 있으며 정치권에서도 여야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축하하고 있다. 여야가 첨예하게 다투던 국정감사장에서도 오랜만에 환호의 박수가 함께 터졌다고 하는 것은 수상 소식을 정치가 아닌 우리나라 문학 수준으로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강의 노벨상 선정 이유를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림원은 2007년 발표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하면서 한강의 작품 세계를 상세히 소개했다. 한강은 23세에 시인으로 등단하고, 그 후 25세에 소설가로 등단하면서 여러 장르를 섭렵하는 포용력을 갖추었다고 평가한다.
이렇게 노벨문학상 수상 선정 소식에 기뻐하고 있을 때 엉뚱한 ‘기생’ ‘기생집’ 관련 뉴스가 보도되었다. 양문석 의원 관련 뉴스이다.
지난 10월 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작년 4월 김건희 여사와 인간문화재 원로・문하생의 청와대 오찬 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 국악인들이 가야금 연주와 판소리 등의 간단한 공연을 했는데, 공연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이분들이 기생이냐” 공연한 청와대를 "기생집으로 만들어 놨다”는 등 연주를 착취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하며 연주자들을 기생에 비유했던 것이다. 당연히 국악계의 원로인 인간문화재 선생님들과 국악인들 여러 분이 국회의원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의하게 되었고, 사)한국국악협회에서도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양문석 의원은 억울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용어 사용을 잘 못함으로써 국악계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이다.
21세기에 연주를 착취당하는 예술가가 있다는 말인가? 서양음악을 전공하는 연주자든, 국악을 전공하는 연주자든 재능기부 성격의 연주는 비일비재하다. 국악 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직분의 대상일수록 적극적인 기회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이때 술자리 또는 밥을 먹는 자리라도 서양에서는 귀족 앞에서 연주하는 연주자를 기생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생(妓生)의 뜻이 무엇이길래 아직도 분별없이 사용되고 있는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전통사회에서는 연회나 행사에서 유흥을 담당했고, 근대사회에서는 전통 예악(禮樂)의 전문가로서 활동한 여성’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기생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은 조선시대의 신분사회와 굴곡의 일제 강점기 시대를 거치면서 왜곡된 시대의 아픔을 망각한 무지(無知)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이들 근대의 여성들은 사회의 선량한 풍속을 어지럽힌다는 혐오의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 활동을 전개하였고 독립운동에도 참여하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의 현대 국악인들은 지금까지 전통음악 발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였다.
국가에서는, 이러한 국악인들을 1962년에 ‘중요무형문화재’(2024년에 ‘국가무형유산’으로 명칭 변경) 법률을 제정하고 이들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함으로써 민족의 역사와 사상, 음악 문화적 개념이 담겨져 있는 노래와 춤, 연극, 무용, 기악 등이 지금까지 보존 전승되고 있다. 이렇게 전승된 현재의 국악은 한류 음악의 원형자산이 되어 한류인 K-컬처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강의 노벨상 선정 이유를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이라고 밝혔듯이, 국악의 인간문화재인 명인 명창들은 그야말로 기생이라는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서 싸워왔으며 거대한 서양음악 앞에서 국악은 K-컬처의 원형자산이다라는 것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양문석 의원의 발언 배경에 대해서는 따지고 싶지 않다. 다만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역사와 문화적 트라우마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양문석 의원은 사과 이후 "무소의 뿔처럼 가겠다”고 말했다. 그 말의 의미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사과 안 받아들여도 내 고집대로 가겠다’로 들릴 수가 있다. ‘무소의 뿔 ~~’은 "국악계가 사과를 받아줄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로 느껴지도록 해야 한다.
진정한 사과를 국악계에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겠다. 그것은 여야의 박정하 의원과 임오경 의원 등이 공동발의 해서 통과된 ‘국악 진흥법’과 ‘한류산업진흥 기본법’이 잘 실현되어 국악인들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는 정책 개발과 시행법, 그리고 관리 감시를 위해 문체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국악인들이 느꼈을 때 ‘기생’ 발언은 잊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