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벌교에 문상를 갔다가
어제 오후에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고모부께서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아버지 형제 2남2녀 중에 아버지, 큰모고, 작은고모, 큰아버지, 큰고모부 순으로 영면하시는군요.
이제 서울 작은 고모부님 한 분만 생존 하십니다.
고종 동생들은 첫째는 축협 상무로, 둘째는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는데 빈소에 못왔습니다.
세째가 행정고시를 합격하여 국무총리실 서기관으로 있는데 화환과 손님이 많습니다.
모두 굴건제복을 입고 문상객이 올 때 마다 곡성을 하며 맞이 합니다.
아버지의 유언이었답니다. 전통 장례식으로 치상하라는 ...
부고를 해야 할 지기들과 유지들 명단, 심지어
접대 음식 메뉴 마저도 미리 정해주신 빈틈 없으신 고모부님은 여산 송씨 가문의
큰 어른이셨습니다.
고향 내려간김에 어머니도 뵙고 하루저녁을 자고 왔습니다.
어머니와 한 이불속에서~
밤새 끙끙 앓으시고 기침까지 하십니다.
머리에 손을 얹어보니 미열이 있습니다.
저도 좀채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8남매를 낳아서 7남매를 키우신 어머니
이제 매미껍질 처럼 모든게 까칠하게 휭하니 비어버린 어머니
새벽 5시반쯤 끙끙 앓으시던 어머니가 어둠 속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찾으십니다.
"양말 찾~어~", "밥 해야제~"
제가 할께요. "쳇~뭔 밥을 니가 해~~, 잠이나 더 자~"
8순이 넘으신 노모!
자식들에게 의지하여 노후를 보내셔야 할 나이인데
아직 아들 밥을 해줘야 한다는 모성적 책무를 마음에 담고 계십니다.
가이 없는 어머니의 사랑의 밥상을 받고 목이메어 왔습니다.
꼬막, 쭈구미무침, 무우소고기국 ...
어머니 손맛은 아직도 맛이 있습니다.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코트를 입으면서
오늘 병원가셔서 영양제 한 대 맞으세요. "알았어! 너무 걱정허지 마~"
어머니의 쓸쓸한 배웅을 뒤로하면서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을 되새겨 봅니다.
어제 저녁 전화를 넣었더니 "어머니 교회 가시고 없어요."
오늘 병원 모시고 다녀 왔어?
동생은 "예 링겔에 영양제 섞어서 맞고 오셨어요"
잘 좀 지켜봐, 노인들은 하루 하루가 다를 수 있으니~
단단히 당부하고 전화로 또 아들 노릇을 대신 하였습니다.
큰 고모부 문상을 다녀와서 |
서울시립미술관에 있는 친구에게 들러 차 한 잔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들어왔습니다.
조용한 돌담길을 걷다보니 아베크족들이 많은데 공통점이 있더군요.
모두가 한쪽 손에는 DSLR 카메라가 들려있다는 점입니다. 아마 연인들과 봄맞이를 고궁으로 나온 것이겠지요.
전에는 이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이름 모를 화가들이 작품들을 전시하며 판매하는 광경도 있었는데...
아쉽더군요. 한쪽으로 다니는 자동차도 주말이면 없었으면 더 좋을 뻔 했구요.
남쪽에는 성큼 봄이 왔다는데 아직 처녀들 치마를 보니 봄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봅니다.
더디 오는 이유가 그놈의 까만 네깅스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암튼 비교적 한가한 주말입니다. 그동안 내용도 없는 글인데 많은 동기들(우순, 진앙, 일현, 기영, 영우, 옥하, 기영1, 삼범, 진팔, 재황, 용상, 승준, 충희, 해원 ...등)께서 마음을 열어 소통해 주셨네요.
모든 분께 머리 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바쁘신데도 일부러 댓글로 위로나 공감의 표현을 아끼지 않으신 여러 동기들의 손가락에는 신의 축복이 가득 하시길 축원 드립니다.
한 분 한 분 댓글 by 댓글로 올리지 못함을 용서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생존하신 어머니와 장모님께 좀 더 다정한 아들이 되도록 애써야겠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 봄이 빨리 오길 재촉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