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생활 12
26. 3군단, 102야전병원으로 전출
1978년 해가 바뀌고 중위로 진급하면서 3군단 본부로 발령이 났다. 나는 이 때에도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하여 밤 늦게까지 회식을 하고 다음 날 하루 늦게 출발하여 3군단 본부에 도착하여 전입신고를 하였는데 규모는 작지만 서울 가는데 교통이 좋은 205 이동외과병원 MASH (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은 하루 전날 미리 도착한 "아야 건남이', 김건남군이 이미 차지하였고 내 몫으로는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라는 오지 중의 오지에 위치한 인제 원통의 ‘102 야전병원’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나는 현리행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 중간에서 내려 병원 입구까지 한참을 걸어들어갈 때, 양쪽으로 소나무들이 쭉 늘어섰던 그 내리막 길의 오솔길이 마음에 들었고 산 속에 파묻힌 오지이지만 병원의 위치도 앞으로는 산, 뒤로는 강이 흘러 경치도 좋고 아늑한게 마음에 들고 좋았다. 당시 102 야전병원은 3군단을 지원하는 군단 소속 병원으로 150 병상 정도 규모의 꽤 큰 병원이었다. 병원내에는 3군단 소속 예하부대에 의약품을 보급하는 분창(分倉: 군대에서 의약품을 보관하고 예하의 하급부대에 의약품을 배급하는 기관, 창고, 창의 예하 기관)이 있었고 각 전문분야별로 전문의들이 진료하는 등 야전병원 치고는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병원이었다.
그 당시 병원장님은 나중에 의무감 (의무사령관) 이 된 변해공 대령이었고 그가 우리 병원 원장에서 군의학교장으로 영전해 간 뒤에는 말성꾸러기로 소문 난 안과 전문의 이치우 중령이 병원장으로 부임하였었다. 워낙 외진 곳이라 주위엔 마을도 없어서 하숙을 할 수 없었고 총각장교들은 비오큐에서, 간호장교들은 엔오큐 (NOQ : Nurse Officer Quarters) 에서, 결혼하여 가족을 데리고 온 군의관들은 군인관사에서 살았다.
간호사들은 모두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한 위관급 미혼 여성 장교들로 20 여명이 있었고 간호부장이 중령이었다. 이곳의 군의관들은 전방의 말단 대대의 의무관들처럼 의과대학을 갓 졸업하여 임상경험이 일천한, 소위 700 군의관들이 아니고 의과대학 졸업 후 전공의, 전문의 과정을 마친 전문의들이어서 나이도 30대 중반, 계급은 대위로 시작하여 1년 후 소령으로 진급한 후 2년을 더 복무하여 총 3년을 지내고 소령으로 예편하는 의사들이었다.
나는 약제과장 이지만 계급도 중위, 나이도 간호장교들 보다도 어려서 진료부에서도 아기 취급을 받았다. 진료부장님을 비롯한 간부들은 나를 '약중위' 라고 불렀다. 나를 도와 주는 약제과의 사병은 단 두 명 뿐으로 이들이 약품을 창에서 받아오면 장부에 기입하고 매일 사용하는 모든 약을 장부에 기재하여 재고를 파악함은 물론 입원 및 외래환자들의 모든 처방전을 조제, 투약하는 일까지 하였다. 따라서 각 약품마다 그날 소비한 량의 수를 더해 전체 재고에서 감하여 현재의 재고를 파악하고 있어야 하므로 매일 저녁 장부 정리도 쉽지 않았다.
입원환자들은 각 병동으로 기본적인 일정량의 약들을 미리 스탁으로 배분하여 저장하고 처방에 따라 간호장교들이 투약하였으므로 처방전은 비교적 많지 않았으나 야전병원은 근처에 병원이 없어 그 동네에 기거하는 군인가족들은 물론 심지어 민간인들의 치료를 겸하고 있었기에 그들을 치료하는 외래약국의 처방전이 많아서 매우 바빴다. 병원의 기간병들은 축소된 중대 규모였으나 각 과별로 분산배치되어 실제 가용 병력은 많지 않았고 따라서 각 과에서는 진료를 도와줄 인원이 모자라 후송되어 온 환자들 중에서 퇴원이 임박하여 건강한 환자? 들을 차출하여 일을 돕게 하였고 약제과도 한 두명 정도 환자를 뽑아서 일을 돕도록 하였다.
나는 비오큐에서 지냈는데 비오큐는 한 방을 두 사람씩 사용하게 되어 있어 나는 안과전문의 안병헌 대위님과 방을 함께 쓰게되었다. 안대위님은 서울대학교 선배님이셨는데 갓 결혼하시어 신혼이었으나 형수님께서는 서울에서 계시고 형님만 이곳에 와 계셨다. 매우 자상하고 너그러우신 분으로 한참 손 아래인 나에게 항상 존대하셨고 매우 잘 해주셨다. 안대위님과 나는 점심시간이면 나의 고등학교, 대학교 선배이신 신경외과 전문의, 차대위님과 함께 병원 뒤에 흐르는 작은 강가에 나가서 함께 도시락을 먹고 일광욕을 하거나 근처의 중국집에 소리를 쳐서 사람을 부르고 요리를 시켜먹기도 하면서 지냈다. 병원 뒤에 흐르는 작은 강은 물이 맑고 경치도 아름다워 하사관들이나 다른 장교들은 이곳에 나와 낚시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