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생활 5
11. 무서운 대대장님과 꼴통 군의관
고백하건대, 지금 생각하면 나는 내가 걱정했던대로 정말 군기가 빠진, 장교 자격이 의심되는 어리숙한 군인이었던 것 같다. 대대에 도착하여 얼마 안된 며칠 후, 비오큐에서 내려오다 출근하시는 대대장님을 만나뵈었는데 나는 그만, 나도 모르게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반갑게 “안녕하십니까” 하고 말았다. 나는 순간, 아차 싶었지만, 대대장님께서는 어이가 없으셨던지 허허 하고 웃으시더니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그냥 지나치셨다. 논어에 보면 공자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길을 가다가 길 옆에서 방뇨를 하는 사람을 보고는 예의 염치를 모른다고 마구 야단을 치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다가 한참을 더 길을 가다가 이번에는 길 한복판에서 응가를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이번에는 야단을 안 치시고 슬쩍 고개를 돌려 모른척 하고 지나가셨다. 제자들 중에 공자께서 총애하시던 안회가 이상해서 스승님께 그 이유를 물으니 공자 왈, 세상에는 가르치면 나아질 사람이 있고 가르쳐도 안되는 사람이 있으니 가르쳐서 고쳐질 수 없는 사람들은 그냥 모르는 체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하셨다는데, 그러면 내가 그 꼴?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대대장님은 간부후보생 출신으로 보통 육사출신만 한다는 최전방 대대장 직책을 맡아 매우 열심히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 중이신 정말 깐깐하고 철처한 직업군인이셨고 잘못하는 사람들은 참모고 중대장들이고 간에 마구 욕을 하면서 무차별로 소위, 워커로 쪼인트를 까서, 두 무릎이 시퍼렇게 멍이 들게 만드는 무서운? 분이셨다. 실제로 인사참모 김대위가 무릎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걸을 수가 없어 양쪽에서 두 사병의 부액을 받으며 거의 기어오다싶이 의무대로 들어와서 치료를 받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러니 그 참모들은 대대장을 무서워하여 회의 중에도 눈치만 살폈고 솔직한 의견의 개진은 고사하고 불만이 있어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였고 매우 주눅이 들어있었다. 그러니 이런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부대가 자발적으로 원활하게 잘 돌아갔을는지 모르겠다. 대대장은 lone wolf 처럼, 의지하거나 상의할 참모 하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어 보여 안타까왔다. 하긴 지휘관은 모든 최종 결정을 자신이 혼자하며 그 책임도 혼자 지는 것이니, 고독할 밖에... 그러나 유능한 지휘관이라면 사소한 모든 일까지 사사건건 참견하고 지시하기보다 큰 줄기만을 제시하고 세부사항은 부하들을 전적으로 믿고 맡기고 나중에 진행 과정을 체크하여야 하는 것 아닌지?
나는 이 때에도 아무리 군대이지만 명령과 점검 위주로 강압적으로 부대를 지휘하면 부대 운영의 능률이 떨어지고 화가 난다고 부하들에게 지나친 폭력을 행사하면 오히려 사람들의 반발을 사게되고 통제도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편, 그 분은 매일 아침 날이 밝자마자 그리고 밤중 취침 전에 두번씩 연대장님에게 전화를 연결하여 “연대장님, 부대 이상 없습니다” 하고 보고를 하는 철저한 분이셨다. 그것을 보고 나는 중간 관리자는 지시받은 사항에 대하여 윗사람에게 정기적으로 철저하게 보고를 잘 해야한다는 것, 그것이 관리자의 기본이라는 점도 배웠다
12. 군대에서 고래 잡는 이야기
위생병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처음 의무소대에 도착한 후, 나는 담배를 피지도 않으면서 '솔' 인가 하는 비싼 고급 담배들을 사다가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고 같이 피워보려고도 하고 선임하사를 통하여 회식도 시켜 주곤 하였다.
어느날, 사병들이 점호 취침한 후 독신장교숙소 (B.O.Q, Bachelor Officer Quarter) 비오큐로 올라와 공부를 하던 나는 영어 사전을 내무반에 두고 온 것이 생각이 나서 사전를 가지러 다시 병사들의 숙소인 내무반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문을 열려고 하니 웬일인지 문이 안에서 잠겨있고 창 틈 사이로 약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지 하며 궁금해 하면서도 병사들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살살 문을 두드리며 작은 소리로 "불침번, 지대장이야, 문 좀 열어봐"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안에 후다다닥 하는 소리가 나더니 한참 만에 문이 열렸다. 그런데 가만히 불을 켜고 보니 대부분은 자는 척 하고 누워있는데 위생병이 아닌 사병이 하나 침상에 모포를 뒤집어 쓰고 반대로 누워있었고 치우다만 꺼즈, 핀셋 등 의료용품들이 흩어져 있었다.
나는 아차 싶었지만, 오히려 내가 무슨 잘못을 하다 들킨 것 처럼 민망해져서 그냥 그를 못 본척하고 사전을 가지러왔다고 말하고 얼른 사전을 집어들고 모두 취침하라고 하고는 소등한 후 바로 비오큐로 올라왔다. 그리고 다음날, 선임하사에게 살짝 물어보니, 몇몇 고참 위생병들이 선임병들에게 어깨 너머로 배운 기술로 사병들에게 포경수술을 시켜주고 돈을 받는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어떤 고참병들은 제대할 때 제법 돈을 벌어 가거나 부대 앞 술집에 진 외상을 갚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간단한 수술 같아도 포경수술은 피부를 절제한 후, 혈관을 잘 봉합하지 않으면 출혈이나 혈종이 생겨 위험할 수도 있고 아무리 군대지만 허가없이 수술하는 것은 위법이며 위험한 일이었기에 나는 연대의 의무중대장 육대위님과 상의하여 위생병들이 절대로 위험한 수술을 하지 못하도록 정식으로 명령을 하달하였고 대대장님께도 말씀을 드려 대대 사병들에게도 위생병들로부터 위험한 수술을 받지 말도록 알렸다. 그러나 그 때에는 제대 하기 전에 포경수술 받는 것을 무슨 제대선물처럼 여겨 병사들 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그러니 추측컨대, 이후에도 이런 나쁜 관행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은밀하게 계속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