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17일 토요일 원래 제2구간 장터목-성삼재 지리산 종주구간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립공원 봄철 입산 통제로 군립 공원에 해당하는 제5구간을 등산하기로 계획을 수정하였다.
월1회 원칙을 준수하여 몰아치기로 인한 조직 피로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지난번 1구간 종주 시 조달의 팀장님들의 집단? 중퇴로 배 나온 사람은 배를 넣어야 백두대간을 종주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어 조달 조직 특별 훈련을 주문했는데 그 조달 조직의 제5구간이 두 번째로 선택되었다. 운명의 장난인가? 이헌기, 이남훈 대원이 걱정되었고, 정진곤 대원도 조금은 걱정되었다.
플랜트생산센타의 정두한군의 결혼 주례를 미리 예약 받았기 때문에 금번 종주는 처음부터 함께 할 수가 없었다. 신랑 정두한의 고향은 삼천포였다. 아침 7시 울산을 출발하여 11시에 삼천포에서 결혼식 주례를 했다. 신부의 고향은 함양이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1시간 30분을 달려 대진 고속도로 서상IC를 나오니 오늘 결혼한 정두한군의 처가 함양 가는 길과 육십령은 갈림길이었다. 육십령 휴게소에 도착하니 오후 1:30분이었다. 성진지오텍 회사 버스와 관광 버스 2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이정표로 방향을 확인하니 오른쪽은 북쪽으로 남덕유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남쪽으로 깃대봉 가는 길이었다. 13:40분! 나 홀로 등산을 시작했다. 오늘 아침 4시에 울산 문수구장을 출발하여 아침 7-8시경에 중기 마을을 출발했을 제5구간 대원들은 남에서 북으로 “중기마을-중치-백운산-영취산-북바위-민령-깃대봉-육십령”의 20 KM 구간을 종주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북에서 남으로 꺼꾸로 가는 것이다.
혼자서 부지런히 북에서 남으로 종주를 시작했다. 날씨는 좋았다. 완전한 봄날의 대지를 마음껏 숨쉬고 느끼며 대자연에 나를 맡기고 무심히 그렇게 주유하였다. 령과 봉을 오르내리며 걷기를 한참, 심한 갈증을 느꼈다. 바로 그 때 깃대봉 약수터를 만났다. 물 한 바가지의 고마움을 느끼며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순리’ 바로 순리를 따라 사는 것이다. 순리를 따라 살면 물 한 모금에도 감사 할 수 있는 것을! 욕심, 집착, 애착에 빠져 눈이 멀고, 귀가 멀고, 마음이 닫히고 끝내는 분함에 빠져 화를 내고 어리석음을 범하고 사는 것이 범부의 인생살이가 아닌가? 탐진치를 버리고 순리를 따르는 것이 도가 아니겠는가? 이쯤에서 지난 1구간에서 가졌던 화두 무위자연 자연본분, 유위구원 인간본분이 순리와 연결되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어느덧 1,014M 고지의 깃대봉에 와 있었다. 시간은 14:20분이었다. 40분 사이에 2.5KM의 1,014M 고지를 무심지간에 오른 것이다.
깃대봉 푯말 대신 구시봉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원래는 깃대봉이라고 불리웠는데 생긴 모양이 등근 공 같다고 하여 구시봉이라고 2006년에 지명이 바뀌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바로 ‘육십령-깃대봉-민령-북바위-백운산’을 이르는 이 백두대간 구간은 백제와 신라의 국경선이었던 것이고 승리의 깃발을 올렸다 하여 깃대봉이고 전쟁을 하면서 북을 쳤던 곳이라 하여 북바위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바로 생존과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이었던 그 백두대간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고 있다. 왼쪽이 남으로 내려 뻗은 낙남정맥이고 이 낙남정맥을 따라 낙동강이 흐르고 있고 바로 이곳이 신라의 영토였다. 왼쪽으로 내려 뻗은 산맥을 따라 지리산 천왕봉이 눈에 보이는 듯하고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와 낙동강과 영남의 기운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나는 경기도 서해안에서 태어나 낙남정맥과 낙동강의 기운이 동남으로 내려 뻗은 경상도에 와서 30년의 젊은 청춘을 산 것이다. 공대를 졸업했던 나의 운명은 공업화의 시발 경상도에 와서 한 인간의 생에서 10,000년의 인류 문명의 역사를 온 몸으로 부딪치면서 살아냈구나! 그런 상념을 하고 걷는 사이 오른쪽을 보니 또한 금남/호남 정맥이 서쪽으로 구비 친다. 낙남정맥과 낙동강은 동남으로 그 기운을 뻗고 있는데, 금남/호남 정맥은 서북으로 흐르고 있다. 서북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금강으로 흐른다. 서북으로 흐르는 백제는 비옥한 호남 평야와 풍부한 서해안을 가지고 있어 물산이 풍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산악 지형이 험준한 낙남 정맥의 신라는 김해 평야가 유일한 곡창이다. 척박한 환경 극복이 신라의 국가적 과제였다. 신라의 화랑정신은 이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의 의지와 인내가 작동된 결과이고 결국 이것은 비옥한 백제를 이겼고, 공부를 중시하는 문동(글 읽는 아이)문화로 이어져 경상도 문둥이가 한국 역사의 지배 계층이 되는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겠는가?
백두대간의 정기를 보고 느끼며 걷는 사이 어느덧 민령에 왔다. 깃대봉에서 한참을 내려와 민령을 지나 시간을 보니 오후 3시였다. 1시간 20분에 약 4.5KM을 왔다. 지금부터 1시간 안에 북쪽을 향해 오는 제5구간 대원들을 만나야 오늘의 종주가 성공 할 텐데 하면서 계속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천우 대원을 만났다. 한천우 대원 혼자 최선두에 있었다. 약 15분을 지나니 한 무리의 대원들을 만났다. 경주현 대원을 비롯해 7-8명이었다. 그리고 다시 10분 후 최봉길 대원과 김병식 대원 등 10여명과 조우했다. 최선두와 2,3등 그룹에 있는 이들의 얼굴에는 모두가 만면에 미소가 있었다. 그리고 배종주 대원을 만났다. 이들 모두는 약 15KM를 7시간 가량 걸어온 피곤함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북바위를 오르려고 할 무렵 시끌 벅쩍, 걸치게 소리치는 곰을 보았다. 그것은 곰이 아니라 이헌기 대원이었다. 북바위 바로 아래 비탈길을 내려오며 아마도 미끄러진 모양이다. 얼굴은 고생끼가 서려있었으나 당당히 중간 무리의 수장을 하고 있는 이헌기 대원은 자신의 모습에 호기도 있었다. 아마도 지난 달 첫 번째 중퇴 이후 배도 넣고 자기 절제와 자신을 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으리라. 곧이어 이남훈 대원이 따라오고 있었으며 북바위를 지나니 오늘의 산악대장 박명환 대장과 조달 대원들과 곽두진 대원 등이 휴식을 취하다가 나를 반겼다. 여성대원들이 쥐가 나고,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맨 마지막 조를 향해 계속 남하했다. 3시40분경 내가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만에 마지막 조를 만났다. 여성 대원들이 맨 마지막 조에 몰려 있었다. 최지영, 이은화, 최수정 대원들의 얼굴을 보니 인내의 한계가 서려 있었다. 한성봉 산악회 대장, 김만석 대원, 백이근 대원 등이 마지막 조를 견인하고 있었다. 큰 키의 롱 다리 이호진 대원도 허벅지에 쥐가 났는지 오르막을 엉기었다.
모두가 자기와의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었다. 우리 인간은 꿈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진정한 꿈은 인내의 시험을 통과 했을 때 자신의 내면을 통해서 보이는 것이 진정한 꿈인 것이다. 이러한 내면의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베푸는 삶을 살 수 있다. 꿈이 있어 우리는 살고, 인내가 있어 그 꿈이 보인다. 백두대간은 우리에게 그 진정한 꿈과 행복이 무엇인가? 그 화두를 던지고 있다.
육십령 휴게소에 도착하니 18:30분이었다. 나도 5시간의 제5구간 종주를 한 것이다. 왕복 6KM 도합 12KM을 걸었다. 제5구간 백두대간 종주는 모두가 완주였다.
육십령 휴게소 식당의 된장찌개와 묵은 김치찌개 맛은 신토불이 바로 그 맛이었으며, 집에서 빗은 동동주 또한 일품이었다.
조달 조직의 요구로 1호자 버스를 탔는데 3시간 동안 잠을 못 자게 하는 조달의 끈기를 인정해야 했다. 밤 10시 문수구장에 도착했다.
금번 제5구간 종주의 교훈은 먼저 완주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에 익숙하지 않은 자신과의 인내로 일그러진 얼굴로 고생하며 나중에 도착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산 주에 자족도 물론 해야겠지만……
2010-04-21일 수요일 신언수(안당) 씀


대간 5구간 종주 무사함을 축하합니다~~
첫번째 종주 기록은 어디다가 숨겨놓은겨 ???
머잖아 완주하고나면 책한권 거뜬히 나오고도 남겠는데 ??????
성진 지오텍 산악대원들 모두 백두대간 완주를 기원허네 !!!!
대단한 결심이네.
부디 종주하기를...
이젠 백두대간 정기 적당히 받고 기빠진 동기넘들에게 나눠주러 모임도 참석해야 돼지 안컷나`~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