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월드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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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월드 10월호

정용상 0 14

법치주의의 회복을 위한 범정부적 변혁

 

정용상(동국대 법과대 교수)

 

인간관계에서 상대를 혹독하게 나무라고 충고하는 것은 그 상대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우리나라 국민은 정치권 또는 정치인에게 기대를 접은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잘못을 탓하거나 책임소재를 따지는 일조차 포기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무관심은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포기선언과도 같은 무서운 훼초리이다. 무관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그런데 정치인은 그들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무관심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그들의 무관심은 국가존망의 위기를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다.

법은 정의를 상징하고, 하늘이 무너져도 법이 바로 서야 하고, 급하더라도 적법 절차를 따라야 하고, 법이 잘못 되었으면 역시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서 고쳐야 하고, 법을 지키지 않은 자는 그에 따른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법은 도덕이나 종교나 관습에 앞서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선도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국민은 법을 지키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지키지 않으면 사회질서나 국가기강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의 현실은 법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나라를 망치는데 선수다. 법돌이(?)들이 법치고속도로를 역주행하고, 법돌이들이 일방통행로에서 반대편으로 밀고 들어오고, 법돌이들이 법을 안 지켜도 된다고 시범(?)을 하고 다니는 이 나라가 과연 민주국가이고 법치국가인가?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의 구성원인 국회의원이 국회의사당보다는 광화문이나 시청광장, 이곳저곳의 시위현장이나 아니면 아무 쓰잘데없는 모임에 가서 축사나 하고 놀고(?) 있다. 국회의원은 법을 만드는 공장의 노동자이다. 노동자가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 생각은 않고, 맨날 밖에 나가서 자기 패거리의 이익에 급급한 싸움질만 하고 있다면, 그 노동자는 징계를 받아야 옳다. 그 노동자가 일을 한답시고 제품원료공급자나 마케팅 담당자와 짜고 불량제품을 생산하여 문제가 생긴다면, 그 개인은 물론이고, 회사대표가 제조물에 대핸 책임을 지고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과연 법을 만드는 공장인 국회의 국회의원은 그런가? 무책임하고 무사안일에 젖은체, 불의의 손과 결탁하여 불량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은 책임을 지기는 지는가? 무소불위의 힘으로 안하무인격으로 노는 여의도의 저 엉터리 법을 만드는 공장근로자들을 저대로 두고 법치의 확립이 가능할까?

최근 씨름협회 장이 공개석상에서 국회의원은 이제 말씨름 그만 하고 진짜 씨름을 한 판 붙어 보라는 조롱성 발언을 한 일이 있다. 공식석상에서 한 경기단체의 대표가 한 말치고는 무례하고 적절하지 못한 면이 있긴 하지만, 평소에 운동에만 집중하고 사회일반의 일에 대한 판단이 비교적 단순한 경기인으로서 국민의 울분을 대신한 면이 없지 않다.

정치인은 처신이 분명해야 한다.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한다. 국민을 섬기고 받들며, 국익최우선의 정치를 해야 한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아니면 말고 식의 막가파식 마타도어는 안된다. 국회의원의 치외법권을 아전인수식으로 무식하게 확대해석하려 해서도 안된다.

그러면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는 어떤가? 글쎄 입법부와 난형난제인 것 같다. 국가이익은 커녕 소속부처의 이익도 못 챙기고 오로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일하는 공장 로보트형 공직자가 적지 않은 현실이다. 부처내에서의 자기들끼리의 소통은 물론이고 부처 간의 소통이 요원함은 민원을 제기해 본 사람은 다 안다. 왜 이렇게 부서 간은 물론 부처 간의 장벽이 높을까? 불통의 상태에서 국가이익이나 국민의 이익을 위한 논의의 결과가 도출될 수 있을까? 공직자는 소통과 통섭의 마인드를 가지고 헌신행정의 향도가 되어야 한다. 필자의 소견은 아니지만 시정에서 하는 말! “자그마한 창고라도 하나 짖고 나면 그 사람은 여지없이 야당이 된다는 부정적 표현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규제를 자기의 영혼인 것처럼 붙들고 안고 있는 저 불쌍한 공직자를 퍼 내지 않고서는 그 세계의 오염된 물을 퍼 낼 수가 없다. 대통령도 여당대표도 가는 곳 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극단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규제를 풀라는데 왜 담당 공직자는 기를 쓰고 안 풀려고 할까? 그 규제에 개인의 보신을 위한 모든 기능이 장착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공직자가 민원인을 대할 때 웃으면서 반기는 대신 비웃으면서 핀잔을 준다면 민원인은 금방 알아차린다. 저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병사는 지금 지키는 전장터가 최후의 방어선이다. 공직자가 퇴직 후 갈 곳을 생각하며 일을 한다면 그건 죄악이다. 관피아! 저희들끼리 영구히 잘먹고 잘살자 식의 오만은 영원한 반법치 질서를 도모할 뿐이다.

중국이 개혁·개방하여 얼마나 재미를 보았는가? 북한이 개혁·개방을 거부하여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우리는 잘 안다. 국가안보를 위한 기밀사항을 다루는 부서가 아닌 한, 모든 공적 영역의 문호를 모두 개방해야 한다는 것을! 왜 우리 행정부는 북한의 폐쇄성을 따라 하는 것처럼 오해받을 짓을 하는가? 당신이야 말로 종북좌파란 말인가? 아니라면 규제를 풀어라. 그리고 자리도 개방하여 당당하게 민간과 경쟁하라! 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려 하는가? 민간기업은 개방하는데 왜 당신들만 움켜쥐고 있는가? 그리고 관피아로 또 관피아로 영생(?)하려 하는가? 당신은 공기업·민간기업으로 와도 되고 후자는 전자로의 진입이 불가하다면 이건 공정성의 결여 아닌가?

사법부 내지 법조는 거론할 가치도 없다. 검사는 수사하고 기소할 때 좀 법을 잘 지키고 인권을 보호하면서 옥석을 잘 가리고, 제발 판사는 헌법과 법률과 법관의 양심에 따라 당사자는 물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재판 좀 잘 하고, 변호사는 전관예우로 일확천금을 벌 생각을 버리고 변호사법에 나와 있는 그대로 공익적, 공공적 법률서비스에 신경을 쓰면서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잘 챙겨주는 따뜻한 영혼을 가졌으면 좋겠다.

법조여! 제발 흉악범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칠 때 적지 않은 국민들이, 특히 재판을 경험한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지 않도록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한다. 흉악범의 그러한 외침이 공허하도록 재판문화를 확 바꾸어야 한다. 특히 법조인이 시정잡배만도 못한 입에 담기 어려운 못된 짓을 하여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재판에 대한 불신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으로, 더 나아가 그것은 이 땅의 법치주의의 불신으로 비화된다. 진정 이 나라를 만인의 투쟁장으로 만들려 함이 아니라면 사법부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국민의 권리보호를 위한 믿음직한 버팀목으로 법원과 검찰, 그리고 법조가 반듯하게 서면 국가기강을 반듯하게 세우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국민은 입법부도, 행정부도, 사법부도 어느 한 곳도 온전한 곳이 없다고 한탄한다. 권력이나 명예나 부를 가진 자들끼리 그들끼리 한 통속으로 해 먹으며 불공정게임을 하고 있다고 믿는 다. 이러한 불신의 구름을 걷기 위해서는 각 자의 뼈를 깎는 인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헌법상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데, 왜 그들에게 주권이 있고, 모든 권력이 그들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비쳐 지는지에 대한 냉철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자기들은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도 사실은 그들은 국민위에 군림하고 법위에 군림하는 듯한 오해를 사는 일을 자주 한다. 국민이 주인인 인본과 민본과 여민의 선진 정부를 위한 3부의 분발을 요구하면서, 우리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들에게 사랑의 훼초리를 들어야 한다. 결국은 소통이고 통섭이고 통합이다. 개인 간의 소통, 부서 간의 소통 부처 간의 소통, 입법·사법·행정 간의 소통이 필요하다. ·사기관 간의 소통, 그 모든 단위체들과의 소통 속에 국민이 함께 할 때, 사회전반에 만연한 분열과 갈등을 잠재우고 국민통합·사회통합이 실현될 것이다.

훌륭한 스승은 못된 제자를 반듯한 사람으로 만드는 법! 의지의 국민이 사랑과 관심, 열정과 충고, 단호한 교육적인 매를 들고 정부를 키워내야 한다. 우리 정부이기 때문에 결코 우리는 정부를 포기할 수 없다. 키워야 한다. 쉬임없는 관심과 기도를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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