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 알기

산악회

광교산 알기

임우순 0 2,233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용인시 수지구
▒ 높이 582m
▒ 나무가 많은 육산으로 햇살 가득한 가족 산행지


광교산(光敎山)은 예전부터 수원의 진산으로 불려 온 명산이다. 또한 살아서는 진천 죽어서는 용인이라는 옛 말씀의 근원이 된는 산의 하나로 여러 문중의 선산이 많이 산재해 있다.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즐길 수 있는 산이다. 광교산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대중(大衆)의 산이란 점은 주말이나 휴일에 이 산에 올라보면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다.
명산의 한 시즌이나 서울 근교의 산 못지 않게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산길도 잘 가꾸어 놓았고 곳곳마다 자세한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특히 봉우리중의 하나인  비로봉에는 정자도 지어 놓았다.능선 길에는 ‘소월의 시’ 등 명시는 물론, 광교산을 주제로 한 시들을 산 곳곳에 게시한 점도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점이다.
광교산(582m)의 동북쪽 줄기는 판교를 지나 청계산으로 이어지고 북으론 백운산에 닿는다. 광교산의 주봉은 시루봉으로 맑은 날이면 동쪽으로 용인과 이천까지 보이고 서쪽으론 칠보산,수리산이 보이고 멀리 서해 바다가 눈을 맑게 한다. 남쪽으로는 평택과 안성으로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백운산,청계산,관악산이 솟아 있다. 광교산 아래에는 수원,수지 시가지,녹색의 광교저수지와 파장저수지가 있어 산과 조화를 이룬다.

광교산은 산행이 버겁지 않고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산이지만 시루봉과 형제봉 오름은 약간 가파른 길이다. 또한 안내판과 시설물을 잘 정돈해 놓았고 수원시와 용인시의 보살핌이 각별한 점도 광교산을 찾게 되는 이유라 하겠다.

광교산은 원래 광악산(光嶽山)이라고 했다. 928년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의 견훤을 치고 돌아가다 이 산 기슭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 때 이 산에서 빛이 솟아 올라 태조 왕건에게 가르침을 주었다고 하며 이후로 광교산(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때 광교산에는 창성사를 비롯해서 89개의 절과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옛 수원군읍지」에 의하면 광교산에는 89개의 절과 암자를 비롯해 고려궁터, 고려하창, 종루, 문바위, 우평, 백제행전, 정자산 옛 우물, 김준룡장군 전승지 등이 있었다.
고려궁터는 태조 왕건이 유금필을 시켜 견훤을 치도록 했지만 전과가 없자, 친히 정벌하러 나서 여산까지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광교산에 행궁을 짓고 군사들을 먹였다는 곳이다. 하지만 기록만 있고 그 터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고려 하창은 고려시대 이 산에 부처님의 도량과 스님이 많아 이들의 끼니를 대기 위하여 창고를 지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하창 역시 기록은 있지만 그 터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읍지에 의하면 신라말의 학자인 최치원이 전국에서 이름난 세 개의 문바위를 둘러보고 광교산의 문바위가 가장 뛰어나 여기에 암자를 짓고 살았으며 암자의 우물에 구리주머니를 묻었다는 기록이「지리비결」에 전한다고 한다. 현재 구리주머니를 묻은 우물의 소재는 알 수 없지만 문바위가 있는 문바위골은 무속인들과 주민들의 기도 터로 이용되고 있다.
우성위보, 우성위평이라 부르는 우평은 백제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에 도읍한 뒤 사위인 우성위와 딸을 이곳에서 살게 했다고 한다. 우성위는 농사를 짓기 위해 골짜기의 물을 막아 보를 만들었으며 그의 집터가 갓모봉 아래에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백제 행전은 온조왕이 딸을 보기 위해 광교산에 드나들며 자신이 묵을 집을 지은 것이다. 이 행전에 있던 우물이 정자산의 옛 우물로 ‘어정’이라 불렸으며 창고 터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행전 앞 기슭은 벼슬살이들이 머물렀다 해서 환자(宦者)모퉁이라 했다고 한다.
때문에 광교산 기슭에는 조선조의 정조가 융릉을 다니며 묵은 화성행궁과 함께 백제, 고려, 조선조에 이르는 삼국의 행궁이 있었던 셈이 된다. 그밖에 비로봉 밑의 천연 암반에는 병자호란 당시 청과의 전쟁에서 이긴 김준룡 장군의 전승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문은 채제공이 화성을 축성시 전승 사실을 알아내고는 ‘충양공 김준룡 장군 전승지(忠襄公 金俊龍 將軍 戰勝地)’라 새기고 그 양 옆에 ‘병자청란에 공이 호남 근왕병을 이끌고 여기에서 청나라 세 장군을 죽였다’는 뜻의 비문을 새겼다고 한다.

백제, 고려, 조선 삼국의 행궁이 자리잡았던 산


주능선을 잇는 코스가 백미인 광교산은 수원시민은 주로 경기대나 광교 저수지쪽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여섯 개의 등산길을 이용하나 이번 산사랑은 많은 사람을 피해 수지쪽에서 등산을 시작한다. 즉 수지 성당에서 능선을 따라 최고봉인 시루봉을 먼저 오르고 이어서 토끼재~비로봉~김준룡장군 전승비~양지재~형제봉~수지 신봉동으로 하산 할 예정으로 약 12킬로미터이며 광교산 산행의 백미를 느낄 수 있는 코스다.
형제봉은 광교산에서 가장 멋있는 바위 봉우리다. 양면이 벼랑이라 바위면에 밧줄을 설치해 놓았다. 형제봉이란 이름은 봉우리 동쪽에 좀 낮은 바위봉인 아우봉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부터는 주봉인 시루봉이 잘 보이고 군포의 수리산, 의왕의 모락산도 잘 보인다.
형제봉에서 비로봉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이후 평지처럼 널찍한 잘록이를 지나 조금 오르면 왼편으로 김준룡장군 전승비로 가는 갈림길이 갈라진다. 전승비까지는 2-3분이면 닿을 수 있다.
전승비는 오랑캐를 물리친 계곡이라는 ‘호항곡’의 삼면 가운데 천연 암벽에 비문이 새겨져 있으며 경관도 좋다. 전승비에서 원 등성이 길로 나와 한 바탕 오름 길을 오르면 정자가 있는 비로봉이다. ‘종루봉 전망대’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이름에 걸맞게 전망이 좋다.
토끼재는 전망대에서 시루봉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만난다. 재에서 왼편 내리막은 사방 댐을 거쳐 수원 광교 종점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토끼재에서 노송이 멋있는 암릉을 오르면 능선 삼거리의 봉우리에 올라선다. 오른편(동쪽)으로 가면 주봉인 시루봉이며 왼편(북서쪽)으로 등성이를 타고 가면 노루목, 억새 밭, 통신대를 거쳐 백운산으로 나아가게 된다. 여기서 시루봉은 바로 인근이다.
시루봉에는 삼각점이 있고 사람 키가 넘는 석등 식의 육중한 표지석이 있다. 이곳에선 관악산, 수리산, 청계산이 잘 보이고 안양, 군포, 의왕, 분당, 수지 등 수도권의 도시들도 잘 보인다. 노루목에 이르면 사방 댐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고 이곳에서 통신 탑이 있는 봉우리를 넘어 10여분을 가면 억새 밭이 있는 잘록이에 닿는다. 이 억새 밭에서 계속 등성이를 타고 가면 통신대를 지나 백운산으로 갈 수도 있다.

산행을 시작해서 시루봉에 오른 후 신봉동으로  내려오는데는 총 5시간이면 넉넉하다. 신봉동에서 수지 성당까지는 약간 떨어져 있는데 마을 버스를 이용하여 쉽게 이동 할 수도 있다.

기타 궁금 하신점이 있으면 011-434-6192 임우순에게 문의 하시면 성심성의껏 응대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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