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의 해제와 해지
정용상(동국대 법과대 교수)
계약의 해제란 유효하게 성립하고 있는 계약의 효력을 당사자 일방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로 되돌아 가게 하는 것을 말한다. 해제는 해제권이 있을 때에만 행사할 수 있다. 해제권은 당사자 사이의 계약(약정해제권)이나 법률의 규정(법정해제권)에 의해 발생한다. 해제계약(합의해제)은 계약의 당사자가 이전에 체결한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상태로 되돌리려는 내용의 새로운 계약을 말한다.
약정해제권은 계약의 당사자가 일방 또는 쌍방을 위하여 해제권의 보류에 관하여 특약을 한 경우에 발생한다. 법정해제권은 이행지체와 이행불능 등 채무불이행의 모든 유형에서 발생한다. 첫째, 이행지체의 경우 해제권의 발생은, ① 채무자의 유책사유에 의한 이행지체가 있을 것, ② 채권자가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이행을 최고하였을 것, ③ 최고기간 내에 이행이나 이행의 제공이 없었을 경우에 발생한다. 물론 초대장의 주문이나 결혼 예복 주문과 같은 정기행위에서는 채무자의 유책사유에 의한 이행지체가 있으면 바로 해제권이 발생한다. 둘째, 채무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이행불능이 된 경우에는 채권자는 최고없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셋째, 사정변경의 원칙에 의해 해제권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 요건은, ① 계약의 기초가 된 사정이 당사자가 예견하지 못했고 또 예견할 수도 없이 중대하게 변경되었을 것, ② 사정의 변경이 해제권을 취득하는 당사자에게 책임없는 사유로 생겼을 것, ③ 계약의 내용을 유지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할 것 등이다. 물론 최고는 할 필요가 없다.
해제권의 행사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하며, 이는 철회하지 못한다. 당사자의 일방 또는 쌍방이 다수인 경우의 계약의 해제는 그 전원으로부터 또는 전원에 대하여 해야 한다. 또한 그 중의 1인에 대하여 해제권이 소멸하면 다른 당사자에 대해서도 해제권이 소멸한다.
계약이 해제되면(해제의 효과), 첫째, 계약은 소급하여 무효로 되므로 계약에 의한 법률효과도 생기지 않았던 것으로 된다. 그러므로 계약에 따라 발생한 채권·채무가 모두 소급적으로 소멸한다. 그 결과 아직 이행하지 않은 채무가 있어도 이행할 필요가 없다. 만약 계약의 이행으로서 소유권과 같은 권리가 이미 이전된 뒤에 해제되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A가 B에게 토지를 매도하고 약정에 따라 소유권이전등기까지 해 주었는데, B가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A에 의하여 계약이 해제되었다고 하자. 이 경우에 B에게 이전되었던 토지의 소유권이 해제로 인하여 당연히 되돌아 오는 것으로 해석한다. 단지 해제로 제3자의 권리를 해치지는 못하기 때문에, B로부터 C가 그 토지를 매수하여 등기까지 했으면 계약이 해제되더라도 C는 소유권을 잃지 않는다. 둘째, 각 당사자는 원상회복의무가 있으므로 부당이득을 반환할 의무를 가진다. 이 의무는 해제의 상대방은 물론이고 해제한 자도 부담한다. 셋째, 민법은 해제를 하면서 동시에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의 손해배상은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것이다. 넷째, 계약해제시에 부담하는 당사자 쌍방의 원상회복의무에 대하여는 동시이행의 항변이 가능하다. 동시이행의 항변은 원상회복의무 뿐만 아니라 손해배상의무에도 적용된다.
계약의 해지란 소비대차, 임대차, 고용 등과 같은 계속적 계약의 효력을 장래에 향하여 소멸하게 하는 단독행위이다. 해지권도 해제권처럼 법률의 규정(법정해지권) 또는 당사자의 계약(약적해지권)에 의하여 발생한다. 해지권의 행사는 해제권의 경우와 동일하다. 해지의 효과는, 해지가 있으면 계약은 장래에 향하여 효력을 잃으며, 소급하여 무효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계속적 계약이 해지되면, 계약관계의 청산의무가 존재한다. 임대차에 있어서 임차인의 목적물 반환의무가 그 예이다. 또한 손해가 있으면, 계약을 해지함과 동시에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다.
해제와 해지의 차이점을 요약하면, 첫째, 해제할 수 있는 계약은, 법정해제권이 채권계약에 인정됨은 물론이나 물권계약·준물권계약의 경우에는 채무불이행이 있을 수 없으므로 법정해제권이 문제될 여지가 없다. 약정해제권은 채권계약, 물권계약, 준물권계약에 공히 인정된다. 반면에 해지할 수 있는 계약은 해제의 경우보다 훨씬 좁아, 해지권이 인정되는 계약은 계속적 채권계약에 한한다. 해지는 계속적 채권계약에 있어서도 채무자가 채무내용에 따른 이행을 하기 시작한 후에만 할 수 있고, 그 전에는 해제만 가능하다. 둘째, 해제와 해지는 소급효의 유무에 의하여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즉 계약을 해제한 때에는 소급하여 그 효력을 잃게 되나, 해지한 때에는 장래에 향해서만 그 효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해제와 해지의 효과의 발생시기는 두 경우 모두 그 의사표시로 바로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나, 해지의 경우에는 해지기간이 있어서, 해지의 효과발생을 의사표시후 일정기간이 경과한 때에 나타나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 셋째, 기존채무의 효력은, 해제가 있기 전에 이미 성립한 채무는 해제로 인하여 이미 이행된 것은 원상회복해야 하고, 아직 이행되지 않은 것은 당연히 소멸한다. 이에 대해 해지가 있기 전에 계속적 채무관계에서 이미 발생하여 아직 이행되지 아니한 개개의 지분적 채무는 기본적 채무관계가 소멸하여도 그대로 존속한다.
일상의 거래에서 계약상 문제가 발생하여 그 계약의 실행이 어려운 경우, 어떤 때에 계약을 해제하고, 어떤 때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 요건과 효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하여 사전에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좋은 칼럼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