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5
14. 장기자랑에 능한 관동대학 동기들
훈련의 마지막 주가 되자 쉬는 시간에는 오락도 허락하고 장기 자랑을 하는 시간들이 주어졌는데 숫자가 가장 많은 서울대학교 동기들은 모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었고 나가서 노래하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명지대와 관동대 동기들은 정말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고 만담에 몸 개그에 어쩌면 재주도 장기도 그렇게 많은지 정말 놀랐다. 특히 관동대학교 동기들은 정말 재주들이 많았다. 두 사람이 나와서 척척, 공격과 수비를 맞춰가며 진짜 무술을 하는 사람들처럼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쿵후 대결도 보여주었고 프로페셔날 코미디언들을 찜 쪄먹게 웃기고 말도 능숙하게 잘해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달밤에 총을 옆에 끼고 앉아 있는 우리들 앞에 한 동기가 나서 노래를 하는데.." 가아라앙니이피 휘날리이는 전선에 다아알 밤.." 하고 노래하던 전우의 노랫소리는 얼마나 구슬프던지 "장부에 길 일러주신 어머님에 모옥소오리, 아아.... " 할 때는 노래하던 전우도 목이 메었고 우리는 그 동안의 고생, 집 생각, 엄마 생각에 모두가 엉엉 울었던 것 같다.. 고상한 채 하며 클래식만 즐겨 듣던 나는 이때에 비로소 뽕짝 유행가가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깊게 파고 들 수 있는지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또 관동대 동기들은 서울의 찬가, 서울야곡, 서울의 아가씨 등 서울에 관한 노래들을 우리 보다 많이 알고 있었고 신나게 불러제껴서 우리를 놀라게했는데 그들의 서울을 향한 마음의 깊이가 느껴져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듯이, 사람은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할 줄 모른다는 반성을하게 만들었다.
15. 임관고시 및 임관
어쨌든 2년을 그렇게 지내고 임관고사도 치루고 성적순으로 군번을 받게되었는데 서울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3000번대 인데 약대생들은 장선식이 114번, 나중에 알고보니 유명한 해군제독 손원일 장군의 손자라는 손영택이 270번, 홍효신이가 478번, 내가 598번, 박광준이는 1110번.. 모두 의정병과를 받았고 소문대로 그 뒤 군번들은 보병병과를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영택이는 나와 같은 군단 안, 15 사단을 뒤에서 받쳐주는 27 사단 예비사단에서 세탁장교라는 직책을 맡아 2년간 세탁비누 수만 계속 세다가 제대하였다는 소문이고.. 광준이는 서부전선 의 기갑연대에 배속을 받아 군기가 센 탱크부대에서 힘들게 의정장교로 근무하였고 군번이 무거운 동기들은 약대 출신이지만 보병 병과를 받아 전후방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