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CJ동우회 사이트에서 퍼왔음.
총30여편으로 글쓴이에 대한소개는 빠져있으나 추측컨대 30대 초반 직장여성으로 다수의 성경험을 토대로 남자들이 섹스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점을 잘 지적하고 있는듯함.
일단 다섯편을 먼저 올리고 반응들을 봐서 계속 또는 중단 또는 삭제토록 할 예정임.
㉿그녀의 섹스이야기㉿ ①그대 골드 미스를 꿈꾸나요?
프롤로그
요즘 젊은 여성들의 섹스관은 어떤것일까?
남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 ㉿그녀의 섹스이야기㉿를
게재해 보겠습니다
골드미스라는 말.
다들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사전에는 없는 저 말의 사회적 의미는 대충 이렇다.
나이 많은, 그렇지만 돈 좀 있는 전문직의 미혼(여기서는 비혼이라고 하지 않는다) 여성.
그러니까 한마디로 '너 왜 아직 시집 못 갔냐?' 라는 질문에
'전 일이 더 좋아요' 라던가
'돈 버느라고요' 라고 대꾸할 수 있는 노처녀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골드 미스들에게는 골드 미스라는 말이 생겨서 반가웠을 것이다.
그녀들은 못 갔다에서 순식간에 안 갔다 혹은 아직은 갈 마음이 없다로 그 신분이 수직 상승했으니까.
하지만 골드미스가 아닌 그렇다고 해서 실버도 도금도 안 되는 나 같은 여자들은 더 소외감만 느낀다.
아니 대체 왜 일도, 돈도 이유가 아니면서 시집을 못 갔냐고.
이럴 때는 절대 아무도 안 갔냐고 하지 않는다.
안 간다는 의미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을 포함하는데,
실버도 도금도 아닌 주제에 그런 선택권이 어디 있기야 했었겠냐는
냉소가 깔려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솔직히 내 주변에는 자신이 골드미스임을 알리지 못해 안달 난 여자들이
발에 채여 넘어질 정도로 넘쳐난다.
그녀들은 코딱지 만한 미니 홈피에. 매일
나 어디 갔어요, 나 뭐 먹었어요, 나 뭐 봤어요, 일색이다.
(주로 오페라나 뮤지컬 혹은 외국에서 온 비싼 전시회 같은 것들이다.
영화관람 따위를 여기에다 넣었다가는 심하게 마니아 취급을 받거나
된장녀가 되고픈 쌈장녀 급으로 내려간다.)
어디 그뿐인가.
사진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각 나라들의 이름이 있다.
일본, 홍콩은 기본이고 프랑스, 영국, 심지어 유럽 한 바퀴도 본 적 있다.
거기서 그녀들은 절대 같은 옷을 입지 않고 셀카를 찍으며,
너무 잘난 척한 것 같다 싶으면
'나 외국서 고생 했떠염' 같은 사연을 간략하게 소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고생이란 것은 절대 돈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걸어 다니느라 다리가 넘넘 아팠다던지 아니면 길을 못 찾아 헤매었다던지.
그도 저도 아니면 음식이 맞지 않거나 동남아 쪽 여행 숙소에서
갑자기 도마뱀 같은 게 출현했다 던지 하는.
(세상에 집에 바퀴벌레나 쥐가 아닌 도마뱀이 나올 수도 있다.)
그 사연도 매우 이국적이기 그지없는 고생들만 끼일 자격을 얻는다.
그리고 나서 여행 후일담이랍시고 한다는 소리가
명품을 믿을 수 없는 가격에 싸게 샀다느니.
여행 가방을 루이비통으로 바꿨더니
안에 넣어둔 짐들이 조금도 한쪽으로 쏠리지 않았다느니 하는 소리들을 한다.
그녀들은 마치 맛집 리포터, 여행 전문가라도 되는 양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먹고 마시고 구입하고
또 그것들을 찍어 올린다.
그리고 온 몸으로 외친다.
나 골드미스라고!
한때 친구들 사이에서 계산할 때 내밀면 '오~ 쫌 버나 보지?' 소리를 들었던 골드카드처럼.
이제 그녀들은 카드쪼가리가 아닌 자신이 직접 골드가 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부럽냐? 하고 묻는다면 나는 부럽다 라고 대답하고 싶다.
정말로 부러우니까.
된장녀건 골드미스건 그녀들처럼 여유롭고 풍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인생이 편하겠는가.
남들에게 내밀었을 때 3초 이상 쳐다볼 일 없는 명함과
처음 일 시작할 때나 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이나 자릿수가 거의 늘지 않은 월급 명세서.
거기다 다소 골 비어 보인다 폄하했던 연예인이
'실은 저 또순이랍니다' 라며 통장을 열댓 개씩 가지고 나와서
펀드가 어쩌고 주식이 어쩌고 할 때 느끼는 좌절감은 또 어떻고.
고물 같은 차는 매일 퍼지기나 하고.
그나마 기름 값 무서워서 먼지 뽀얗게 뒤집어쓴 채,
지하철에 밀려 몇 달째 주차장 신세를 지고 있는데
누군가가 외제차 옆에서 '나으 애마' 따위의 제목으로 올린 사진이라도 보면.
그 날은 한없이 우울해진다.
얄팍해도 어쩔 수 없다.
이게 나란 인간이니까.
나는 가진 자를 보면 부럽고 못 가진 자를 보면 속으로 약간 우쭐하는 별 수 없는 속물이니까.
사람이 돈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 건 아니다.
근데 어디 세상에 아닌 게 긴 게 되는 일이 한두 가지인가.
아무리 아닌척하지만 선을 보러 가기 전에
'야야 그 사람이 돈이 그렇게 허벌나게 많다네?' 라는 소리를 들으면
사람이 달라 보이는 법이다.
언젠가 내가 아는 남자친구가 똥차를 끌고 다니던 시절과 외제차를 끌고 다니던 시절에 관한
극명한 비교를 해준 적이 있었다.
똥차를 끌고 다닐 때 여자를 데리고 포장마차에 가면 여자는 궁상 떤다며 싫어했단다.
그렇다고 고급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면 쥐뿔도 없는 게 허파에 바람만 잔뜩 들었다고 또 싫어했단다.
반면 외제차로 바꾸었을 때의 그는 포장마차에 가면 소시민적 정서를 지닌 소탈한 남자가 되었고.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역시 사는 수준과 안목이 남다른 남자가 되었다.
그는 말했다.
이러니 남자들이 땡빚을 내서라도 외제차를 끌고 다니고 싶지 않겠냐고.
나는 차마 그 앞에서 그건 머리에 허연 두부만 잔뜩 들어앉은 것들이나 그렇게 보는 거야 라고
말 할 수 없었다.
왜냐면 나라도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가난한자는 처지에 딱 맞다 하더라도 궁상으로 보이고,
어쩌다 조금 무리를 하면 안목이고 나발이고 주제에 맞지 않는 꼴값으로 보일 뿐이다.
아무리 약지 않으려고 해도 서른이 넘어서니 저절로 약아져 버렸고
내 뇌의 일부분은 계산기가 되어버렸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두드려지는 이 계산기는
이제 내 명령을 기다리지 않는 완전 자동화 시스템을 자랑한다.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사랑을 꿈꾸고 싶다.
결혼을 한 지인들이 결혼은 현실이라는 둥. 돈 없으면 사랑이 개뿔 밥 먹여 주느냐는 둥
말들을 하지만.
그리고 그 말들이 경험에서 온. 어느 정도는 현실적이고 진지한 충고겠지만,
그래도 나는 사랑을 믿고 싶다.
골드미스가 아니어도 나이 많고 보잘것없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줄 사람이 지구상 어디엔가는 살아있다고 믿고 싶다.
팍팍한 현실에서 제발 연애만큼이라도 밀림 속에서 살아남기 게임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멋진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명품 가방이나 비싼 보석을 아낌없이 선물할 수 있는 남자가 아닌.
누워있어도 보고 싶고 서있어도 보고 싶고 앉아있어도 그리운 남자가 필요하다.
현실에서는 제아무리 돈 몇 푼에 울고 웃더라도.
사랑만큼은 그냥 사랑이고 싶다.
그의 작은 농담에 웃고 싶고,
그의 얘기들을 반짝이는 눈빛으로 경청하고 싶다.
이러다 또 언제 아니야 돈이 최고야. 돈 없으면 말짱 황이야로 바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이걸 순수라 부르던 모자란다고 부르던 아직은 이렇게 살고 싶다.
세상에 물들거나 때묻지 않고 싶은 게 아니라
분명 그런 나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만큼은
그런 현실보다는 내 꿈과 희망과 사랑을 얘기하고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뭐 꿈과 희망이 돈, 큰집, 빠른 차, 남자, 명성, 사회적 지위라면 할 말 없지만.
적어도 아직은 그렇지 않은 나를 지켜나가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