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대 김영채동기의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있는 동파미르의 무즈타그 아타산(Mt. Muztag Ata) 등정기

산악회

공주대 김영채동기의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있는 동파미르의 무즈타그 아타산(Mt. Muztag Ata) 등정기

정재화 10 2,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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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산악인 합동등반 참가기

 

글 : 김 영 채

 

완도 노화중학교 교사

전라남도산악연맹 청소년이사

 

 

 

1. 칸텡그리(Kan Tengri 7,010m)로 떠나기 전의 단상

 

나는 몇 년 전, 중국의 서북쪽 오지에 위치한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있는 동파미르의 무즈타그 아타산(Mt. Muztag Ata)에 갈 기회를 가졌었다. 이 지역은 파미르 고원의 동쪽으로 카슈가르 파미르라고도 한다. 무즈타그 아타산은 파미르고원에서 중국의 남쪽 국경 근처에 있는 히말라야산맥과 나란히 동쪽으로 뻗어가는 쿤룬산맥(崑崙山脈)의 서쪽 끝에 위치해 있다.

 

해발 약 4,000m에 있는 무즈타그 아타의 베이스캠프에서 주변에 있는 작은 봉우리를 올라가면 초원을 가로지르며 저 멀리 가느다란 실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가 내려다 보였다. 도로에는 가끔씩 지나가는 트럭이나 버스가 마치 작은 점처럼 보이는데, 트럭이나 버스의 뒷편에 길게 먼지가 휘날리고 있는 모습에서 움직이는 차량임을 알 수 있었다. 카슈가르에서 남쪽으로 뻗은 도로를 보면서 이 길이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쿤제라브 고개(Khunjerab Pass)로 뻗어갈 것 같았고, 서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보면서는 파미르고원의 고개를 넘어 중앙아시아에 이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나는 사막이라고 하면 아프리카에 있는 사하라사막만을 생각해왔는데, 아시아대륙에도 타클라마칸사막과 고비사막 등 큰 사막이 2개나 있다는 사실과 타클라마칸사막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사막이란 사실도 그 때 알게 되었다. 위구르어로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이라는 뜻을 가진 타클라마칸(Takla makan) 사막은 봄철 우리나라에 누런 흙먼지를 일으키는 황사의 진원지로 그 면적이 한반도의 약 1.5배쯤 된다고 한다.

[ 칸텡그리 북면 베이스캠프에서 ]

 

천산은 실크로드에 관심을 갖다가 천산북로니 천산남로니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타클라마칸사막의 북쪽 변두리와 천산산맥의 남쪽을 따라 서역으로 가는 길이 실크로드 중 천산남로이고 천산산맥 북쪽과 알타이산맥 남쪽의 분지를 따라가는 길이 천산북로이다. 나는 그 무렵부터 막연히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천산에 대한 동경심을 품게 되었다. 실크로드를 생각하면 타클라마칸 사막과 천산북로와 천산남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당나라의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 장군의 서역정벌과 탈라스전투에서의 패배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더더욱 중앙아시아와 천산(Tien Shan Mountains)에 가고 싶어 했다.

 

칸텡그리산은 천산산맥에 놓인 고봉이다. 천산산맥은 키르기즈스탄에서 중국의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신장위구르)자치구에 걸쳐 서에서 동으로 뻗은 산맥인데 산맥은 크게 북천산(North Tien Shan), 중앙천산(Central Tien Shan), 동천산(East Tien Shan)으로 구분된다. 북천산은 키르기즈스탄의 이식쿨 호수(Issyk Kul Lake) 북쪽의 산계로 '산타슈 패스'로 중앙천산과 구분되고, 중앙 천산은 이식쿨 호수 남쪽의 키르기즈스탄에 속한 산계가 중심이며 카자흐스탄, 중국과의 접경지역까지를 말하며 천산 산맥의 중심산군으로 최고봉인 포베다((Pobedy, 7,439m)와 칸텡그리(Kan Tengri, 7,010m)를 포함한다. 동 천산은 중국에 속하는 산계로 신장웨이우얼 자치구를 동서로 지나며 타림분지와 준가리아 분지를 양분하고 있다. 나는 실크로드의 천산북로, 천산남로 등을 통하여 천산이란 말이 귀에 익어 천산산맥이 중국북서부에 있는 줄 알았었는데 실제로는 천산산맥의 중심은 키르기즈스탄에 위치해 있는 셈이다.

 

이번 여름에, 내가 가게 될 칸텡그리(Kan Tengri 7,010m)가 있는 카자흐스탄은 서쪽으로는 카스피해와 면해있고, 동쪽으로는 파미르고원을 경계로 중국, 몽골과 닿아있으며 그 면적은 남한 넓이의 약 27배에 달하고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넓은 나라이다. 그리고 칸텡그리는 <영혼의 제왕(주인)>이란 뜻으로써 카자흐스탄 최고봉이며 7,000m급 산으로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산이다.

 

현지 유목민들은 칸텡그리산을 「피의 산」이라는 뜻의 「Kan Too」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은 일몰시 햇살을 받아 북벽 상부가 진홍색 노을로 붉게 물드는 모습을 보고 붙인 별명이라고 하며, 실제로 내가 북면 베이스캠프에 있는 동안에 해질 무렵에 붉게 물든 칸텡그리 상부의 모습은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흰 눈을 이고 붉게 물들어가는 칸텡그리 북면 정상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고, 감히 범접하기 어려울 것 같은 경외감마저 들었다. 맑은 날 저녁식사 하기 전에 텐트 밖에서 칸투를 보는 순간은 비 갠 오후에 무지개를 보는 듯 행복하고 청량감마저 들었다.

 

 

2. 카자흐스탄(Kazakhstan)의 알마티(Almaty)를 향하여

 

전자제품 회사들이 우리나라에 백년만의 폭염이 왔다고 외치며 치열한 에어컨 판매전을 펼치던 2005년 8월의 1일, 나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아시아산악연맹(UAAA)이 주최하고 카자흐스탄등산협회(KMF)가 주관하는 아시아산악인 합동등반이 카자흐스탄의 칸텡그리(7,010m)에서 열리게 되어 대한산악연맹에서는 3명의 산악인을 파견하였는데, 나는 원정대장을 맡아 합동등반에 참가하게 되었다. 전라남도산악연맹 소속인 나와 경상남도산악연맹의 홍재기(43세) 대원, 강원도산악연맹의 이형모(28세, 관동대 4학년) 대원 등 우리 세 사람은 중앙연맹의 김병준 전무이사님의 전송을 받으며 카자흐스탄 입국비자 없이 카자흐스탄등산협회의 초청장만을 들고 인천공항을 출발하였다. 인천공항 카운터에서 항공권을 발급받으면서 입국비자가 없는 우리 일행은 먼저 항공사에 카자흐스탄 현지비자 신청서류를 작성하고 탑승권을 받았다. 출국심사 시 세 사람이 나란히 서서 이 서류를 제출하고 출국심사대를 통과하였다.

 

언제부터인지 카자흐스탄항공이 아스타나항공(Air Astana)으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아마 카자흐스탄의 수도가 1999년에 알마티에서 중북부에 위치한 아스타나(Astana)로 천도(遷都)를 하고나서 수도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항공사의 이름이 바뀌지 않았나하고 내 나름대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 항공사는 카고 수송으로 수입을 올리고 있는지 일인당 수하물 25kg 이상은 철저하게 오버차지를 물렸다. 우리 일행 세 사람은 식량과 공동장비의 총중량이 33kg이 초과되어 약 23만원이 넘는 오버차지를 내어야했다.(1kg당 7,100원) 작년에 청소년오지탐사대로 캐나다에 갈 때는 대만의 중화항공을 이용하였는데, 밴쿠버까지 가는 승객에게는 1인당 허용중량이 65kg이나 되어 꽤 많은 짐이 있었는데도 오버차지 부담이 없이 수월하게 갈 수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인천공항에서 일주일에 한차례 월요일 오후에 출발하는 아스타나항공 4L 910편은 보잉 757-200으로 좌석이 170석 정도 되는 소형 항공기라서 기내에는 의외로 많은 승객이 탑승하여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의 한국인 승객은 젊은 대학생들처럼 보였는데, 교회와 관련이 있는 봉사활동을 가는 것으로 보였다. 내 앞에 앉은 남녀 대학생 승객들은 부산 모대학의 의대생들로 아스타나로 의료봉사를 가는 중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카자흐스탄 알마티까지는 약 4,200km 쯤 떨어져 있다. 이륙한지 약 3시간 후에 창 아래에는 사막이 나타났다. 비행기는 고비사막 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황량한 사막 위에 가는 실처럼 보이는 곧게 뻗은 도로가 보였다. 마을도 없는 사막 위를 자로 줄을 긋듯이 곧게 뻗어 끝없이 이어지는 길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가지 않는 길’이 주는 깊은 외로움이 느껴졌다. 회갈색의 황량함과 움직임이 없는 도로를 한참 보라보니 나도 모르게 진한 고독감이 밀려왔다. 황량한 사막 에서 가끔 보이는 작은 마을들은 대양에 떠있는 외로운 섬처럼 보였다. 승무원에게 맥주 한 캔을 달라고 하였다.

 

나는 몇 년 전에 중국의 또 다른 사막인 타클라마칸사막을 가 본적이 있다. 카슈가르에서 무즈타그 아타를 향해 갈 때였다. 사막 가운데에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서 포플러 나무숲이 있을 뿐 강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모래벌판이었다. 자동차로 몇 시간을 가는 동안 보이는 풍경은 사막을 처음 보는 나에게는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극히 일부분이었겠지만 도로를 따라 길게 뻗은 전신주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모래뿐인 사막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인체에서 혈관이라면 전신주는 신경망인 셈이다. 이 혈관과 신경망은 작은 마을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뻗어 나갔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사막 가운데서 쉬는 동안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던 일이 생각났다.

인천을 떠난 지 6시간 만에 사막이 끝난 창 아래에 거대한 산악지형이 나타났다. 내 시계로는 밤 9시 30분이지만 이곳은 아직도 오후의 강한 석양 햇살이 남아 있었다. 높은 능선과 어둡고 깊은 협곡이 파노라마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눈을 뒤집어 쓴 산 능선과 깊게 패인 주름이 사막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강하게 다가왔다. 계곡 속에는 푸른 숲이 우거져 있었으나 그늘져서 어둡게 보였다. 나는 여기가 파미르고원 인줄도 모르고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중앙아시아의 낯선 땅 알마티에 내리고 말았다. 기내에서 사막을 내려다보는 동안 이 사막이 끝나면 파미르가 나올텐데 하며 파미르고원을 기다렸었다.

 

아, 파미르고원! 고선지장군이 1400년 전에 당나라 기마병을 이끌고 넘었던 파미르고원이다. 고구려 유민으로서 당나라의 지방 최고관직인 안서절도사로 임명된 고선지장군은 알프스산맥(2000m)보다 두 배나 높은 파미르고원(4,600m)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정복하였다. 당나라 고선지 장군의 탈라스 전투 패배 이후 중앙아시아의 영향력은 이슬람 문화권으로 넘어갔고 지금도 이슬람문화권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알마티공항은 작지만 새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예상외로 깨끗한 공항이었다. 알마티공항에 도착하여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입국장에서 본 커다란 LG전자의 광고간판이었다. 입국심사대 바로 위에 입국을 환영하는 글귀와 함께 낯익은 LG로고가 보여 눈이 번쩍 뜨였다. 우리는 서울에서 카자흐스탄 비자를 내지 않고 왔기 때문에 공항에서 입국비자를 신청하였다. 입국심사대 바로 옆에 있는 사무실에는 남여 직원 두 세 명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모두들 영어를 잘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어려웠으나, 카자흐스탄등산협회의 초청장을 보여주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겨우 비자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어와 영어로 된 입국비자 신청서류를 간신히 써서 제출하니 10분도 채되지 않아서 한 달짜리 비자가 나왔다.

 

남여 직원 중에서 영어를 조금 아는 여직원이 일을 처리해 주었는데, 영어는 잘 하지 못해도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비자 발급비용은 일인당 60달러인데, 친절하게도 영수증을 발급하면서 세 사람이 각각 필요한지, 한꺼번에 작성해 줄건지를 되물어왔다. 우리는 영수증은 필요없지만 굳이 필요없다고 말하지 않고 영수증을 달라고 했는데, 일일이 손으로 써서 영수증을 만들고 있기에 얼른 일을 처리하고 싶어 한꺼번에 작성해 달라고 했다. 내가 듣기로는 알마티 같은 국제공항에서도 직원들이 뒷돈을 요구한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그런 기색 없이 의외로 친절하고 정직하게 일을 처리해주고 있었다. 한 달짜리 비자를 받은 후 출입국심사대를 별다른 문제없이 통과했는데, 수하물을 찾는 곳에서는 한참을 기다려서야 우리 짐을 찾았다.

 

남여 직원 중에서 영어를 조금 아는 여직원이 일을 처리해 주었는데, 영어는 잘 하지 못해도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비자 발급비용은 일인당 60달러인데, 친절하게도 영수증을 발급하면서 세 사람이 각각 필요한지, 한꺼번에 작성해 줄건지를 되물어왔다. 우리는 영수증은 필요없지만 굳이 필요없다고 말하지 않고 영수증을 달라고 했는데, 일일이 손으로 써서 영수증을 만들고 있기에 얼른 일을 처리하고 싶어 한꺼번에 작성해 달라고 했다. 내가 듣기로는 알마티 같은 국제공항에서도 직원들이 뒷돈을 요구한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그런 기색 없이 의외로 친절하고 정직하게 일을 처리해주고 있었다. 한 달짜리 비자를 받은 후 출입국심사대를 별다른 문제없이 통과했는데, 수하물을 찾는 곳에서는 한참을 기다려서야 우리 짐을 찾았다.

 

3. 알마티(Almaty) 풍경

 

서울을 출발한 지 7시간 만에 내린 알마티공항에서는 입국 수속하는 데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짐을 찾아 나오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공항 청사 주변에 군데군데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공항청사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는데, 우리는 마중 나온 많은 카자흐스탄 사람들 속에서 우리를 안내할 안내자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번 등반에서 우리를 알마티에서 키르기즈스탄 국경 근처에 위치한 카르카라 베이스캠프까지 안내할 사람은 카자흐스탄등산협회에서 보낸 현지인 청년 <아스카르(Askar, 28세)> 이었다.

 

이번 등반을 위해서는 알마티에서 자동차로 키르기즈스탄 국경 근처에 위치한 카르카라 베이스캠프(해발 2,200m)까지 이동을 한 후, 그 곳에서 4~5일 동안 고소적응을 한 후에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빙하 위에 있는 칸텡그리 북면 베이스캠프(해발 4,000m)로 이동을 해야하는데, 아스카라는 우리를 카르카라 베이스캠프까지 안내하게 되어 있었다.

 

아스카르는 영문으로 대한산악연맹(Korean Alpine Federation)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어 바로 만났는데, 카자흐스탄등산협회에서 일하고 있는 이 청년은 전형적인 카작인이었으며 영어를 능숙하게 말하고 있었다. 아스카르가 타고 온 일제 도요타 미니밴에 짐을 싣고 시내 호텔로 들어갔다. 밤거리는 비교적 어두웠고 차량통행은 많은 편이었는데, 거리에는 굵은 가로수가 우거진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음날 낮에 본 알마티 시가지는 직교형(直交形)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층 건물이 없고 굵은 아름드리 나무가 많아 도시전체가 공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이곳은 1929년부터 1997년 까지 약 70년 간 카지흐스탄의 수도였으며 인구는 약 13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공항에서 시내 호텔까지는 4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시내 호텔로 오는 도중에도 길거리 전봇대에 붙어있는 LG전자의 광고판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알마티 중심가의 아빌라이 챤 거리에 있는 제티수(Zhetisu) 호텔로 갔는데, 호텔로비에는 영문보다는 카자흐스탄 말로 된 안내판만 있고 로비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이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해 매우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제티수 호텔은 ㄷ자 형태의 6층짜리의 큰 호텔이었는데, 구 소련시대에 지어졌는 듯 매우 낡아보였다. 로비에는 엘리베이터가 2대가 있는데, 작고 낡아서 우리의 큰 카고백 하나만 실으면 내부가 가득차버려 두 사람이 타기에도 비좁았다. 더군다나 엘리베이터 내부 버튼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아 카고백을 하나 더 실으려고 문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어도 엘리베이터는 제멋대로 ‘우당탕’ 하면서 문이 닫혀 버렸다. 그 이후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마다 긴장해서 신속히 타고 내려야 했다. 객실에는 국산 대우 텔레비전이 놓여 있고, 침대에는 양탄자 이불이 덮혀 있었는데 내부 시설들은 텔레비전을 빼고는 전체적으로 낡아보였다.

 

호텔 첵크인을 한 후 현지시간으로 밤 10시 30분경에 다시 호텔 밖으로 나와 늦은 저녁식사를 하려고 호텔 주변을 다녀보았다. 호텔 주변인데도 거리가 어둡고 불이 켜진 식당도 얼른 눈에 띄지를 않아 호텔 건너편의 햄버거집에서 콜라에 햄버거를 먹었다. 알마티에서는 상가의 간판이나 안내문이 러시아어 일색으로 영어간판을 찾아보기 힘들어 갑자기 문맹이 된 느낌이 들었다. 길거리의 이정표나 간판이라도 읽어볼 수 있도록 한국에서 러시아어 읽는 법을 알고 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우리 셋은 맥주를 한 잔 더하려고 호텔 인근의 음악소리가 요란한 한 맥주바에 들어갔다. 식당과 술집을 겸하는지 메뉴판에는 음식사진이 들어있어 레스토랑 같았지만 넓은 홀에서는 한 무리의 남녀가 빠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는 흑맥주를 마시면서 모두 같은 일행인 듯한 카작인들의 춤추는 모습을 보며 미지의 새로운 여행지에서의 정취를 즐겼다. 그때만은 메뉴판을 읽을 줄 몰라도, 말이 통하지 않아도 좋았다.

 

다음날 오전에는 키르기즈스탄(Kyrgyzstan)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오전에 호텔로 온 칸텡그리여행사의 다우렌 발리예프(Dauren Valiyev)씨와 함께 나 혼자 카자흐스탄등산협회(KMF)로 갔다. 다우렌씨와 함께 대한산악연맹(KAF)과 카자흐스탄등산협회(KMF) 사이의 칸텡그리 아시아산악인합동등반에 관한 계약사항을 확인하고, 합동등반 참가비 3,150달러를 지불하고 영수증을 받았다.(1인당 참가비가 1,050 USD) 그리고, 키르기즈스탄의 비자 발급 대행을 부탁하였다. 키르기즈스탄의 비자비용은 카자흐스탄 비자발급 비용의 2배인 120달러가 들었다. 다우렌씨는 키르기즈스탄의 영사관으로 가고, 나는 카자흐스탄등산협회 사무실에서 1시간가량 기다린 후에 비자가 나온 여권을 받아 호텔로 돌아왔다.

 

 

등반을 위해 베이스캠프로 들어가면 거의 한 달 만에 돌아와야 하므로 알마티를 떠나기 전에 한국 식당에서 한국음식 맛에 빠져보기로 했다. 우리 일행 셋은 점심을 먹기 위해 호텔 건너편 줌(Zum) 백화점 옆에 있는 한국식당 로뎀(Rodem)으로 가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식당에서 친절한 로뎀의 젊은 한국인 여사장을 만났는데, 그 분으로부터 호텔 주변의 지리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 부근이 서울의 명동 같은 번화가이며, 현재는 알마티의 구도심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백화점과 식당 앞길에는 젊은 사람들의 통행이 굉장히 많아 생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넓은 6차선의 도로에는 승용차들로 가득 메워 있어 어젯밤의 쥐 죽은 듯한 불 꺼진 거리하고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어젯밤에 우리가 호텔 밖으로 나왔을 때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상점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의 통행이 없어 거리 전체가 한적하고 어둡게 보였던 듯 했다.

 

 

 

4. 카르카라(Karkara) 베이스캠프를 향하여

 

우리는 점심 식사를 한 후에 작은 얼굴의 전형적인 카작인인 아스카르가 운전하는 일제 도요타 미니밴을 타고 카르카라(Karkara) 베이스캠프를 향해 출발하였다. 중앙천산의 칸텡그리를 등반하기 위해서는 알마티에서 동쪽으로 약 280km 정도 떨어진 등반의 전초기지라 할 수 있는 카르카라(Karkara) 베이스캠프로 가야한다. 카자흐스탄등산협회에서 합동등반대에 보낸 자료에는 알마티와 카르카라 베이스캠프와의 거리를 280km로 안내하고 있고, 내가 떠나기 전에 조사해본 한국에 있는 거의 모든 칸텡그리 원정보고서에는 알마티에서 카르카라 베이스캠프까지의 거리를 400km에 8시간이 걸린다고 나와 있어, 실제로는 얼마나 되는지 이점이 매우 궁금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탄 미니밴의 거리계를 가지고 조사해보니 알마티의 제티수호텔에서 카르카라 베이스캠프까지는 정확하게 280km가 나왔다. 두 지역 간의 실제거리가 칸텡그리 등반보고서 등과 120km 정도의 오차가 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알마티에서 카르카라 베이스캠프까지의 거리를 400km라고 한 것은 분명히 잘못 기술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쓴 자료를 여기저기서 베껴 쓴 결과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걸린 시간도 자동차의 성능이나 도로의 포장상태, 운전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는 6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것도 우리는 중간에 과일가게가 있는 마을에서 과일을 사면서 지체하고, 차린계곡에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점심도시락을 먹고 갔는데도 말이다. 알마티를 벗어나 카르카라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동안 비교적 도로 포장 상태가 형편없었으며, 키르기즈스탄 국경을 얼마 남겨두고는 비포장 길이 나와 차량이 더욱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아름드리 상수리나무나 버드나무 가로수가 우거진 알마티 시내를 벗어나면 끝없이 이어지는 대평원이 나왔다. 가끔씩 나오는 마을에는 집집마다 많은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우리나라의 시골집에 심겨진 감나무처럼 알마티 주변에는 사과나무가 많았다. 알마티란 카작어로 '사과의 아버지 또는 사과가 풍부한 곳(abundant in apple)'이란 뜻이라 하는데 시 외곽에는 사과나무 과수원이 정말 많았다. 알마티에서 멀어지면 키 큰 버드나무 가로수들의 키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고, 길가의 가로수를 따라 도요타 미니밴은 곧게 뻗은 도로를 따라 질주했다. 대평원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초원의 북쪽으로는 지평선이 보일만큼 광활했다. 마을 근처에서는 말을 탄 농부나 말 달구지를 끌고 가는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도로변 아름드리 가로수 너머에는 밀, 담배, 옥수수, 해바라기 등의 경작지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남쪽 멀리로는 북천산의 만년설도 스쳐지나갔다.

 

알마티를 떠난 지 2시간 후, 우리는 과일이 풍부한 바이세잇(Baiseit) 마을의 시장에서 베이스캠프에서 먹을 사과, 토마토, 메론, 수박 등을 사서 차에 실었다. 바이세잇 마을을 지나고 나서 서서히 기후가 건조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버드나무 가로수는 사라지고 가시가 많은 메마르고 짧은 풀들이 자라며 넓은 하천은 메말라 자갈이 드러나 있었다. 그 이후 도로는 산길로 접어들며 협곡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이 코크펙 계곡(Kokpek Valley)이라고 한다. 계곡을 지나면 광활한 반사막(半砂漠)지역인 '슈케친스카야 평원'을 지나게 되고 알마티를 떠난 지 약 3시간 후에 우리는 차린강(Charyn River)이 깍아 만든 차린 캐년(Charyn Canyon)에 도착하였다. 알마티로부터 약 200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차린 캐년(Charyn Canyon)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Grand Canyon)과 같은 깊은 협곡인데, 협곡 아래로는 차린강(Charyn River)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차린강이 내려다보이는 넓은 공터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먹기 위해 협곡의 풍경을 감상하며 잠시 쉬었다. 세차게 흐르는 치린강 위의 누런 황토빛 협곡은 그 노랗고 붉은 흙 색깔로 인해 옐로우 캐년(Yellow Canyon)이라고 불린다고도 한다. 차린 캐년과 반사막 지역을 지나 다시 고개를 넘어가면 포장도로가 비포장도로로 바뀌면서 멀리 유목민의 이동식 주택인 유르트(Yurt)가 보이고 소와 양떼들이 길을 막는 초원지대가 나타났다. 초원지대에는 유목민 마을이 있는데, 마을 근처에는 어김없이 공동묘지가 있었다. 마을에 이르기 전에 먼저 나타나는 공동묘지를 보면 마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작은 묘지가 있으면 작은 마을이 있었고, 넓고 큰 공동묘지가 있으면 큰 마을이 나타났다.

[사진 위 : 아름다운 차린 캐년의 모습]

 

알마티를 떠난지 5시간 쯤 지날 무렵, 우리는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즈스탄의 국경에 이르렀다. 국경이라고 해봐야 두 나라를 가르는 국경선도 철조망도 없었지만 도로 상에 검문소가 있어 우리는 차에서 내려 여권심사를 받아야했다. 여름이지만 검문소의 병사들은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있었다. 고지대이기 때문에 밤에는 추위가 심한가 보았다. 컨테이너 사무실 밖에서 [알마티에서 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아름다운 차린 캐년(Charyn Canyon)의 모습]출입국 심사를 받는 동안 낮인데도 구름이 끼어서 그런지 더위를 느끼지 못했다. 검문소를 지나 이제 우리는 키르기즈스탄 땅에 들어서게 되는데 차는 여기저기 말똥이 널려있는 비포장도로의 키르기즈스탄 영토를 달렸다. 길 양쪽 초원에는 방목하는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왼쪽에 작은 강을 끼고 30분가량 달린 후 강을 건너면 다시 카자흐스탄 영토가 나왔고 그곳에 우리의 목적지인 카르카라 베이스캠프(Karkara B.C.)가 있었다.

 

 

5. 알프스 같은 카르카라 베이스캠프(Karkara Base Camp)에서

 

우리는 알마티를 출발한지 5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7시 30분경에 드넓은 초원 위에 있는 카르카라 베이스캠프(Karkara BC)에 도착하여, 카자흐스탄등산협회 회장이며 칸텡그리 여행사의 사장인 카즈벡 발리에프(Kazbek Valiev) 씨의 환영을 받고 우리의 일정과 이곳 캠프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받았다. 떡 벌어진 어깨에 건장한 체격을 지닌 40대 중반의 카즈벡 씨는 1982년에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경력이 있으며 구소련의 등산영웅으로 카자흐스탄에서는 존경받는 산악인 출신이다.

 

카르카라 베이스캠프(Karkara BC)는 아주 목가적인 풍경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캠프의 남쪽 아래에는 동쪽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카르카라 강(Karkara River)이 흐르고 있고, 이 강이 양국의 경계로서 베이스캠프는 카자흐스탄 땅에 위치해 있다. 오는 도중 키르기즈스탄의 땅을 30-40분 지나와야 하기 때문에 키르기즈스탄 비자를 꼭 내고 와야만 하는 것이다. 해발고도 2,200m인 초원에 위치한 베이스캠프는 식당과 매점으로 이용되는 단층 건물이 있고, 창고, 헬기장, 화장실, 온수가 공급되는 샤워장과 2인용 캐빈텐트가 40-50동 가량 설치되어 있다.

 

학교 운동장 같은 잔디밭 건너에 있는 국기게양대에는 베이스캠프에 머무르는 각국 원정대나 관광객들의 국기(國旗)가 게양되어있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카르카라 베이스캠프는 전기와 전화시설이 되어 있고, 국제전화는 위성전화를 이용하여 할 수 있는데 1분에 약 미화 6달러로 상당히 비싼 편이다. 내가 등반을 마치고 카르카라 베이스 캠프에서 며칠 머물며 알마티로 떠나기 전에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집사람과 아이들하고 통화를 하면서 모처럼 가족과의 통화로 그만 7분 30초나 하게 되어 45달러(한화 약 5만원)를 통화료로 지불하였다.

 

다음날 아침 캠프에서 카르카라 강 너머 바라본 풍경은 알프스 자락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졌다. 강 건너의 키르기즈스탄 유목민 마을에는 말과 양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드문드문 가문비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야트막한 산은 푸른 초원으로 덮여있었다. 건조한 기후 탓인지 한여름 낮의 하늘은 우리나라 가을 하늘보다도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텐트에 매달아놓은 온도계의 눈금은 한낮에도 기온이 22~23℃를 넘지 않았고 새벽녘의 기온이 8~9℃ 정도이니, 우리나라의 가을 단풍이 무르익는 10월과 같았다. 이곳에서는 새벽과 밤에만 파일 자켓을 입을 뿐 두꺼운 우모복은 필요 없었다.

 

그러나 이곳의 날씨는 우리나라 날씨와는 사뭇 달랐다. 오전에는 화창한 날씨였다가도 오후가 되면 구름이 끼고 바람이 일었다. 밤이 되면 바람이 강해지고 한두 시간 정도 비가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비가 내려도 우리나라 장마비 같지는 않았다. 맑은 날이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리고는 한 두시간 이내에 감쪽같이 개었다. 언제 비가 왔냐싶게 화창한 날씨로 바뀌었다. 맑은 날 밤에는 새카만 밤하늘에서 별의 향연이 벌어졌다. 어두운 밤하늘에 쏟아질 것 같은 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은하수는 별의 강이었다. 새까만 하늘에 유리 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선명한 은하수가 밤하늘을 동서로 갈라놓았다. 나는 밤마다 북쪽하늘의 북극성을 먼저 찾아낸 후 알고 있는 별자리들을 찾아가는 별자리 여행을 하곤 했다.

 

오후에는 카르카라 캠프에서 가벼운 트레킹을 다녀왔다. 캠프 바로 뒷산으로 떠나는 트레킹이라 배낭에 간단히 물만 챙겨들고 캠프를 나섰다. 우리나라의 여름 소백산 능선을 천상의 화원이라 했던가? 나무도 없이 초원으로 된 캠프의 뒷산은 온통 야생화 꽃밭이었다. 지천으로 만발한 야생화를 밟고 가기가 안쓰러울 정도로 이곳은 야생화 천지였다. 캠프 뒷산의 정상은 약 2,800m 정도 되는데 정상까지 이어지는 야생화 꽃밭을 조심스럽게 걸었다. 길도 없는 초원에 야생화를 피해서 우리가 걸어가는 곳이 길이 되었다. 오늘 오후는 늦게까지도 구름 한점 없이 맑아 마치 쾌청한 가을날에 소풍을 온 기분이었다. 서너 시간의 트레킹 내내 다양하고 울긋불긋한 야생화의 아름다움과 함께하는 트레킹이었다. 오늘은 가벼운 트레킹으로 마쳤다. 캠프로 돌아와서 마시는 시원한 맥주 맛도 일품이었다.

 

 

캠프에서의 둘째날, 우리는 긴 트레킹을 다녀왔다. 내일은 헬리콥터로 4,000m에 있는 칸텡그리 북면의 이닐첵(Inylchek) 빙하로 바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고소적응은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다. 캠프 동쪽에 있는 고도 3,800m 산으로 트레킹을 다녀왔다. 목초지를 지나고 작은 계곡을 건너 아름드리 가문비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산 능선을 넘었다. 고도 2500m 까지는 초원과 가문비나무 숲이 나타나고, 2500m를 넘어서면 가문비나무 대신에 편백나무 같은 키 작은 나무가 고산초원에 드문드문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올라가는 동안에 뚜렷한 식생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고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가 만발하여 너무나 아름다웠다.

 

고개 마루에서 멀리 산 정상에서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계곡을 내려다보며 이곳의 높이를 가늠해 보았다. 산의 중턱으로 구름이 피어올랐다가 바람에 흩어졌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초원은 울긋불긋한 야생화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능선 위에서는 매우 차고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강한 바람을 피해 야생화 풀밭의 능선 아래에서 캠프에서 준비해준 샌드위치와 오렌지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하는 중에 파리가 많아 조금은 귀찮았으나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초원지대에는 모기와 파리가 많다고 해서 한국에서 스프레이 모기약을 준비해 왔으나 쓰지 않아도 되었다. 캠프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기온이 서늘해서 밤에 모기가 없어 모기약은 한번도 쓰지 않았다.

 

산 정상 근처에 구름이 몰려들어 서둘러 하산을 하였으나 능선 하나도 넘기 전에 비가 내렸다. 오전에 날씨가 너무 좋아 우의를 챙겨오지 않았는데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오니 자연히 걸음이 빨라졌으나 비를 피할 수는 없었다. 내 키보다 작은 나무들 사이의 능선에서 비를 맞는 것은 괜찮으나, 벼락을 만날까봐 몹시 빠른 걸음으로 내려왔다. 바로 등 뒤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등산을 다니면서 비를 자주 만났으나 오늘처럼 산 능선에서 이렇게 벼락이 두려운 적이 없었다. 거의 뛰다시피 걸었으나 비를 맞으며 캠프로 돌아오니 등산화는 물이 차서 출렁거리고 속옷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이렇게 하루에 한차례씩 비가 오니 초원이 아름답게 꽃을 피울 수 있었을 것이다. 여름인데도 비를 맞고나니 추웠다. 캠프로 돌아와서 샤워장에서 젖은 옷을 빨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오니 다시 해가 나와 있었다. 한 두 시간 정도 비를 뿌리고 날씨는 거짓말처럼 개어 있었다.

 

우리 팀의 막내인 이형모 대원이 서둘러 샤워를 한 후 컵라면을 끓였다. 우리는 식당에 모여앉아 모처럼 한국에서 준비해 간 사발면을 먹으며 피로를 풀었다. 나는 평소에는 라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그 때처럼 사발면이 맛있었던 적은 없었다. 라면 국물에 뜨거운 물을 더 부어 얼큰한 국물을 마시니 속이 다 시원하였다. 그동안 이곳 음식에 길이 들었다 해도 우리는 라면 국물 맛에 매료되었다. 그만큼 한국음식의 국물 맛이 그리웠다는 것은 라면 국물 맛이 맛있었던 것만큼이나 고국과 가족이 그리웠는지도 몰랐다.

 

 

 

6. 칸텡그리 북면 베이스캠프를 향하여

 

카르카라베이스 캠프 도착 3일 째에 우리는 헬리콥터로 칸텡그리 북면 베이스캠프로 이동하였다. 맑았던 날이 흐려져 보슬비가 내리는 속에 우리팀 3명과 러시아팀 3명 그리고 카즈벡씨와 몇 명의 캠프 스탭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캠프 뒤편 헬기장에서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소련제 대형 헬리콥터에는 상당히 많은 짐과 사람을 태울 수 있었다. 북면 캠프와 남면에 있는 포베다 캠프로 가져갈 주방용 대형 가스통과 쌀, 채소, 과일, 술, 담배 등 식량을 가득 싣고 굉음을 울리며 헬리콥터는 떠올랐다. 프로펠러의 강한 바람을 맞고 초원의 풀들이 일시에 누웠고, 카르카라베이스 캠프와 카르카라강(Karkara River) 건너 키르기즈스탄 유목민의 집들이 발아래에 있었다.

 

키르기즈스탄 땅의 낮은 언덕 위에 펼쳐진 알프스 풍경 같은 초원과 유목민 부락의 평화로운 풍경이 점점 멀어져가고, 나무도 없이 고원식물로만 가득찬 광대하고 완만한 구릉지대가 나타났다. 푸른 초원위에 있는 베이스캠프의 빨간색 지붕의 식당 건물이 아스라이 보일 때 멀리 동쪽 하늘아래 파미르고원의 설봉들이 나타났다. 멀리 천산산맥의 만년설을 인 고봉들이 눈에 들어올 때 거대한 강물의 흐름처럼 흰 빙하가 나타났다. 북이닐첵 빙하는 칸텡그리 북면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긴 흐름을 나타내고 있었다. 헬리콥터는 비행한지 30분이 조금 지나 칸텡그리 북면의 빙하 위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헬리콥터는 엔진을 켠채로 등반대와 짐을 내려놓고는 곧바로 이륙을 하여 칸텡그리산을 넘어 남면에 있는 포베다 등반기지인 남면 빙하를 향하여 날아가 버렸다.

 

카즈벡씨가 함께 내려 2005년 아시아산악인합동등반대에 대한 소개라도 있을 줄 알았으나 그는 “굳 럭”이란 간단한 인사말만 남기고 떠났다. 우리가 내린 곳은 캠프와 북면 사이의 눈 덮인 빙하 위였다. 헬리콥터의 날개바람으로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많은 눈가루가 휘날렸다. 빙하 위에서 파일자켓만을 입고 있었더니 구름이 짙게 끼어 날씨가 매우 추웠다. 구름 낀 남쪽 하늘 아래에 수직으로 3,000m를 솟은 칸텡그리가 마치 거대한 벽처럼 버티고 있었다. 칸텡그리 북면이었다. 너무나 가파른 암벽과 설벽으로 되어있어 기가 죽을 정도였다. 칸텡그리 정상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우리 셋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북면을 쳐다보기만 하였다. 나는 처음 보는 엄청난 수직 북면의 위엄 앞에 그저 숨죽이고 바라만 보았다. 내가 즐겨입는 등산복 메이커인 「노스페이스」의 깊은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북면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많은 외국 등반대가 있었고, 한국 등반대가 한 팀이 와 있었으나 텐트에 태극기만 걸어놓고 아무도 없어 캠프 스탭에게 물어보니 한국팀 5명은 현재 캠프2에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캠프 매니저인 알렉산더(44세)와 다른 스탭들의 도움으로 짐을 옮기고 캠프의 중앙에 위치한 식당텐트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점심식사는 먼저 감자를 깍두기처럼 썰어 넣은 양고기 국물을 먹으면 양고기와 국수를 섞어 만든 볶음국수가 나왔다. 그동안 고소순응이 잘 되었는지 자장면에 익숙한 우리들은 자장면 먹듯이 볶음국수도 잘 먹었다. 볶음국수는 느끼하지도 않아 먹을 만 했는데, 나는 양이 너무 많아 조금 남겼다. 식사 후에 나오는 홍차는 너무 진하여 뜨거운 물을 더 넣어 희석하여 마셨다.

 

베이스캠프에는 식당텐트를 중심으로 약 40-50동의 캐빈형 텐트가 빙하 위에 설치되어 있는데, 텐트 바닥은 나무판이 깔려있어 바닥이 편평하므로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점심식사 후 텐트 2동을 배정받아 홍재기 대원과 이형모 대원이 같은 텐트를 쓰고, 옆 텐트를 내 혼자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 텐트는 빙하 건너편에 있는 칸텡그리 북면이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 전망이 매우 좋았다. 매일 아침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만년설에 덮인 칸텡그리 정상을 보며 잠을 깰 수 있었다.

 

이곳 베이스캠프에서 지내는 동안 아시아산악인들이 함께 모여 벌이는 UAAA(Union of Asian Alpine Associations)의 합동등반 행사는 별도로 진행을 하지 않았다. UAAA 참가국의 대원들이 모여서 함께하는 개회식도 없고, 합동등반에 대한 간단한 설명조차도 없었다. 올해의 칸텡그리에서 열리는 아시아산악인 합동등반은 진정한 합동등반 행사라기보다는 칸텡그리여행사에서 개최하는 칸텡그리 국제캠프에 동참한 셈이었다. 각 나라에서 참가한 등반대가 스스로 알아서 칸텡그리 정상을 향해 오르기만 하면 되었다. 우리 팀도 카자흐스탄등산협회에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등반을 하기로 하고 준비하였다.

 

이 곳 북면 베이스캠프에서의 하루 일과는 아침 8시 30분에 아침식사를 하고 각자 등반 준비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오후 2시에는 점심식사를 하며, 저녁식사는 오후 8시에 하였다. 이곳 북면 베이스캠프에서의 식사시간은 카르카라 캠프와 똑 같았다. 식사시간이 되면 식당텐트 입구에 걸어 둔 종을 치고, 이 종소리를 듣고 각자의 텐트에서 사람들이 이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텐트 안에서는 약 백 명 정도의 사람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등반가들로 조용하던 텐트가 금새 사람 소리로 채워졌다. 유럽이 가까워서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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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조주현
몇년전 티벳 쪽으로 트레킹 갈 수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못가서 늘 아쉬웠는데---- 이곳은 더 좋은 곳인것같네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엄기준
좋은 자료 매우 감사합니다~~~
최해원
작년에 카자흐스탄 댕겨 왔었는데 만년설에 덮힌 높은산이 바로 코앞에 보이더니 거길 올라갈라구 ??
조심해서 댕겨 오너라 !! 무척 뽀쪽하게 보이던데 ~~~~~
임우순
좋은 여행 자료 매우 고마우리......
김일종
김영채 오래만이다. 반갑다. 나는 지리교육과 김일종이다. 지금은 강원도 삼척 미로중학교에서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후보생때 자네 모습 눈에 선하군. 지금도 완도에 있나? 하여간 이렇게 나마 안부 묻게되어
감회가 스스롭다. 항상 건강하자.
오자진1D
일종이 이제야 기지개를 켰구먼
매일 눈팅만 하다가 김용채가 나오니 무척 반갑지
동기회보 만들면서 공주사대 동기모임 200-300자 정도 설명글하고 단체사진 회장 사진 보내랬더니 김용채동기의 A4용지 20페이지 가까운 발음도 어려운 간이뗑그라니 큰산(해발7,000m) 등정기를
덜렁 보내온거야
그러구 공주에서 공부했으면 충청도에서 후학을 가르쳐야지 강원도로 서울로 전남 완도로 왜 다
달아난거야
김영채
오자진 동기, 동기회보 준비하느라 수고가 많네.  우리 15기 동기회보의 양을 잘 몰라 등반기 전체를 보냈더니 그 일이 일파만파라.... 원고를 줄여달라는 전화를 받고 나도 매우 미안했었지.
그 이후 30일간의 등반일기 중 어느 날 하루 일기를 정리해서 A4 두 장짜리 원고 [카르카라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원고를 보냈네.
건투를 비네. -김영채-
김영채
김일종, 정말 오랬만이다. 왜 너를 잘 모르겠니? 후보생 시절에 학과 축구선수로 맹위를 떨치던 우리들 아닌가? 나는 도서학교 근무 부가점이 필요해서 올해가 완도 노화도에서 3년째 도서 근무 중이다. 김교장, 언제 한 번 만나자. 만날 때까지 건강해라. -김영채-
김영채
정재화 산악회장, 정회장의 전화를 받고 바로 등반기를 올리지 못했더니 정재화 회장이 직접 글을 올리셨구먼.....
전화 받을 무렵이 무척 학교가 바쁜 때여서 원고를 손 볼 틈이 없었네.
내가 2001년에 중국 쪽 파미르(신장 위구르자치구) 에 있는 무즈타그 아타를 등반을 했었는데, 원정을 떠나기 전에 과거 그 때를 잠시 회상한 것이고, 실은 이글은 카자흐스탄의 칸텡그리라는 산이라네. 아시아산악연맹에서 주최한 아시아산악인합동등반에 대한산악연맹에서 3명의 미니 원정대를 보냈는데, 내가 원정대장으로 다녀 온 등반기라네.
우리 15기 산악회 모임이 전라도에서 열리면 꼭 참석하여 얼굴들을 보고 싶네.
산을 사랑하는 동기들을 만나고 싶네. -김영채-
정재화
김영채 동기.자네 글에 사진이 빠져있어 혹 사진 순서대로 나에게 이메일로 보내면 상기 글에 첨부 하겠네.
e-mail 주소 edward1120@hanmail.net

광주에 있는 한전 근무 이만형동기와 같이 조만간 남도에서 산행 같이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