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생활 2
4. 군대에서 홀딱 벗고 뛴 이야기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긴 하지만 이건 실제로 군의학교 시절에 일어났던, 내가 죽을 때까지 모자 속에 감추어 두었어야할 나의 흑역사의 한 부분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다 같은 동기들이니까 그냥 다, 발가벗고 솔직히 털어 놓는다. 어느날 우리 소대는 저녁식사 후 단체로 목욕을 하러 비오큐에서 꽤 멀리 떨어진 학교 안의 공동목욕탕으로 걸어 갔다. 지금도 그러리라 믿지만 당시 국군의무사령부 산하에는 군의, 치의, 수의, 의무행정, 간호 등 사실상 다섯개의 서로 다른 병과가 있었다. 그리고 국군 군의학교는 규모가 매우 커서 그 안에 국군 간호사관학교와 수많은 장교 후보생, 하사관 후보생, 위생병 등 교육생들을 위탁교육 하는 크고 작은 부대들이 모여 있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기간병들이 함께 기거하는 크고도 복잡한 공동체였다. 따라서 식당, 목욕탕, 강당, 강의실 등은 여러 부대가 교대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바로 옆의 부대도 서로 관련이 많지 않아, 독립된 부대들처럼 서로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동기들보다 한참 뒤늦게 목욕을 하러 갔고 내가 목욕을 하러 들어갔을 때는 대부분의 동기생들은 후다닥 목욕을 마치고 벌써 각자 장교숙소로 돌아가고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땀을 흘리며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갔고 원래 때도 깨끗이 밀고 목욕도 천천히 하는 편이라 나름대로 마음을 놓고 여유있게 목욕을 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꽤 지났고 돌아보니 어느새 탕 안에는 나 외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목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는데, 아뿔사, 바라보니 내가 벗어서 잘 개켜두었던 군복은 물론 런닝, 빤쓰에 수건까지 몽땅 없어지고 그 자리에 소위 계급장을 단 내 모자만 얌전한 모습으로 덩그러니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 ( 이때에 이곳에는 개인별 옷장은 당연히 없었고 칸막이가 대충 쳐진 선반이 있어 그 위에 옷을 개어두고 목욕을 하러 들어갔었다). 내가 목욕하러 들어갈 때 목욕탕 앞에서 얼핏 기간병 사병 두 명을 본 것 같은데 혹시 그들이? .. 순간 아차 싶었으나, 모자는 값이 많이 안나가거나 소위 계급장이 보이니 차마 들고갈 수 없었는지 남겨두고 나머지 새 군복과 내복은 예수님의 옷도 아닌데 아마 어떤 놈이 팔아먹으려고 홀라당 훔쳐간 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용돈이 궁한 사병들이 군부대 밖에 군대 물건들을 가져다 팔아먹는 일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에는 휴대 전화는 물론 없었고 목욕탕에도 전화가 없어서 비오큐의 동기들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어디에도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던 나는 정말 난감해졌다. 그래서 어찌할까를 생각하다 순간적으로 에라, 모르겠다, 스트리킹이다. 할 수 없이 나는 모자로 그 부분 앞만 가리고 비오큐까지 거의 5분 이상 걸리는 거리를 냅다 뛰어갔다.
벌거벗고 뛰면서도 나는 황당하고 기가 막혔고 무엇보다 창피함에 모멸감, 그리고 감히 육군 장교의 옷을 훔쳐간 도둑놈에 대한 증오심 같은게 마구 합쳐져 형용키 어려운 착잡한 마음이 되었다. 그때 뛰어가던 그 길은 왜 그리 멀던지... 다행이 밖은 어둑어둑해졌지만 여기저기 건물에서 불빛도 새어나오고 간호 장교 후보생들 같은 여자애들이 ’엄마야’ 하고 소리지르며 놀라는 것을 흘낏 본 것도 같은데 어쨋든 정신 없이 뛰다보니 비오큐에 도착, 이 모습을 본 동기들은 깔깔대고 웃었고 나는 한동안 이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그 놈들이 모자까지 들고 갔으면 어쩔뻔 했을까!
당시 우리를 지도하셨던 중대장님은 마음씨가 고운 분이셨는데, 소문을 들으셨던지 나를 따로 불러서 사정을 물어보시고는 옷을 찾으려고 알아는 보겠지만 여기서는 잃어버린 물건들은 찾을 길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더니 며칠이 지난 어느날, 내가 군복이 한 벌 뿐이라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는 나를 조용히 부르시어 잘 빨아 다린, 자기가 입던 낡은 군복을 한벌을 내 주셨다..
옷을 잃고 일을 당하여 부끄러웠지만 옷 대신 만나게 된 그 분의 따뜻한 마음에 나는 오히려 깊이 감동 하였었다. 그런데 후에, 그 김대위님은 우리가 교육을 마치고 전방으로 떠난 후 3개월 만에 급성 백혈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이미 40년이나 지났지만 그 분의 영혼에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