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사랑

자유게시판

잘못된 사랑

정재화 15 1,021
주관이 모자라면 군중의 노예가 되고, 주관이 지나치면 망상(妄想)의 종이 된다. 무식하면 고집이 세다지만, 유식하다는 지식인들의 억지도 그에 못지않다. ‘미국의 꼭두각시들, 한반도에서 중대한 전쟁 도발’. 한국전쟁 발발 다음날인 1950년 6월 26일 프랑스 공산당 기관지 ‘뤼마니테’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그 이튿날에는 사회학자 레몽 아롱이 ‘르피가로’에 정반대의 글을 기고했다. “북한군이 남한을 침략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가장 중대한 사건이다.” 늘 그렇듯이 좌파에 휘둘리는 프랑스 지식사회는 ‘뤼마니테’를 지지하고 나섰다. 아롱과 나치 시절의 레지스탕스 동지였던 사르트르마저도 아롱의 남침설을 잠꼬대 취급했다. 언제나 양심적이었던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만이 아롱을 외롭게 지지했을 뿐이다.

사르트르의 오랜 사상적 동지였던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1956년 소련 군대가 약소국 헝가리를 침략하는 것을 보고 질겁한 나머지 스탈린에 대한 비판자로 돌아섰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새로운 미래를 위한 진보적 폭력”이라고 강변하면서 퐁티를 격렬히 비난했다. 침략의 ‘사실’보다 그것의 ‘해석’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그 후 북한의 남침이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자 사르트르는 다시 남침유도설이라는 것을 내놓았는데, 북한이 남침하도록 미국이 함정을 팠다는 것이다. 북한의 남침은 ‘진보적 폭력’이 된 셈이다. 사르트르의 억지에 질린 퐁티는 끝내 그와 결별하고 말았다. “우리는 서로 잘못 사랑했다!” 훗날 사르트르가 토해낸 고백이다.

그러나 그가 오랜 동지 아롱과 싸우고 퐁티와도 등을 돌리게 된 것은 그들과의 잘못된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이념의 우상, 독선(獨善)의 도그마(dogma)를 향한 잘못된 사랑 때문이었다. 그는 ‘실존의 자유’를 사랑했으나 끌어안은 것은 소련의 교조주의(敎條主義)였고 입 맞춘 것은 북한의 주체사상이었다. 소설 『자유의 길』을 쓴 탁월한 지성이 이데올로기의 굴레에서 한 치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은 기막힌 아이러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쪽의 군사독재에 이를 갈며 저항했던 지식인들이 북쪽의 선군(先軍)독재에는 턱없이 너그럽기만 하다. ‘북침’이라고 비난하던 6·25가 남침으로 밝혀진 후 ‘통일전쟁’이라며 미화한다. ‘사실’을 ‘해석’으로 바꾼 것이다. 사르트르의 억지 그대로다.

6·25 남침 60주년인 오늘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국적 전문가들이 참여한 민·군 합동조사단은 ‘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을 배제할 만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들을 제시함으로써 천안함 격침이 북한의 테러임을 명백하게 입증했다. 그러자 이제껏 북한 관련 의혹을 ‘소설’이라고 깎아 내리면서 좌초·충돌·내부폭발 등의 ‘판타지’를 쏟아내던 사람들이 도리어 정부와 국군을 사납게 비난하면서 안보 무능에 대한 사과·해임·군사재판을 요구하고 나섰다.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냉철해야 할 지식인들이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으면서도 도무지 부끄러운 줄 모른다.

정부와 국군의 책임은 태산처럼 크다. 사과·해임·군사재판도 미흡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책임이 아무리 크다 한들 가해자의 책임보다 더 클 수는 없을 터인데도 정작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판이 없다. ‘10년 햇볕’을 쬐는 동안에도 북은 핵실험을 강행했지만, 응징은커녕 오히려 ‘일리가 있다’고 두둔했다. 무슨 금기(禁忌)이거나 무오류(無誤謬)의 계율인 듯, 북한 앞에서는 언제나 입을 닫는다. 그 일그러진 지식을 ‘진보’의 아름다운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 이 위중(危重)한 안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북을 감싸려고만 드는 것이 남침유도설과 매우 닮았다.

이유는 분명하다. ‘잘못된 사랑’ 때문이다. 사르트르가 눈멀었던, 그 지독한 도그마의 사랑 말이다. 객관성·보편성과 소통하지 못하는 주관은 억지요 고집일 뿐이다. 이름난 지식인들, 내로라하는 이론가들이 도그마의 허상(虛像)에 눈멀어 얼토당토않은 억지를 부리는 모습은 늘 우리를 놀라게 한다. 퐁티가 사르트르의 억지에 놀랐던 것처럼. “아무리 어리석어도 남을 꾸짖는 데는 밝고, 아무리 총명해도 자기 잘못을 깨닫는 데는 어둡다(人雖至愚責人則明 雖有聰明恕己則昏).” 중국 북송의 재상 범충선공(范忠宣公)이 남긴 통찰이다. 특히 지식인들에게는 새벽의 죽비(竹扉) 소리 같은 채찍일 것이다. 천년의 세월을 건너온 지혜가 천둥 같은 울림으로 가슴을 때리지 않는가?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출처 중앙시평 2010. 5. 24.

Comments

이계인
작금의 사태를 보면서...또한 말 잘하는 비뚤어진 국가관을 가진자들을 보면....참으로 맘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북한이 원래 그러니  제껴두잔다. 걔들은 그러니라 하고 넘어가고  글 내용에 있듯이 그 책임이 아무리 크다 한들 가해자의 책임보다 더 클 수는 없을 터인데도 대통령사과, 내각 총사퇴하란다. 여기에 박수치는 넘들은 또 뭐여!!!! 반드시 선거에 참여 하세요.
이승준
좋으신 말씀..

그런데.. 너무 우측으로 가는 것도 좀..
그렇다고 북한을 두둔하는 건 절대로 아님..
정치는 정치로 봐 줘야 한다는 것 일뿐...

나하고 다르면 다른 거지, 틀린 것이라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으니까..
진동식
우리는 한때 남대문이 불타는것을 보고 좌절과 분노그리고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어떠합니까 ? 가정이 행복하고 자유와 복지를 누리며 미래를 꿈꾸며 비젼을 위하여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내는것은 우리도 국토방위에 한몸을 바칠때가 있듯이 지금도 국가안보를 위하여 헌신하고 있는 여러분들 때문
입니다 안보는 수없이 강조하여도 부족하듯이 우리 역사상 불행하고 치욕적인 삶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규탄대회한다고 다 이루어지는것은 아니지만 안보의식이 많이 약해진듯도 합니다~~~
이번 천안함계기로 뜨거운 안보관이 새롭게 승화되었으면 합니다 다들 근무하는 목요일 2시 시청앞에 참여합시다 부득히 참여 못하는 분들도 가슴속에 안보관이 다시한번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정재화
이번 규탄대회에는 15기집행부와 많은 수도권지역 동기들도 현수막등을  준비하여 안보의식으로 굳게 뭉친 15기 ROTCian임을 만방에 보여주시기를 !
이승준
일찌감치.. 12시 30분쯤에 만나서 점심 먹고 하자며?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내일 15기가 또 판 치겠네..
최해원
중앙시평이 신문이냐 잡지냐 ??
감동 받은글은 감동글/좋은글로 퍼다 날라야지 ㅉㅉㅉㅉㅉ
퍼다나르는 글들은 가능하면 자유계시판을 오염시키지 말자 ~~~~
이승준
놔~ 두라~~ 마..

구분이 좀 애매할 수도 있잖냐..

자유게시판이 눈에 잘 띄니까 그랬을 수도 있고..
임우순
늘 좌파들이 문제이구먼유......좋은 글 감사합니다....
윤윤병
확 와 닫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서옥하
이우근? 어디서 많이 들은 이름인데...! 기억이 안나네! 동기인가?
최종왕
우리 사이트에서도 조심스러운 키워드
정치얘기, 종교 얘기, 예민한 키워드 입니다. 잘못되면 서로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것을 잘 알맨시롱들~
최해원
옳코 말고 ~~~~~ 우리 이야기만해도 다 못할텐데 !!
정재화
이글은 정치,종교 애기가 아닌 "안보" 야기인줄 암시롱 ~~~~~
엄기준
제발 우리 홈피에선 이런야그 하지말자고~~~
정용상
누구나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으니 자기책임하에 언행을 하는 것은 자유롭지 싶다. 문제는 모든 것을 다 제껴 두고, 젊은 영혼 46명을 수장시킨 마당에 네탓내탓이 먼저인가? 우선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그들의 영면을 빌며, 이런 환경의 해소를 위해 지혜를 모으는 것이 상책일 법!!! 갑갑--하다
State
  • 전체 방문자 406,354 명
  • 전체 게시물 23,350 개
  • 전체 댓글수 88,376 개
  • 전체 회원수 1,149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