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view] 백수(白手)로 살 것인가, 백수(百手)로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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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터view] 백수(白手)로 살 것인가, 백수(百手)로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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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여행’…우아한 퇴직자 조주현 씨
지난 10월 말 김유정역 광장에서 열린 춘천민예총 문인협회 주최 ‘시문으로 가는 여행’ 시 낭송회!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무대에 올라 버버리코트 깃을 올리고 하모니카로 무르익은 가을의 분위기를 연주하던  조주현 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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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현 씨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시작하여 장학사, 장학관을 거쳐 학교장을 끝으로 35년 교직생활을 마감한 지 2년차에 접어든 자칭 초보 백수다.

“퇴직 후 노후를 설계하고 대비해야 해요. 지금까지 성공과 성취를 위해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즐거움과 재미를 추구해야지요. 그걸로 보상 받아야지요”

평생 일만 하다가 그냥 내쳐지는 삶이 아닌, 자기가 주도하는 삶을 설계하고 실천하는 그의 유쾌한 몸짓들이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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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으로 가는 여행’ 시낭송회에서 하모니카 연주.
그는 인문계 고3 담임만 8년간 내리 했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비록 30·40대 교사시절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고생은 따랐지만,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담임으로 만났던 제자 400여 명이 각계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큰 보람이란다. 성장한 제자들과 술자리나 골프모임도 잦은 인기 많은 스승이다.

“학생들에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 후배 교사들에겐 떠나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선배가 되고 싶었어요.”

도교육청 장학사, 장학관, 연수원 운영부장 등을 거쳐 남들보다 교감, 교장 승진도 빨랐다. 본인의 능력보다는 주변의 선배, 동료, 후배들이 밀고 끌어줘서 누렸던 관운이었기에 지금도 늘 감사한 마음이라 했다. 초임교사 시절 뜻을 함께한 동료교사들과 학술모임인 ‘교단’을 결성하여 지금도 활동 중이고, 모교인 춘천고 재직 시절에 춘천 mbc 아침 칼럼 프로그램을 3년간 방송한 것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과제는 ‘정년 후의 삶, 은퇴 후의 삶을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갈 것인가?’일 것이다. 모두가 걱정은 하면서 실제로는 별반 대책 없이 맞이하는 제2의 인생! 곁에서 보기에 그의 ‘세련되고 우아한 퇴직 후의 생활’은 어떻게 준비된 것일까 궁금했다.

“우선 필요충분조건인 ‘건강, 돈, 자식농사, 취미생활, 친구’에 대한 정비부터 했어요. 그리고 관료적 ‘꼰대의식’도 탈피하려 애썼고요. 퇴직하고 제일 먼저 청바지를 세 벌 사고 헤어스타일을 바꿨습니다. 외적인 변화가 내적인 변화를 유발한다는 생각이지요. ‘심심해 죽기’보다는 ‘바빠 죽겠다’를 택하기로 했지요.”

“슬기로운 백수는 ‘혼자 놀기’의 진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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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갖추어진 연주실.
그는 퇴직 전 피아노를 배웠다. 하모니카와 기타 연주를 위해 서재 한쪽에 앰프와 반주기, 키보드를 구입하여 세팅했다. 그리고 춘천남성합창단에도 가입했다. 틈틈이 사 모은 인문학 책과 TV의 다시보기 인문학 강좌도 훌륭한 소일거리다. 5년 전 정족리의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이후엔 잔디와 텃밭 가꾸기도 바쁜 일과 중 하나다. 고등학교 동기회장, 스카우트강원연맹 이사, 바르게살기 강원본부 자문위원 등 사회활동에도 참여해 잰걸음 중이다.

그는 최근에 더욱 바쁘다. 하나는 다산 정약용이 뱃길로 춘천을 오가던 길을 회원들과 구간을 나누어 주말마다 답사 중이다. 또 하나는 강원오페라앙상블이 춘천시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공연하는 오페라 <라보엠> 무대에 서기 위해 오디션을 거쳐 지난여름부터 맹연습을 해왔다고 한다. 비록 미미한 배역이지만 오페라 무대에 서게 되었고 특히 젊고 어린 친구들과 함께하는 작업이어서 행복하다며 환히 웃는다.

아무튼 대단한 열정이요, 용기가 아닐 수 없다. 합창과 연주, 공연과 여행까지 그의 일상을 듣다보면 하루하루가 그동안 못해왔던 꿈을 실현하는 ‘가슴 뛰는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몸에 밴 직업의 굴레에서 벗어나, 은퇴라는 시간을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으로 삼고자 하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도전하는 용기는 백수의 삶에 활력을 불러일으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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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남성합창단으로 참여한 합창공연.
그래서 최근 다섯 가지 버킷리스트를 다시 작성했다고 한다. 책 쓰기, 백두대간 답사 완료하기, 히말라야 트레킹, 버스킹, 70세 전까지 매년 2회 배낭여행하기. 그의 도전은 끝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그가 놀기만 하는 건 아니다. 교직의 경험과 철학을 공유하는 일은 퇴임 후에도 병행하고 있다. ‘우리교육희망나눔’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강원대학교와 교원대학에서의 강의, 학부모·학생·교사 특강, 바르게살기 지역회원 교양강좌 등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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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함께 하는 특강.
“교육은 희망을 만드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현재의 ‘행복’에 취해 미래를 계획하지도 준비시키지도 않는 교육은 죄악입니다. 교(敎)만 있고 육(育)이 없으니 문제예요. 학생들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되, 의무와 책임도 강조하는 성숙한 시민교육에 우리 모두 심혈을 기울여야지요. 경쟁과 미움으로 혼탁해진 세상에서 살아갈 ‘우리 집’ 아이만의 성공은 결코 행복일 수 없어요.”

화제가 교육으로 바뀌자 그의 톤도 높아진다.

사실 은퇴 후 생활설계의 선결 조건이 경제적인 안정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60대 은퇴자가 노동시장에서 안심하고 퇴장할 수 없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저는 행운아입니다. 빚 없이 공무원 연금이라는 안정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고, 아내도 아직 일을 하고 있고요. 특히 퇴직 전에 아이들도 취직과 결혼을 해서 독립하여 나의 어깨를 덜어준 덕이지요.”

퇴임 후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는 조주현 씨. 요즘 ‘슬기로운 백수생활’ ‘어른들을 위한 하모니카 동요 연주’ 등 잔잔한 일상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제법 고정 팔로우도 생겼다고 한다.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을 보면 그는 성악가 뺨치는 풍성한 성량으로 키보드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데 일반인의 수준을 뛰어넘고 있었다. 무엇보다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그의 호방함에는 보는 이 저절로 웃게하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멋이 드러난다. 내년엔 현재 북경에서 현대계열사 법인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아들과 칭짱열차를 타고 티벳 여행을 계획 중이라고 은근히 자랑아닌 자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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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한 스페인여행.
준비가 되어 있다고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눈길을 주게 되는 것은 인생을 경영하는 그의 밝은 철학과 열정때문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한다고 한다.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늙게 하지 못한다.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오페라 연습을 하러 가야 한다는 그의 활기찬 뒷모습을 보며,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서도 얼마나 많이 투덜거렸던가.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몸을 일으켜 자유롭게 세상 속으로 나아갈 일이다.

원미경 시민기자

출처 : 《춘천사람들》 - 시민과 동행하는 신문 (http://www.chuns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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