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움산 등정기

산악회

쉰움산 등정기

조주현 8 2,331

떠남은 새로운 만남을 기약할 수 있어서 좋다. 또다른 만남은 설레임의 끝자락이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여전히 '떠남'은 즐겁고, 일상에 숨어 있던 객기(客氣)를 발동하게 한다. 2008년 3월 8일 이른 아침. 우리는 한껏 부푼 기대를 베낭에 담아 걸러메고 삼척행 버스에 오른다.

오늘 처음 만났어도 오랜 지기(知己) 같은 느낌이 드는 동기생들. 그래, 우린 지난 30년간 이 모진 세상의 풍랑을 잘도 버티어온 진정한 전우(戰友)요 전사(戰士)다. 

오늘은 그들과 함께여서 더더욱 즐겁다. 마음을 들뜨게 한다.

 
057rotc_copy1.jpg 
 
도시의 빌딩 숲에서 일상으로 만날 수 밖에 없었던 폐쇄와 밀폐. 그로부터 벗어난 순간에 접하게 되는 이 광활한 자유 앞에서 우리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어울리지도 않을 뿐아니라 작고 불편한 치장을 하며 살았던가를 깨닫게 된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강릉을 거쳐 옥계에 다다르면 만나는 대양의 활원함!!!! 탁 트인 장쾌함!!! 저것이 바로 '일망무제'의 경지 아니던가!!
드넓은 대양 앞에서 어지러운 일상일랑 벗어던지고 잊어버리라는 뜻인지, 버스는 <망상>이라는 곳을 지나고 있다.
015rotc_copy.jpg
 
 
오늘 산행의 목적지 삼척 미로면 쉰움산. 두타산 정상에서 천은사로 향해 쏟아져 내리는 비탈길 중간에 아주 잠시 숨을 몰아 쉴 자리에 앉아 있는 쉰움산. 이름도 참으로 특이하다 싶은데 쉰 개의 우물같은 웅덩이가 있다하여 <쉰움>이라 했단다. 쉬움산 개념도.
 
142rotc.jpg
 
 
쉰움산의 기점은 천은사이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가 외가집이 위치한 이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며 <제왕운기>를 저술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얼마전 내린 폭설로 절 마당은 여전히 눈밭이지만 천은사 대웅전 앞으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엔 이미 봄이 한웅큼 담겨있다.
152rotc.jpg  
 
 
무릉계에 위치한 삼화사에 책을 빌리러 다녔다는 이승휴가 천은사에서 나와 쉰움산을 거쳐 두타산성을 끼고 무릉계로 오가던 길. 그 눈길을 헤치며 오늘은 대한민국 ROTC 15기 동기생들이 걷고 있다.
047rotc.jpg
 
하얀 설원을 걷는 즐거움과 기쁨. 두텁게 쌓인 눈과 겨우내 얼음 속에 꽁꽁 갇혀있던 계곡은 어느새 녹아 내리고 있었다.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거역할 수 없는 계절의 순환. 아! 그 계곡에서 우린 봄의 맑은 물소리로 귓전을 내내 맴돌던 도시의 소음을 단숨에 씻어낸다.
029rotc.jpg
 
잠시 길을 잃고 헤매는 사이. 40여명의 독도법도 30년이 지나니 녹슬었는고? 하산 하는 이름모를 여인의 도움을 받아 겨우 쉰움산 정상을 향한 길을 찾아 오른다. 고단한 가풀막길.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소리도 차츰 잦아 든다. 가뿐 숨소리들!! 그나마 고운 자태의 금강송을 바라 볼 수 있어 위안이다.
 
014rotc.jpg
 
그렇게 오른 쉰움산 정상. 두타산을 올려 보며, 발아래 무릉계곡을 내려다 보며 기념 촬영!!  '하이 락!, 하이락!' 함께 외쳐대는 구호 소리가 힘차게 메아리 친다.
007rotc.jpg
 
'축융봉을 내려오며 하산의 즐거움'을 노래한 자 누구인가? 하산 길 중허리에서 만난 너럭바위와 천길 낭떠러지의 아찔한  추락!! 이를 배경으로 우린 넉넉한 웃음을 그곳에 새겨 놓고 하산을 재촉한다.
025rotc.jpg
 
 
그렇게 하산을 재촉하는 우리들의 뒷모습을 백두대간은 묵묵히 지켜 보고 있다.
 
여 보시게 친구
예까지 멀리 왔는데
어찌 그냥 발길을 돌리시려는가?
 
자! 자!
술 한잔 받으시게나.
 
그런데 꼭 기억하시게
내가 방금
자네 잔에 가득 따라 부은 것은
술이 아닐세.
 
쉰움에서 길어 올린 정화수에
두타의 정수리로 피어오르는 기상을
우려낸 불로주라네.
 
자 드세.
원 샷!!!
 
1.jpg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

정재화
쉰움산 등정기 감사합니다.
이명희15D
행사도 멋지게 치루고 멋진 등정기 까지.. 감사합니다.
유재황
조 주현 교장의 글에 다시한변 감탄을 해본다!  역시  학군 장교는 문무를 겸비한 대한민국의  보배야,  쉰움산 등반을 하게해준 친구들께  고마움을 전하네.
정재화
산악회 매월 정기산행이 날로 발전하여 이제는 총동기회 주관행사로 격상되는듯하여 보람과 자부심을
느낌니다. 수고하신 박창두 등반대장, 정진욱 총무 수고하셨고요 조주현 동기의 "쉰움산 등정기" 글을
동기회보 3월호에 게재토록 하겠습니다.
최해원
감명깊게 읽었네 !!
산상 점호를 빼먹어 무척이도 아쉽다네 !!
오자진1D
요걸루 동기회보에 올릴 물건이라는거제(원고접수완료)

영경묘 .죽서루, 삼척 정라진두 좋던데
배형근
만남의 즐거움을 준 그대가 이렇게 글로써 까지 감명을 주니
그대는 분명 멋쟁이 일세!!
엄기준
주현이 멋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