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가기로 계획했었던 준경묘. 이성계의 조선 건국이 일찌기 이곳에서 태동하고 그 뿌리가 내리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만, 얼마전 숭례문 화재 사건으로 이곳에 자라고 있는 황장목(금강송) 때문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역사의 현장. 일정에 쫒겨 우리의 계획은 아쉽게도 접어야 했다. (아래 사진은 준경묘)
'꿩대신 닭'이라 했던가. 준경묘 대신 영경묘를 찾았다. 이성계의 고조모의 시어머니묘인 셈이다. 여성스러울 것같은 영경묘가 준경묘에 비해 거칠고 빈약하다. 남존여비의 반영인가? 부부인데 합장하지 아니하고 따로 분묘한 것은 두 지역의 명당지세를 후대에 한꺼번에 뿜어내기 위한 조상의 의도였을까?
영경묘는 고요하고 적막했다.
영경묘를 둘러싸고 있는 황장목(금강송)의 무아하고 준수한 자태. 울울창창한 숲을 이루며 한 세기 가량을 올곧게 자라난 소나무 군락. 나무도 군대를 가야했다면 그들도 영락없는 '장교단' 아니었을까?
삼척 정라진으로 향하는 길에서 바라 본 죽서루. 관동팔경의 하나이지만 유일한 국가자정 문화재(보물)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 흘러 내리는 오십천(정철의 관동별곡엔 죽서루를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을 내려다 보며 죽서루는 무슨 상념에 젖어 있는걸까?
정라진 새천년도로에서 바라 본 삼척 앞바다의 풍광 two. 사실 이곳에선 가자미 무침에 소주 한 잔이 정말 제격인데------. 언제든 생각나는 동기들은 오시요.
우리 일행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동해, 삼척지역 동기들과 그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촬영.
만남, 그리고 기쁨, 즐거움.
아름답고 행복한 것은 글로 표현하면 오히려 그 감동이 상쇄되는 법이다.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어떤 미사여구가 소용있으랴!
동해, 삼척지역 동기들 (좌로 부터 김일종, 최왕순, 조주현, 최경덕, 김영민, 최종인)
그대들을 보내고 난 뒷자리. 그 허전함과 아쉬움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동해, 삼척지역 동기들은 뒷풀이 자리를 가졌다.
이 먼 곳까지 기꺼이 달려와 동기애가 무엇인지를 각인시켜주고 떠난 그대들을 생각하며 가진 자축의 자리!!
'인생 뭐?' '별꺼있나!!' 히한한 건배로 잠시나마 지친 삶의 활력을 불러 일으킨 김일종 동기의 저 죽이는 표정!! '별꺼있나!!'를 표현하면 저런 표정이 아닐까? ㅎㅎㅎ
휴~~~. 그렇게 우리의 축제는 끝났다. 긴 안도의 숨을 쉬어본다. 긴장이 풀리니 금방 술이 오른다.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 온다. 2008년 3월 8일 삼척의 밤은 그렇게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이후로도 몇 차를 더 간 것같은데 필름이 끊어져 보여줄 수 없음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인져.
고맙네. 이 먼곳까지 찾아와준 친구들!!
수고했네, 동해, 삼척 동기들, 그리고 사모님들!!!!!
느낌니다. 수고하신 박창두 등반대장, 정진욱 총무 수고하셨고요 조주현 동기의 "쉰움산 등정기" 글을
동기회보 3월호에 게재토록 하곗습니다.
그리구 중동이나 공산권에 가면 계급이 소위는 별하나에 줄하나 중위는 별두개에 줄하나
소령은 별하나에 줄두개 중령은 별두개에 줄두개
별밑에 줄이 하나면(또는 가늘면) 위관급, 줄이 두개면(또는 굵은 줄이면) 영관급 이런 식이야
그래서 옛날에 한국군 대령 한분이 터키에 갔다가 소위, 중위한테 정신없이 경례하느라 볼일을 다 못보고
돌아왔는데, 귀국해서도 오십견에 걸려 한 일년 고생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슴
예멘 군인들은 일부는 군화신고 일부는 쓰리빠 신고 의자에 앉아서 보초를 선다네
중동 및 남미등 세계 각지의 군복및 군장(수통, 혁대, 군화, 모자 등등) 대부분은 국산(지금은 중국에서 만들겠구나)인데 선경, 옛날 국제상사등 무역회사들의 역활이 크지
80년대 이란 이라크전에서는 양쪽다 군복이 한국산으로 같아 피아 구별이 어려웠다잖아 -이명박대통령 정부 부처 업무 보고시 한 여담
베트남은 골프장을 군부대 군용지에 만들어 놓고 보니, 캐디들의 소득이 장교봉급의 2배 이상을 훌쩍 넘으니 장교부인들이 너두나두 캐디가 되어 한참 라운딩하다 옆에 캐디 남편 직업 물어 보면 중령 부인도
있고 대위 부인도 있고 하여간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