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생활 6
13. 한 밤중에 완전군장으로 산꼭대기까지 달려가다.
내가 의무지대장으로 취임한지 두 주일도 안되어 대대 전체가 훈련 및 벙커 진지공사를 나가게 되었다.
사정을 잘 모르는 나는 의무대 선임하사에게 모든 일을 의지하여 묻고 상의하고 있었는데 모든 대대원이 산 속으로 군장을 꾸려 떠나니 나도 함께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으니 그는 의무병 몇 명만 먼저 올려 보내고 지대장님은 내일 낮에 천천히 올라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녁식사 후 의무대에서 느긋하게 책을 읽고 있는데 위생병이 갑자기 대대장님의 전화라고 하면서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 승리! 전화 바꾸었습니다” 하고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대대장님은 매우 화가 나셔서 “ 야, 군의관, 너 이 새끼, 지금 거기서 뭐하냐, 전 대대병력이 지금 산에 출동하여 산 속에 진을 치고 있는데 너희들은 거기서 놀고 있나! 당장 완전군장하고 뛰어서 올라오지 못해!” 하시고는 곁에 있으면 금방 때려 죽일 듯한 기세로 온갖 욕을 하시더니 그냥 전화를 탁, 끊으시는 것이었다. ‘ 와,이제 죽었구나’ 하고 있는데 이 다급한 상황에 대해 내 설명을 들은 우리 의무대 선임하사는 느긋하게 조언하기를, ‘완전군장은 무슨, 버릇 나빠져요, 12시 쯤 그냥 단독군장으로 천천히 산으로 올라가시라’ 는 것 이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에 당장, 선임하사가 챙겨준 권총과 탄띠를 차고 단독군장을 한 다음 완전군장을 한 통신소대장과 둘이서 4시간 이상을 밤 새워 걸어 산으로 올라갔다. 나중에 알고보니 당시 통신소대장은 충청도 출신, 나와 ROTC 동기였는데 이 친구가 성격이 느긋하고 행동도 느려 깐깐한 대대장님의 눈에는 일을 제대로 안하는 소위, 꼴통으로 매도되어서 매일 야단을 맞고 있었다고... 이 날도 대대가 움직이면 통신소대가 제일 먼저 올라가 전선을 연결하고 상급부대인 연대와 또 예하부대인 중대와 전화 연결을 해 놓아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자 대대장님이 통신소대장을 찾았고 그가 아직도 대대본부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화가 나서 전 간부를 집합시켜, 그 자리에 없는 그와 나에게 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어두운 산길을 플래쉬 라이트에 의지하여 쉬지도 못하고 뒹굴다시피 허겁 지겁 800 고지를 올라가니 새벽 4시반, 대대장 전령에게 신고하겠다니까 대대장님 곤히 주무시니 내일 아침에 하라고..
그래서 다음 날 아침, 죽을 각오를 하고 대대장님 앞에 섰는데 그는 언제 나에게 소리를 쳤는지 까맣게 잊어먹은 사람처럼, 그냥 “ 오, 그래, 군의관 왔어?” 하고는 끝이었다. 야단을 맞지 않아 좋았지만 하루 전과는 너무나 다른 그의 반응에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어안이 벙벙했었다. 군대는 그 때만 모면하면 아무 일도 없으니 그 때만 잘 피하면 된다나? 우리 선임 하사의 농담 반, 진담 반, 진심 어린 충고의 말...
14. 벙커 공사 및 대대 훈련
그 당시 산꼭대기에 진을 친 대대의 사병들은 여름 내내 산꼭대기 8부 능선에서, 흙으로 되어 있던 참호를 콘크리트를 부어 콘크리트 참호로 고치는 콘크리트 벙커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매일 아침 식사 후, 산 밑 강가에서 질통에 자갈, 모래, 시멘트 등을 가득 담아 지고는 좁은 산길을 걸어 벙커가 있는 공사현장까지 지고 올라가는 고된 작업을 하였는데, 보통 어두워질 때까지 하루 7- 8번씩 그 질통을 져 나르는 것이 일과 였다.
그리고 소수의 나머지 병사들은 거기서 콘크리트를 섞어 진지를 콘크리트로 다져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 미군들은 헬리콥터가 와서 단번에 손쉽게 무거운 공사자재들을 산 밑에서 부터 실어 산꼭대기로 날라 주었으나 가난한 한국 군인들은 이 자재들을 몸으로 지고 나르며 몸으로 때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소대장, 중대장들은 이들의 작업을 감독하는 노가다 반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공사는 일요일만 빼고 주 6일 계속되었고 비가 오면 위험하므로 공사를 쉬게되어 비 오는 날은 정비의 날이었다. 그러다가 8월 중순이 되어 공기가 예정보다 늦어지자 횃불을 켜고 야간작업하기도 하였다. 햇볕에 색이 바래지고 땀에 절은, 헤지고 찢어진 흙투성이의 옷을 입은 막노동자보다도 못한 거지 중의 상거지 같은 그들의 모습에 나는 마음이 아렸다. 그들의 부모님들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15. 충직한 전령의 이야기
그런데 우리 의무대는 밤에만 환자들을 치료하므로 낮에는 딱이 할 일이 없었다. 나는 바람도 안 부는 산 속, 더운 A 텐트 안에 혼자 있기도 너무 좁고 덥고 답답하여 그늘에서 책을 보거나 당시에 이수만이 진행하던 음악 프로그램 같은 방송을 큰 사각형 밧데리를 장착한 라디오를 틀어 놓고 듣곤하였다.
그러다가 가끔 강에 내려가 강물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거나 시골 5일장이 서는 날은 걸어서 장에 나가 시골 장을 구경하기도 하였고 일요일 모두 쉬는 저녁이면 같은 ROTC 동기 소대장을 찾아 마실을 가기도 하였다.
어느 부슬부슬 비가 오는날 밤, 소대장 친구에게 놀러갔더니 그가 전령을 불러 손님이 왔으니 커피나 한잔 타오라고 말하였다. 나는 산 속에서 무슨 커피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이라 그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누가 우는 소리가 났다. 나가 보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전령이 비옷을 뒤집어 쓰고 커피를 탈 뜨거운 물을 끓이려고 나무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는데 솔가지가 젖어 불이 잘 안 붙고 연기만 가득 차 올라 그가 기침을 하다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버너에 불을 피워 물을 데우는 줄 알았지 비가 오는데 나무가지로 불을 피우는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기가 막히고 갑자기 마음이 찡해져서 동기에게 커피 안 마셔도 좋으니 그 병사에게 그만 두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게 하자고 말하였다. 그도 어느 집안의 귀한 자식일텐데 그의 부모가 시킨들 그가 비오는 밤, 나무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일 것인가?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겠지만, 그 당시 보병 소대의 전령은 소위 ‘따까리’ 라고하여 심지어 아침에는 소대장이 일어나면 칫솔에 치약을 짜서 소대장에게 들려주고, 소대장의 세숫물을 떠다 바치고 소대장이 세수를 하면 곁에서 수건을 들고 서 있는다는 식으로 소대장을 위하여는 무엇이든 행하는 충직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나는 의무대 소속이어서 전령도 없었지만 그런 것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봄에 내가 입맛이 없어 식사를 잘 못하자 위생병 중 하나가 쑥을 뜯어 된장을 풀고 쑥국을 끓여 주었던 생각이 나고 산에서 뱀을 잡자 자기들이 안 먹고 지대장님께 드린다고 껍질을 벗겨 구어가지고 나에게 가져다 주었던 생각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은 그렇게 정겹던 친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