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2] 7탄- 싱가포르(가족과의 재회)

동기회고록

홈 > 참여마당 > 동기회고록 > 김운영
동기회고록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2] 7탄- 싱가포르(가족과의 재회)

0 2015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2] 7탄- 싱가포르(가족과의 재회)

인도네시아에서 '유림사리' 법인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던 1984년 말이었다. 이리안자야 현장에서 생산되는 원목을 수출하기 위하여 원목 수입상이 많이 있었던 싱가포르지사에 발령을 받았다. 건설수주 부문과 산림개발 부문의 업무를 병행하여 관리하는 사무소의 지사장으로 부임하였던 것이다. 

 

싱가포르 물가가 비싸다 보니 시내에서 택시로 1시간 떨어져 있는 말레이시아 국경의 베독(Bedok)이라는 신도시 지역에 전임 건설지사장이 살았던 숙소에서 싱가포르 생활을 일단 시작하였다. 도마뱀이 천장과 방바닥 그리고 벽에 수없이 기어 다녀서 엄청나게 징그러웠으나 이리안자야 정글에서 모기와 온갖 벌레들과 정(?)이 들었기에 싱가포르의 숙소는 나에게는 그래도 견딜만한 곳이었다. 전임자가 본국으로 귀국한 후 몇 달 뒤 오게 될 보고 싶은 가족을 위하여 새로운 집을 계약해야 했을 때 당시의 월세로는 시내에서는 아파트를 구할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예산 한도를 조금 초과하여 괜찮은 주거지역에 숙소를 임대하게 해달라고 본사에 요청하였으나 승인이 나질 않았다. 따라서 그 당시 외국인이 거의 살지 않았던 카통(Katong) 지역의 정부 아파트에 계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집주인이 상당히 구두쇠여서 에어컨을 달아주지 않았고 오래된 선풍기만 덩그렇게 천장에 달려 있었다. 또한 엘리베이터가 매 층마다 설 수 없는 정부 아파트라 한 층을 올라가던지 내려가야만 했다. 

 

3695730634_V6urGKC4_42a54c8728cd41d4f45eb741a48b45aaf8f11a5e.jpg싱가포르 로컬식당 앞에서 5개월 된 딸을 안고 있는 아내

아내한테는 백일이 갓 지난 딸아이를 하루종일 돌보며 선풍기만 의지하고 고온다습한 여름 날씨와 싸우며 살아야 했던 최악의 주거환경이었다. 그 당시에 선진국인 싱가포르에서 에어컨 없이 살았다고 하면 아직도 믿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다. 또한 침대 매트리스마저도 몇십 년 동안 사용하여 중간 부분이 웅덩이같이 푹 꺼져 있어서 등바닥이 불편하여 도저히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실내 전체의 바닥도 몇십 년 전의 타일 바닥에 카펫도 깔려있지 않아서 아기들이 떨어지면 위험한 상태였다. 팔심이 약했던 아내는 유모차로 계단을 오르내릴 수가 없어서 유모차 대신 포대기를 주로 사용해서 딸아이를 업고 장을 보러 다녔다. 가족과 재회하기 두 달 전 혼자서 집을 구하다 보니 침대의 매트리스나 엘리베이터의 불편함에 대해서 세심히 관찰을 못 했었고, 인도네시아에서의 지옥 같은 생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지낼만하다고 생각되었다. 후진국 생활에 젖어있었던 나는 이미 산속의 나무 밑에서도 잘 수 있는 야만인(?)으로 변해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처음 시작한 외국 생활은 아내에게는 문화촌 달동네 단칸방 못지않은 상당히 힘든 신혼생활의 시작이었다. 신혼 초에 임산부의 몸으로 홀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한방에서 1년 이상 인내하며 지냈고, 남편의 큰 보상을 기대하고 백일 된 갓난아기와 외국에 첫발을 디딘 아내를 나는 엄청난 배신감에 빠지게 했던 것이다. 회사의 경비지출 한도에 너무 집착하여 시내에 인접한 숙소를 찾다 보니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현지인도 살기를 꺼리는 슬럼가였다. 회사의 주택수당에 관한 과잉 관리로 전임자의 예산을 증액하지 않겠다는 병적(?) 집착이 가정적으로는 빵점짜리 남편을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아내는 자주 위험한 계단을 오르내리며 유모차에 딸아이를 태우고 에어컨이 있었던 시내 백화점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면서 피난 생활(?)을 하였다.


3695730634_K05YvwOV_54dfbf5db26314dfed7d3f631d4c66a3c8d67a50.jpg잔디밭에 앉아 있는 9개월 된 딸 보람

이런 여러 가지 어려운 신혼생활 속에서도 기쁜 생활도 물론 있었다. 백일이 지나 한창 이쁜 딸아이(보람)를 퇴근 후 무등을 태우고 바닷가나 시내의 백화점에서 윈도우쇼핑을 하고 다녔던 생활은 나에게는 일생 중 가장 행복한 신혼 기간이었다. 또한 싱가포르 근무를 계기로 가족과 재회하기 전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중학생 때부터 가끔씩 다녔던 성당에 주일마다 참석하여 외로운 타국생활에 많은 위로를 받게 되었으며, 예배 후 친해진 성도들과 골프도 같이 치면서 교제를 하고 가족이 없는 무료한 생활에서 탈피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3695730634_LMsAywrl_6ec65c254a9d25dd3296c53ca11c781a8cbd21e4.jpg가족과 재회하기 전 성당 교우들과 골프 중인 필자

가족과의 재회 후에는 오직 회사업무만 열심히 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정부가 합판의 원자재인 원목을 '가공'하여 수출하도록 하는 정책을 갑작스럽게 발표하고, 원목 수출 금지조치를 내려서 회사의 장래가 극도로 불투명하게 되었다. 그러자 지사의 재무 상황이 악화되었고, 지사의 경비지출 등이 여의치 않아서 싱가포르 사무실 계약을 만료하고 에이전트 사무실에 책상을 빌려서 임시로 사용하게 되었다.

 

한편 나는 가끔씩 토요일 오후 퇴근과 함께 자가용에 여행준비물을 싣고 가족과 싱가포르를 출발하여 인접국 말레이시아의 조호바루(Johor Bahru)를 거쳐 말라카 그리고 수도인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까지 다녀오면서 현지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파악하였다. 싱가포르가 주위의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어떠한 경제적인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이곳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미리 터득하게 되었다. 특히 이곳 나라들의 경제를 주도하고 있었던 중국인 화교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되었다. 영어, 중국어 등이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 중국어를 꼭 배워야겠다는 각오를 이때 다짐하였다.

 

3695730634_aVpUuis6_211d25eb5e3cf6b322946bdfad59e67d3dd4b96d.jpg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독립기념비 앞에서 가족사진

나에게 있어서 싱가포르 주재 생활은 회사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우둔하고 편협한 직장생활 원칙을 고수한 것을 빼놓으면, 딸아이와 아내와의 재회로 꿈같은 시절을 보냈던 나날이었다. 반대로, 아내에게 있어서 싱가포르에서의 신혼생활은 중년 이후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여겨지기까지 무려 3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홍콩에 살면서 싱가포르 출장 기회에 같이 가자고 하면,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곳"이라던 아내가 몇 년 전 갑자기 자신의 회갑 여행을 싱가포르로 가자고 제안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 아내는 아직도 실천을 못 했지만, 우리 부부는 코로나 상황이 호전되면 어려웠던 시절에 같이 살았던 싱가포르의 거리 모습을 다시 가서 느껴보기로 했다.

 

14면 <시즌 2를 마쳤습니다. 다음호 시즌 3-1 [홍콩 정착기]를 연재합니다.>


3695730634_6y8Zldmg_dc96b9170953aeebe73a12119c5686f9435e6162.jpg
0 Comments
Hot

인기 [김운영의 생활칼럼 시즌 4] 제 9탄 - 아름다운 석양

댓글 0 | 조회 3,082
머나먼 세월 같았던 인생길이 화살같이 지나가 버렸다.하지만 나는 인생은60부터라는 말을 믿고 싶다.앞으로 남은 인생 여정을 어떻게 값지게 마무리하는 것이 좋은지를 생각해봐야 할 나이가 되었다.그동안 끊임없는 도전정신…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의 생활칼럼 시즌 4] 제 8탄 -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효도여행

댓글 0 | 조회 2,021
해외에서 생활하게 된 지상사 요원이나 나와 같은 교포의 경우에 부모님을 해외에서 모시고 살 수 있는 형편이 어려운 상황이 대부분이다. 설혹 부모님을 모실 수 있는 재정적인 형편이 가능하더라도 연로하신 부모님들의 해외…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의 생활칼럼 시즌 4] 제 7탄 - 비즈니스맨의 건강관리

댓글 0 | 조회 2,229
지나온 나의 건강 상태를 장난스럽게 표현하면 '종합병원'이었다. 첩첩 산골에 보건소 외에는 의료시설이 아예 없었던 어린 시절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로 앓아누웠을 때 할아버지가 장롱 깊숙이 숨겨놓으셨던 대마로 만든 …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의 생활칼럼 시즌 4] 제 6탄 - "오늘도 무사히~!" (해외에서의 안전 운전)

댓글 0 | 조회 1,732
외국에 정착하여 살아가는 교민이나 일정 기간 모국에서 주재국에 파견되어 활동하는 주재 상사 직원의 경우, 지하철과 대중교통수단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은 지역에 살게 되면 차량 운전이 생활의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일과일…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의 생활칼럼 시즌 4] 제 5탄 - 해외에서의 신앙생활

댓글 0 | 조회 2,193
나는 내가 보기에도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빵점짜리 기독교인으로 살아왔다. 비즈니스를 하며 늘 바쁜 나날이었고, 신실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언제나 핑계를 대면서 살아왔다. 더욱이 모든 …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의 생활칼럼 시즌 4] 제 4탄 - 신사복 차림에 상투 튼 아빠

댓글 0 | 조회 1,745
나는 시골촌놈으로 보수적인 환경에서 태어나서 연애 결혼 따위는 당시에 나의 결혼관과는 전혀 다른 우주 밖 멀리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당연히 중매 결혼이 항상 나의 결혼에 대한 주된 생각이었으며, 혹시나 주위의 사람…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4] 3탄 딸의 직업 선택

댓글 0 | 조회 2,047
나의 어린 시절 장래 희망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어릴 때부터 병치레가 잦아서 시골 동네에 있는 보건소의 의사 선생님에게 찾아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의사 선생님을 보러 가면 너무 무서워서…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4] 2탄 도박과 비지니스

댓글 0 | 조회 1,980
내가 1985년부터 살고 있는 홍콩은 청나라시대 중국의 영토로서 평화로운 곳이었지만 식민지 찬탈에 눈이 어두운 세계 열강들에 의해 침략당한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그런 슬픈 역사는 1839년에 일어난 1차 아편전…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4] 1탄- 광견병(狂犬病) 소동

댓글 0 | 조회 2,379
칼럼 소개:김운영 회장의 생활 칼럼 시즌4가 시작됩니다.이번 시즌에는 김운영 회장의 개인적인 삶에 포커스를 맞춰 그의 삶 주변인들과의 관계와 생활 속 에피소드에서 깨우친 교훈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합니다.시즌4는…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3] 10탄- 정관장 중동시장 마케팅 실패기

댓글 0 | 조회 2,069
해외의 홈쇼핑채널에서 발자노(Balzano) 브랜드로 비교적 성공적인 판매를 이루고 있을 때였다. 특히 중동시장에서 주방 소형가전제품의 판매로 'Balzano'가 명성을 얻고 있을 무렵에 Balzano Japan 법…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3] 9탄- 홈쇼핑 이야기

댓글 0 | 조회 1,887
상품 판매를 텔레비전 방송매체의 방식을 통해서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생방송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판매하는 방식은 선진국인 미국과 캐나다에서 시작되어 유행하고 있었다.1980년대에 설립된 미국의HSN(Home Shop…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3] 8탄- 발자노 브랜드 이야기

댓글 0 | 조회 2,130
창업을 하고 비즈니스를 한 사람들의 인생역정은 끊임없는 도전과 극복의 연속이었다.나는 공산품은 한번 거래를 시작하여 공장과 바이어와의 관계만 지속적으로 잘 유지하면Trading비즈니스를 잘 할 수 있다고 처음에 생각…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3] 7탄- 아들(다니엘)의 중국공장 생활

댓글 0 | 조회 2,853
비즈니스맨으로 창업을 한 경우에 가업으로 본인이 일구어놓은 사업체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대부분의 창업을 해본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생각일 것이다.나도 예외는 아니었다.딸아이가 전문직인 의사로 직업…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3] 6탄- 북한과의 무역 거래

댓글 0 | 조회 2,679
1985년 이후 홍콩에 정착해 살면서 북한과의 무역을 한다는 중국인 혹은 한인들과 많이 접촉하여 보았으나 비즈니스의 성질상 구체적인 거래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고 항상 위험성이…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3] 5탄- BORAM 공장 이야기

댓글 0 | 조회 2,111
중국 江門市 新會 古井에 위치한 '보람 공장' 전경 사진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오퍼상을 거치며 본인 소유의 공장을 지어 중간상 역할을 벗어나겠다는 꿈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오퍼상과 임가공 공장을 하면서 조금씩 저축해…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3] 4탄- 말레이시아 플랜트 수출 이야기-"동방을 알고 한국을 배우라"

댓글 0 | 조회 3,315
1990년대 초 당시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수상은 낙후된 가전제품 제조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하여 말레이시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진 기술 보유국인 한국에서 기술이전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한 캐치프레이즈로"동방을 알고 한국…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3] 3탄- 뉴월드 그룹과의 인연

댓글 0 | 조회 2,051
홍콩의4대 재벌그룹 중의 하나인 뉴월드 그룹과 나의 인연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이루어졌다.홍콩에서 창업한 후 건축용 삼양밸브와 선박용 벤드 아이템을 취급하는1인 오퍼상으로 서울과 부산의 제조업체를 방문하며 분주히…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3] 2탄- 홍콩 창업 이야기

댓글 0 | 조회 1,992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3] 2탄- 홍콩 창업 이야기처음 홍콩에 주재하면서 홍콩 로컬 건설공사를 수주하기 위한 노력을 하며 홍콩 정부건설 관련기관을 부지런히 방문하고 다녔다.당시에 홍콩에 진출하여 활발하게 건설… 더보기
Hot

인기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3] 1탄- 홍콩 정착기

댓글 0 | 조회 1,900
칼럼 소개:김운영 회장의 칼럼 시즌 3을 시작합니다. 이번 시즌 3에서는 김운영 회장과 그의 가족이 홍콩에 정착한 이후의 생활과 비즈니스 활동들을 중심으로 기획했습니다. 칼럼은 [1탄 홍콩 정착기]와 [2탄 홍콩 창… 더보기
Now

현재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2] 7탄- 싱가포르(가족과의 재회)

댓글 0 | 조회 2,016
[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2] 7탄- 싱가포르(가족과의 재회)인도네시아에서 '유림사리' 법인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던 1984년 말이었다. 이리안자야 현장에서 생산되는 원목을 수출하기 위하여 원목 수입상이 많이 … 더보기
카테고리
Banner
최근통계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