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제3구간 성삼재-여원재
오늘의 백두대간 3구간 종주 책임 조직은 품질 총괄이다. 지난 5월 지리산 종주 구간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성삼재-여원재 제3구간은 모두가 거침없이 끝낼 수 있는 쉬운 구간으로 생각했다. 품질 조직과 자발 산악 대원 도합 96명의 대원들은 버스 3대에 분승하고 새벽 4시 문수 구장을 출발했다. 마침 남아공 월드컵 시즌이라서 축구 중계를 보면서 여유로운 새벽에 울산을 출발한 것이다. 염려되는 것은 장마 시즌에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 예보였다.
지난 2구간에서 중식을 먹기로 했던 그 뱀사골에 도착하니 06:55분이었다. 산채 식단으로 건강한 아침 식사를 하고 성삼재에 도착하니 07:50분이었는데,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온 산하가 안개 속에 묻혀버린다. 시계가 아주 불량했다. 하계 백두대간이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HSE(건강, 안전, 환경) 문화 창달이 백두대간 목적 중에 하나임을 상기시키고 모두가 안전에 유의하여 산행을 할 것을 지침으로 하달하고 성삼재를 08:10분에 출발했다. 안개 속에 묻혀버린 산하는 말이 없다. 침묵 속에 우리는 등산로를 따라 깊은 산속을 일열 종대로 전진했다. 모두가 말이 없다. 각자가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있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니 푸른 산과 평원이 전개된다. 안개 속을 뚫고 고리봉에 오른 것이다. 시간은 09:00이었다. 고리봉에서 조별로 사진을 찍고 이내 1,437M 만복대를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이제 4번째 하는 백두대간 종주 산행이다. 절제와 자율의 문화로 백두대간은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회사 일과 삶의 일상을 떠나 백두대간 산행 길에 오르면 이내 내 자신과 친숙하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세상과 어쩔 수 없이 맞서야 하는 실존의 나(세상과의 싸움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나)에서 나를 넘어 세상을 따듯한 마음으로 바로 볼 수 있는 자존(스스로 존귀함을 깨달은 나)의 나를 쉽게 백두대간 종주길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절제로 극기한 나는 자율의 존귀한 내가 되는 것이다. 결국 나를 넘어서야 남에게 따뜻함으로 나아 갈 수 있는 것이다. 배려 할 수 있고 풍요를 나눌 수 있는 자율의 내가 되는 것이다. 세상을 품을 수 있는 호연지기, 무한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구원의 삶은 바로 나를 극복한 자존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세상과 함께 하는 자존의 내 삶은 일탈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과 함께 더불어 사는 “내 삶의 자리”인 것이다.
자신을 던져 구원 제사를 지내려 갔던 아브라함과 이삭 부자의 이야기를 연상하며 오르던 백두대간 첫 구간 중산리-천왕봉 산행길이, 무위자연과 유위인간의 한계서 머물던 몰입의 한계 길이 백두대간 4구간 성삼재-여원재 구간에서 만복대를 앞두고 “자존의 내가 가는 길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만복대인가? 만복대에 오르니 10:37분이었다. 성삼재를 출발하여 1,437M 고지의 5.3KM 오르막 구간을 2시간 30분 만에 주파한 것이다. 만복대에는 플랜트생산센타 곽두진 공장장과 대원들이
“안전 기원제 제사상”을 마련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실존의 나를 버린 자존의 나는 제사장이 되었다. 그리고는 온 마음을 다해 천지신명과 지리산과 백두대간 조상님들과 귀신이 되어 아직 구천을 떠돌고 있을 혼령님들에게 성진지오텍의 무사고와 백두대간 안전종주를 기원했다. 이렇게 해서 안전사고 조직은 백두대간 구간에서 안전기원제사를 스스로 지내야 한다는 룰이 만들어졌다.
안전기원제를 지내고 만복대를 출발한 것은 11:00이었다. 다행히 하늘이 도와 비는 오지 않았다. 오늘 산행의 최고봉인 만복대를 지나니 그 다음은 내리막이라 쉽게 생각하고 걷는데 조성기대원이 무릎관절에 부목을 대고 의지와 인내를 시험하고 있다. 12:07분 만복대에서 2.1KM를 내려와서 정령치 휴게소에서 중식 전을 펼쳤다. 앞으로 남은 길이 12KM가 되니 6시간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판단되었다. 산을 잘 타는 경주현 구조대장은 시속 3KM을 예측했는데 오늘 오전의 결과는 시속 2.1KM였다. 그리고 지난 3구간의 결과도 맨 마지막 조 기준으로 보면 시속 2KM가 평균이었다. 산을 잘 타는 맨 앞 조는 시속 2.5KM 로 판단된다. 따라서 하루 20KM 종주 구간의 경우 마지막 조 기준으로 10시간이 걸리고 맨 앞 조 기준으로는 8시간이 되어 2시간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바로 이 2시간의 극복이 향후 백두대간 종주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인 것이다. 결국 해결의 방향은 “건강 지키기와 사랑 나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은 자기 절제를 통해 담배 끊고, 똥배 집어 넣고, 건강한 체질로 거듭 태어나 성진인이면 누구나 평균 2.25KM 산행을 하는 것이 그 첫 번째이며(건강 지키기), 시속 2.5KM이상 산을 잘 타는 사람은 자율 구조대가 되어 사랑 나누기를 실천하는 것이 두 번째 해결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부지런히 중식을 통해 격려하는 사이 모두 10여 개조를 돌고 보니 Heavy Drinking이 되었다.
12:35분 마지막 조와 함께 정령치를 출발했다. 남은 길은 12KM인데 서울에서 문상이 있어 늦어도 6시까지는 여원재에 도착해야 하는데 판단이 서질 않는다. 일단 4.1KM을 더 가서 고기리 삼거리에서 판단하기로 하고 마지막 조와 행동을 같이 했다. 고기리 삼거리에 도착하니 14:40분이었다. 내려오는 길을 시속 2KM도 더 걸린 것이다. 만약에 비가 왔다면 조성기대원과 마지막 조는 지옥과 연옥 사이를 왔다 갔다 해야 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거리는 8.2KM이고 주어진 시간은 3시간이다. 시속 2.7KM이면 종주하고 문상을 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대표이사가 중간에 사라졌다는 오명을 쓸 수는 없었다. 고기리 삼거리에서 아직도 무겁게 메고 가는 대원들의 집을 덜어 줄 겸 집을 풀어 남아 있는 막걸리를 대포로 한잔 하고 이내 선두를 따라 잡기 위한 OS의 질주를 시작했다. 노치 마을을 지나니 앞산이 보였다. 저 산을 넘으면 여원재까지는 내리막 혹은 평탄한 길이 될 것으로 짐작하고 의기양양하게 걸음을 재촉했다. 앞서가는 조들을 뒤로하며 가쁜 쉼을 몰아 쉬며 이내 산 중턱으로 내 달음질 쳤다. 이제 내 앞에 가는 대원들은 없었다. 나를 꾸준히 쫓아오던 명영호 대원과 나무영 대원은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앞에 보이는 산을 오르면 이내 더 큰 산이 나타나고 그렇게 산과의 오름 경쟁을 하는 사이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시간은 4시가 넘고 있는데 아직도 나는 산과 시소를 하고 있다. 그렇게 탈진 상태로 도착한 것이 수정봉(840M)이다. 여원재까지는 4.4KM 100분 거리라고 이정표에는 쓰여있었다. 아마도 나 같이 산과 경기를 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비웃기나 하듯 100분을 더 가라고 한다. 15년 낡은 등산화는 산과의 시소를 견디지 못하고 고기리 삼거리까지는 멀쩡했던 발을 엉망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발톱은 빠질 지경이고 발바닥은 이미 물집으로 통증을 주고 있고 온 다리와 발이 열이 차 오른다. 문상이 없었다면 맨 마지막 조에 머물러 산을 주유하면서 즐거운 산행을 했을 텐데 이렇게 시간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스스로 고통을 자초하고 있구나 하면서 어리석은 나를 자존의 내가 자책을 한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것이고 내가 가야 할 문상이니 내 인생의 업인 것을 어찌 할 것인가?
누구든 자기 자신과의 약속(Commitment)은 지키려 한다. 그래서 Commitment가 가장 강력한 구속력을 갖는 설득력이 된다. 누구든 자기의 자율 의지로 선택하고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지키려고 한다. 이 Commitment의 설득의 원리를 알고 있기에 고객 회사들은 대표이사 명의로 약속을 할 것을 종종 요구하고 있다. 역량 있는 전문가로 부하를 육성해서 그 전문성에 바탕을 두고 믿음과 소통을 해야 한다. 바로 전문가가 있고, 프로세스가 있고, 시스템이 있는 회사로 키워야 하는 것이다. 직원들의 전문 역량이 취약하고,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부재한 회사는 역량이 없는 회사이다. 그 역량 없는 회사의 대표이사는 전문성이 결여된 부하와 역량 없는 회사를 대신해 지키지도 못할 약속(Commitment Letter)을 남발해서 무능한 경영자로 낙인 찍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부하를 전문가로 육성하고 소통과 믿음을 주는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수정봉에서 남은 물을 마시고 마지막 100분을 향해 출발했다. 발의 상처가 주는 고통을 감내하며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한참을 왔는데 내리막과 평지였던 등산로가 수많은 계단과 큰 봉이 앞을 가로 막고 섰다. 그 산의 기세에 눌려 다시 쉬어 가기로 하고 계단 앞에서 주저 앉았다. 그 때 나를 반기며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고기리 삼거리까지 후미조로 함께 왔던 유재학 대원이었다. 내가 이렇게 녹초가 되어 여기까지 왔는데 유재학 대원도 마치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만큼이나 내가 반가웠나? 무척이나 나를 만난 것을 좋아하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휴식을 취하고 마지막 봉우리 무정봉을 향해 마지막 남은 투혼을 발휘했다. 무정봉 정상에서 정말 이제는 여원이를 만나려 가는 마지막 봉우리려니 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품질 총괄의 젊은 대원들이 뒤따라온다. 그 중에 몸이 육중한 대원(이름을 몰라서 이렇게 표현함을 용서해 주기 바람)에게 참 장하다 힘들지 않느냐? 물으니 금번 “성삼재-여원재” 백두대간 종주를 위해 지난 3개월간 자기 절제와 자기 단련을 했다고 하면서 할만하다고 한다. 백두대간 종주가 새로운 성진의 문화를 만들고 있구나 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품질의 여성대원 윤미덕 대원도 여기까지 거침없이 나를 쫓아왔다. 나는 윤미덕 대원에게 고정 자발 여성 대원이 없는데 백두대간 개근을 해서 의지의 성진 인이 한번 되어 보지 않겠느냐? 고 제안을 했다.
무정봉을 지나니 더 이상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은 없었다. 여원재를 지나 마을에 도착하니 시원한 남원 막걸리 집을 지나게 되었다. 시간은 17:50분이었고 막걸리 한 사발로 하산 주 삼아 여원의 넋을 달래려고 하는 사이 김병식 대원이 저승사자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주 공항까지는 2시간이 걸리니 지금 출발해야 한다고…… 이렇게 하산 주 한 잔도 못하고 이내 문상을 위해 진주 공항을 향해 여원재를 출발한 시각은 18:00분이었다. 차 안에서 땀으로 목욕한 등산화를 벗고 보니 오른쪽 발바닥은 여러 곳의 물집, 왕 발가락은 피 멍으로 그 치열했던 고기리 삼거리에서 여원재까지의 시속 2.7KM 총 거리 8.3KM의 투혼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래도 못내 조성기대원과 마지막 조가 내가 사투를 벌였던 구간을 잘 오고 있을지 궁금하여 경주현 대장에게 전화를 하니 마지막 무정봉을 넘고 있다고 하였다. 결국 마지막 조는 11시간이 경과한 19:00분을 넘어서야 여원재에 도착 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성진지오텍이 건강한 기업 문화를 만들어 가는 백두대간 길에서 결혼주례도 하고 문상도 가고 인생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업도 모두 함께 하면서 자존의 내가 되어 내 삶의 자리를 즐기고 걸었던 성삼재-여원재 구간이었다.
2010-06-30 수요일 Fort McMerray, ExxonMobile Safety Forum 참가하고 신언수(안당) 탈고하다.
햐~이 더위에 대간종주라~~~
고생 많았 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여원재 돌 장승은 잘 있던가요~???
대간종주 내내 무사,무탈 하기 바람니다~~
지금 호남정맥 을 종주하고 9월에 낙남정맥 종주를 계획 하고 있는데 백두대간완주를 한명의 낙오없이 완주를 기원 합니다.
백명 가까운 직원들을 다~ 데리고 백두대간 종주라니..
저런 고생을 같이 했으니, 회사가 좀 마음에 안들어도 금방 관두지는 않겠지..
좋겠다~~
완전히 "꽁 묵고 알 묵고.." 네..
읽어 내려가면서 존경심이 생기는건 또 무얼까 ??
지금이라도 성진지오택 주식을 끓거모아야것따 ~~~~ 계속 상종가를 칠것이 눈에 보이누먼 !!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