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국악 이야기 4 K-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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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국악 이야기 4 <br>K-클래식?

과천 현대미술관에는 텔레비전의 화면을 바벨탑처럼 쌓아 올린 <다다익선>이라는 백남준의 작품이 있다. 여러 개의 텔레비전 화면이 각각 다른 작품인 동시에 전체가 하나의 작품으로도 보여지고 있다. 한국의 병풍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12쪽 병풍은 1쪽(폭幅)마다 각각 다른 스토리를 보여주면서도 12폭이 모여지면 또 다른 스토리텔링의 완결성을 보여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 벽화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넓은 화면이라도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져 있다. 성당의 성화(聖畫)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중에는 물고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작품도 있다. 절 처마에 달린 풍경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이것은 백남준 자신도 모르게 한국인의 밈(meme ; 다양한 사회 현상과 문화를 설명하는 개념)이 작동한 결과물일 것이다.

 

이야기의 본론으로 가보겠다.

요즈음 일부 언론 메체나 문화 단체에서 K-OOO라는 접두어를 붙여서 K-컬처 또는 한류를 강조하려는 사례들이 많아졌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별 없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K-국악’이라는 용어 같은 것이다. 워낙에 한류 붐이 강하다 보니 ‘K’ 자를 넣어서 한국을 나타내려는 것일 것이다.

 

‘국악(國樂)’이라는 용어는 한국음악이고 어느 나라에도 ‘국악’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국어(國語)는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나라 글과 말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국악’은 한국의 음악을 일컫는 한국 고유의 전통음악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K-국악이라는 표현은 스스로 자기부정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K-클래식’이라는 말을 부쩍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 중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2024 대한민국은 공연 중 K-클래식’이 그것이다. 국립예술단체와 대표 예술가들이 협력하여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특별한 공연이라고 한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발레단,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오페라단, 그리고 KBS교향악단, 유명 성악가 등이 참여하여 다양한 장르의 클래식 공연을 경험할 수 있다고 홍보하였다. 기간은 지난 10월 22일부터 10월 27일까지였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라흐마니노프와 베토벤’, 국립발레단은 ‘해설이 있는 전막 발레 돈키호테’,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격, 한국의 멋’, 국립오페라단은 ‘오페라 페스타’, KBS교향악단은 ‘가을의 서정-쇼스타코비치, 로드리고, 드보르자크’를 연주하였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K-클래식이란 과연 무엇인가? 클래식이라는 음악을 한국식으로 작곡한 음악을 말하는 것일까? 무슨 이유로 ‘클래식’이라는 단어 앞에 ‘K’자를 붙였을까? 위의 단체에서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 곡목을 보면 분명 한국식으로 작곡한 클래식은 아니다. 그렇다면 ‘K’자가 붙은 이유는, "우리도 서양의 클래식 음악을 서양 사람 못지않게 잘할 수 있다”이든지, 한걸음 더 나아가 "아니, 어느 부분에서는 우리가 서양인보다 더 잘하는 부분도 있다”라고 호기를 부리고 싶은 것일까. 논리가 맞지 않는 것 같다. K-컬처에 숟가락 하나 얹고 싶은 것은 아닌지? 클래식(classic)의 사전적 의미는 서양의 전통적 작곡 기법과 연주법에 의한 음악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라흐마니노프는 라흐마니노프답게 연주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베토벤 음악은 베토벤답게 연주하면 최고의 연주로 인정받지 않겠는가.

 

지난 2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훈민정음 음악회가 개최됐다. [사진-사단법인 함께한대 제공].jpg 지난 2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창작 합창서사시 '훈민정음' 음악회가 개최되었다. (사진=사단법인 한께한다) 2024,10.29.


그런데 최근에 K-클래식조직위원회(회장 탁계석)가 조직되어 클래식 음악의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모색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의 한 예는 10월 29일에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한 <훈민정음>이다. 한글을 창제하는 동기와 과정을 스토리텔링 해서 작곡한 칸타타 형식으로서 서양오케스트라 편성과 몇 개의 국악기를 곁들인 대합창곡이다. 오케스트라 앞쪽 무대에서는 서서 부르는 독창자들 대신에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그리고 집현전의 학자들과 백성들의 간단한 연기를 보여주는 등 오페레타(operetta)에 가까운 연주를 보여주었다.

 

오랜만에 오케스트라와 대합창이 편성된 대규모의 창작음악을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훈민정음>이라는 쉽지 않은 소재를 선택한 도전정신을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 고무적인 사건으로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옥의 티가 보인다. 마이크를 사용함으로써 합창 소리가 오케스트라 소리에 비해 크게 들리는 앙상블 문제, 국악기가 지나치게 크게 들린 점, 가야금 소리가 엉뚱한 소리로 둔갑한 점, 목어 소리가 크고 길게 이어짐으로써 오케스트라의 피아니시모로 시작한 소리가 파묻힌 점, 연기자들의 발음이 정확하게 전달이 잘 안된 점 등을 들 수 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러한 ‘K-클래식’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양음악적 사고가 아닌 한국인의 밈이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클래식의 사전적 의미인 서양의 전통적 작곡 기법을 가급적 덜 사용하고 한국의 고유의 장단 등 전통음악의 요소들을 활용한 작곡을 하는 것이다. 서양의 벽화와 같이 하나의 벽에 모든 걸 꽉 채우려 하지 말고, 여백의 미가 특징인 한국의 병풍처럼 각각의 쪽에 스토리텔링 하되 쪽이 모이면 작품의 완결성이 느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이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한 ‘K-클래식 운동’이 서양 클래식을 흉내내지 않는 창조적 상상력으로 독창적인 K-클래식이 되어 한류 확산에 기여하기를 기원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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