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포에서 보낸 여름휴가
최천숙
비 뿌린 뒤, 안개 자욱한 밤바다. 섬도, 물결도, 보이지 않는다.
안개가 흐르지도 않고 멈춰 장막을 친 듯 시야가 흐리고, 뿌옇게 깜깜하다.
파도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발밑에 모래의 감촉만 있을 뿐 어둠속에 묻혔다.
모래밭에 철골로 세워진 전망대가 있어, 해수욕장이란 생각이 든다.
꿈속 풍경 같다. 옆에 있는 친구를 눈을 크게 뜨고 보았다. 그래야 보일 것
같아 서다. 미지의세계로 발을 딛는 기분으로 한치 앞을 모르고 사는 인생 같단다.
처음 보는 특별한 장면이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일 년에 정기모임 두 번 중 여름휴가 때 모이는 부부동반 모임이다.
학군동기로 소대장 시절 같은 사단에서 근무한 전우들로 구성되어있다. 아주 오래된 모임이라 허물없이 친하다.
올해는 이곳 충남 태안군에 있는 연포 해수욕장에 모였다. 멀리 건너편 바닷가에 불빛이 총총히 켜져 둥그런 모양을 하고 있다. 야외에 스테이지를 마련한 주점에서 맥주 한잔씩 하며 노래에 몸을 싣고 춤추며, “무인도” “고래사냥” “그대 그리고 나”를 목 놓아 불렀다. 팬션 안에서 잠을 청하던 사람들은 잘 수가 없었을 거다.
간밤에 비가 무섭게 내리더니, 오늘은 하늘이 흐리긴 하지만, 날이 밝다.
해수욕장 정경이 한 눈에 보인다. 주변은 소나무로 둘러 쳐져 있고, 해당화가 피어있다.
바다 가운데 사람머리처럼 솟아오른 섬에는 해송이 가득 차 있다. 그 뒤쪽으로 바위섬이 보인다. 파도가 부딪히며 흰 물거품을 내 뿜는다. 회색 하늘과 바다 빛이 같아 하늘과 바다가 하나 되어 있다. 방파제 위에는 낚시꾼이 둘 셋 모여 앉아 있고, 안쪽으로는 고기잡이배가 나란히 들어와 있다. 젖은 모래위에 갈매기가 먹이를 찾는지 두리번거린다. 부리 끝이 색깔도 다른 것이 무척 날카로워 보인다. 흐린 하늘 위에도 꾸르륵 소리 내며 날고 있다. 두 팔을 크게 벌리고, 포근하게 안고 있는 둥근 모양의 연포이다.
모래가 너무 부드럽고, 물빠짐의 감촉이 좋아 맨발로 해변을 걸었다. 발목에 와 닿는 바닷물이 차지 않다. 난류가 마지막으로 돌아 나가는 곳이라 물이 따뜻한가보다. 바다 속에 잠기며 즐겁게 노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어린아이가 물가에서 놀다가 밀려오는 파도에 걸려 넘어졌다. 할머니가 물에 빠진 손자를 안고 나오며, “ 바닷물이 짜지” 하신다. 두 손을 모아잡고 거니는 부부, 딸과 아버지, 모두 정겨운 모습으로 해변을 거닌다. 나는 조개를 한줌 주워왔다.
불판에 조개 굽는 냄새가 난다. 소고기도 돼지고기도 굽는다. 남편들이 주로 굽고, 우리는 맛있게 먹으면 된다. 상추에 고기 올리고, 마늘저민 것과 고추와 쌈장 발라 동그랗게 모아 고기 굽는 남자들 입에 넣어준다. 마누라 눈치를 보는 건지, 건강을 걱정해서 인지, 날이 갈수록 주량이 줄어든다. 그 대신 말이 많아지나 보다. 웃고 떠들며 하루가 지나간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번갈아가며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나쁜 일이 있을 때 슬기롭게 잘 보내야한다. 친구들의 조언과 위로도 필요하겠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푸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올 여름은 비가 많이 와 여름휴가 때에도 맑은 하늘을 보지 못했지만, 흐린 날이 오히려 서해안과 어울린다고 느껴졌다. 회색빛의 바다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들뜨지 않고, 소박하고 아늑한 분위기 였다. 우리의 이번모임도 그랬다.
여름이 지나고, 다음 겨울모임에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 즐겁고, 행복한 겨울을 맞이하고 싶다.
작은집 형수가 나는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