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4] 2탄 도박과 비지니스
내가 1985년부터 살고 있는 홍콩은 청나라시대 중국의 영토로서 평화로운 곳이었지만 식민지 찬탈에 눈이 어두운 세계 열강들에 의해 침략당한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 슬픈 역사는 1839년에 일어난 1차 아편전쟁으로, 중국 청나라 조정에서 파견한 임칙서(林則徐)의 군대와 영국군이 현재의 광동성 동관시(東莞市) 후먼(虎門)지역에서 벌인 전투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운영하는 ‘보람공장’은 광동성에 있는 주해와 新會의 경계에 있었는데 자동차로 홍콩에서 공장으로 이동 할때면 동관시 虎門지역에 있는 아편전쟁 전적비와 전쟁기념관옆을 지나게 되어 있어 그곳들을 자주 둘러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연유로 당시 청조말 침략군인 영국이 침략전쟁 이전에 전략적으로 아편밀매를 하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편에 의한 중독은 총칼이나 대포보다도 더욱 무서운 무기가 되어 전쟁도 하기 전에 한 나라를 무너뜨렸다. 탐관오리와 백성들은 아편과 도박 주색잡기에 몰두하였으며, 그 당시에 배금사상이 심했던 이들의 방탕한 생활은 나라를 팔아먹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중국인들이 새해에 나누는 첫인사에 한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뜻의 '新年快樂' 표현 다음에는 꼭 필수적으로 "돈 많이 버세요!"라는 뜻의 '恭喜發財'를 붙이는 오래된 중국인들의 풍습을 통해서도 배금사상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이 홍콩을 통치하며 식민지배를 당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경마제도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일확 천금을 기대하고 사행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식민지 백성들은 지금까지도 경마를 합법적인 행위로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합법화된 카지노와 말경주(경마)외에도 스포츠 관련 불법적인 도박산업도 지하에서 덩달아 유행하였다.
근래에는 싱가폴조차도 도시전체의 관광산업 부흥을 위하여 카지노 산업 투자를 유치하여 아시아에서 마카오의 뒤를 이어 카지노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코로나 유행전까지 마카오는 해마다 약 4천만명정도의 많은 해외 여행객들로 인해 카지노 산업이 급격히 부흥하였고, 카지노의 성지라 불리는 미국의 라스베가스를 제치고 세계1위의 베팅액을 달성하였다는 뉴스도 접했다.
예로부터 도박을 좋아하는 중국인들과 여행객들은 마카오 카지노가 일찌기 그들의 일생 중 꼭 한번 방문하고 싶은 여행코스중의 하나가 되었다.
마카오의 카지노와 더불어 유명연예인이나 기업인 등이 고액의 돈을 도박으로 잃고 론 샤크(Loan Shark)를 통하여 불법으로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청부살인 등에 연루된 사건들도 빈번히 일어났다.
홍콩에서 비지니스를 시작한 나는 시골에서 자라서 당구 카드놀이 등 신식게임 문화에 우둔했고, 어릴 때 어깨너머로 잔칫날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배운 고스톱을 하는 정도여서 카지노 출입 기본요건 미달자였다. 그럼에도 도박관련 시설이 넘쳐나는 주위환경의 유혹을 피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중국에 있는 공장에 가려면 마카오를 경유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었는데, 그야말로 나는 카지노와 수많은 유흥업소의 유혹에 노출된 ‘어린양’이었다. 게다가 '보람공장'에서 지근 거리에 있는 마카오 도박장은 나에게 항상 유혹의 손길을 뻗어왔다.
그리하여 가끔씩은 카지노에 가고 싶어하는 공장방문 손님을 모시고 카지노에 가게 되면 손님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적은 액수의 대소(大小)게임을 하곤 했다.
홍콩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마카오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인해 인생이 파탄나고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생기곤 했다. 주위 친구들이나 친지들까지 피해를 끼치고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려왔다.
다행히도 나는 일찌기 거래선으로서 아주 가깝게 지냈던 중국공장 탕(湯)사장의 사례를 되새기며 도박장 출입을 극구 자제할 수 있었다.
평소에 항상 살갑고 착실했고, 조그마한 공장을 운영 중이었던 나의 중국친구 탕사장이 어느 날 대형공장을 운영 중이었던 진(陳)사장과 우연히 마카오에 같이 놀러갔다. 그날 카지노 놀음판에서 진사장이 돈을 모두 잃고 난 후 탕사장에게 지원을 요청하였고, 친구의 요청에 진사장의 공장을 담보로 탕사장이 돈을 빌려주었다. 진사장은 모든 빌렸던 돈도 카지노 놀음판에서 몽땅 잃었고, 그날 써준 보증서로 인하여 진사장의 공장을 탕사장이 헐값으로 차지하여 진사장 공장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진사장은 가산을 탕진하고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이러한 노름사건으로 대형 공장 주인이 된 탕사장은 이제는 본격적으로 카지노 맛을 본 후, 쉽게 얻었던 대형 공장을 일년안에 똑같이 노름판에서 대출업자인 고리대금업자(Loan Shark)에게 갖다 바쳤다. 결국 탕사장은 공장도 날리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후로는 더이상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대형공장 사장실안에서 의기양양하게 파안대소하며 도박무용담을 이야기하던 나의 중국 친구 탕사장은 이렇게 도박으로 패가망신하여 인생을 망친 케이스였다.
‘도박으로 흥한 자, 도박으로 망한다’는 옛말이 정확하게 들어맞은 실화였다. ‘도박판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 라는 것을 가까이에서 똑똑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마카오는 지금도 영원한 승자를 꿈꾸는 수많은 탕사장을 양산하며 24시간 카지노가 성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