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법 삼국지-1] 제갈공명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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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법 삼국지-1] 제갈공명의 고뇌

박두현 1 16
오장원의 깊은 밤, 군막으로 파리한 머리의 한 노승이 등에 봇짐하나 지고 삼엄한 경계 속에 촛불이 은은히 비추고 묵향 서책 내음이 가득한 곳으로 스며들 듯 들어갔다.
 
" 처사님 ! "
" ...... 아 ! "
" 제갈량 처사님 ! "
" 안녕하십니까 스님 ! "
군막은 차가운 밤공기에도 아랑곳 않고 각종 지도와 서책을 펼쳐 놓고 각종 방책 수립에 고심하는 촉한의 실질적 지도자인 제갈량의 열의로 가득차 있다.
 
"그간 평안하셨지요. "
온화하고 예리하며 냉철한 제갈량은 책상 구석에 있는 차를 따르며 말을 건넨다.
"가는 곳이 불국토요 이 몸 또한 여여한데 깨닫지 못한 제 자신의 불성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오장원의 전황은 어떠하신가요?"

"사마의의 거점방어를 중심으로 한 기동전에 촉한의 공세적 방어전략(以攻爲守)이 무력해지고 있는 형편이지요"
"하지만 그 마저 없었다면 삼국의 정립이 가능했겠습니까."
"조조의 서주에서의 만행과 같은 일이 또 다시 있었겠지요."

"제갈량 처사님은 어릴적 느낀 서주에서의 공포란 업을 아직도 잊지 않으셨군요"
"우리 유자(儒者)들이 머물곳을 잃어 버렸으니까요. 만일 적벽대전의 승리가 없었다면, 이미 천하는 조조를 중심으로 하는, 실리와 능력을 우선하고, 청주병 중심의 황건의 도를 따르는 무리들의 세상이겠지요. 조조가 분명 영웅이긴 하나 세상은 넓고 군웅할거의 난세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따를 신 사상과 철학, 종교는 춘추전국의 백가쟁명보다 못합니다."
 
밤은 깊어만 가고 서쪽 하늘은 청동 빛으로 달빛 어스름히 밝아오며 동녘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었다.
"저 남만과 서역의 소식이 궁금하시지 않으십니까? "
제갈량은 묵묵히 자신의 찻잔을 가득 채운다.
 
"남만은 맹획과 그들의 무리가 제갈량 처사님께 복속한 후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에 급급합니다. 더 이상의 무력 대결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된 저들은 무너진 자신들의 무너진 위상을 새로 세우기에 급급하고, 새롭게 출현하는 내부의 신진세력과의 투쟁과 융합을 시도하나 여의치 않은것 같습니다."
" .....예 "

" 서역 역시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대상인단들의 교통로를 점거할 만한 통합된 세력의 출현은 불가능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니까요. 다만 우려되는 것은 서역으로 통하는 통상로의 도적들이 점차 대규모화 조직화되어 촉한의 무역로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또한 토욕번 고산지대의 강(羌)족은 지리적 한계로 수백년간 중원의 위협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갈량은 묵묵히 자신의 책상에 펼쳐진 글귀하나 응시하고 있다.
'무릇 군자는 고요함으로 수신하고 검박함으로 덕을 함양하니 담박하지 않으면 원대한 뜻을 세울 수 없고 고요하고 안정되지 못하면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 무릇 배움은 고요해야 하며 재능은 배움에서 얻어진다. 배움 없이는 재능을 넓힐 수 없으며 지향하는 바가 없이는 배움을 이룰 수 없다. 방종하고 태만하면 정신을 바로잡을 수 없으며 험하고 조급하면 성정을 다스릴 수 없다.'
형주 융중에서 초의서생으로 나날을 보내던 량은 유비의 삼고초려에 의해 출사했다. 하지만 그는 그 이전에 지금 만나고 있는 혜명스님 으로부터 허도 군진의(당시 조조가 세운 위魏 정부가 있던 수도) 형주로의 남하계획을 계속해 듣고 있었다.
 
이미 한 왕조는 무너지고 없는 상태.
조조는 중원 이남의 비옥한 곡창지대이며 당시의 각계 망명 유명인사가 모여 있는 형주를 복속함으로써 동으로 오를 서쪽으로 촉을 그리고 서역으로 잇는 대상인들의 출구인 한중을 각개 분리함으로써 각각 굴복시켜 천하를 통일하고 새로운 문명시대를 열고자 하는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량은 서주에서의 학살을 경험한 그는 형주의 불행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무척이나 망설였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고 하여 살생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식인의 관망 또한 살생이나 다름없다. 황건난 이후 떠도는 다수의 유민과 조조에게 귀의한 무리, 동탁과 이각 곽사의 난 이후 떠도는 한왕조의 유신과 유학자들 그들의 명분논쟁으로는 새로운 질서를 기대할 수 없었다. 무너진 천하의 질서 속에서 중원의 민초들은 농사법조차 잊어 사냥과 약탈로 연명했고 군웅은 일어나 권력다툼의 정략과 군략에만 매달렸다.
 
그때 조조는 어린 천자를 등에 업고 승상을 자처했지만은, 능력우선의 인재등용으로 무너진 질서 속에서 농민과 유민들에게 농사와 치수를 가르쳤고, 몸소 시문을 지으며 문화자생을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천하의 마음이 쉴 곳이 없다. 천하의 마음이 의지할 사상이 없다. 새로운 마음속의 시스템이 요구 되었다.
 
지금은 조조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장년의 조조가 아버지의 복수심에 서주를 불태울 때, 떠돌던 피난민과 한 왕조 유신 무리속의 미소년 량은 오열했다. 높은 말에 올라타고 좌우의 군진과 함께 전투대형을 벌린 상태에서 모든 군마가 가볍게 전진한다. 상대의 용병에 응변해 조조의 신호에 따라 조조의 군영은 활을 쏘고, 보병이 상대의 기병들의 길을 막으면, 늘어진 상대진영을 향해 기병이 빠르게 쇄도해 들어간다. 흩어진 보병 대열은 궁수들의 좋은 표적이다. 밤낮으로 서주는 불타고 있었다. 수시로 조조를 향해 간첩들이 보고해 들어 갈 때마다 조조진영의 서로 다른 깃발이 올라가고 북이 울리며 군마는 한데 소용돌이 쳤다.
 
"아녀자 와 민은 해하지 마라"
서주에서의 조조가 내린 엄명이었다. 하지만, 살인을 한 병사들 중 화살이 날고 동료가 죽는 전장에서 그만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나이는 일개 병사의 그릇이 아니다. 살육의 물결에 휩싸인 그들에게는 생각할 수 있는 담력과 웅략과 기개가 부족한 것일까.
서주는 그렇게 불탔고 호위 무사들에 둘러싸인 제갈씨족의 행렬은 두 손에 칼을든 채 살육의 현장을 횡단했다.
 
온 마을이 불타고, 피가 내를 이루었고, 사람들은 광란에 춤췄다.
한왕조가 떠받들던 유가의 질서가 환관들에 의해 문란해지고, 포악하고 교만하며 오만한 호족들의 등쌀에 부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삶의 탈출구를 찾던 민초들의 황건란에 유가의 질서가 무너져가고 있는 현장을 제갈량은 보았고 그의 형제와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조조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약탈할 수 있는 산적을 호위무사로 아버지를 경호하게(조조의 아버지는 서주 태수의 부하인 호위무사들에 의해 살해 약탈되었다) 한 서주 태수를 용서하여 유가의 충과 효를 외면하고 군웅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그런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믿을 수 있었을까, 그런 부하들의 충성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 이것이 제갈량이 서주 사건에 대해 조조에게 갖는 연민과 의문과 회의였다.
일개 떠돌이 무사가 된다해도 일개 서생으로 숨어 산다해도 아무리 아비를 죽인 원수라해도 그 많은 민초를 살육하고 공포로 누를 수는 없다. 제갈량은 그렇게 생각했다. 민(民)의 생각은 언제나 깨어 있다. 다만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나 자신도 난리 속에 죽은 부모와 헤어진 형제에 대한 슬픔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조조는 조조란 인간은, 그 조조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삶의 터전을 마련해 줬다.
그리고 시문의 발전을 통해 마음의 위안도 가져다 줬다.
수많은 상념 속에서 오장원의 새벽은 밝아오고 굳은 듯 생각에 빠져든 량을 바라보던 혜명스님은 손에 염주를 쥐고 말없이 돌렸다.
 
혼란 속에 빠져든 세상 속에 저 마다의 가치관, 주관과 사상을 지닌자들이 이나마 삶의 거쳐를 갖고 살게 된 것도 후한말 수많은 식자와 정치가, 전략, 군략가들이 논하였던 삼국정립론의 실현에 있었다. 이미 하나의 통일 된 왕조를 기대하기에는 한왕조의 부패가 심했고, 황건란의 상처가 깊었으며, 그로인한 도가의 종교화와 함께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유입되어 새로운 기풍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미완의 평화
제갈량은 그 불완전한 평화를 지키기 위해 행동으로 삼국정립의 실천으로 사투를 하고 있고 혜명은 깨달음이란 불국토의 염원 속에 각기 다른 새로운 새벽을 기다리고 있었다.
 
- 제갈량의 고뇌, 끝, -
 
제갈량[諸葛亮, 181~234 ㅣ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 겸 전략가.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유비(劉備)를 도와 오(吳)나라의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曹操)의 대군을 적벽(赤壁)의 싸움에서 대파하고,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점령하였다. 221년 한나라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승상이 되었다.
 
 병법 삼국지가 추구하는 내용.
평화와 전시를 막론하고 모든 인류는 생존 경쟁의 전쟁(평화적이든 투쟁적이든)을 수행하고 있다. 평화시에는 전쟁을 위한 부국강병과 경제부흥을 주도하고 전쟁시에는 준비된 종교적, 정치적,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지도발 및 전면전의 전쟁을 수행한다.
그러한 전쟁의 총체적 개념은 종교인, 사상가, 정치인, 산업가, 군인, 무도인, 일반 국민의 총력의 정신 사상과 함께 총체적 종교적,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병법적 측면의 전략과 전술에 의해 인류가 생존하는 한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내가 쓴 병법 삼국지는 바로 중국의 고대 삼국시대의 오장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생존 투쟁사로 평화와 함께 전쟁으로 종교적 사상적 철학적 통합을 이루어 가는 이야기를 쓴 것으로 병법 전략 사상가들의 이야기이다.
 
*저자 김주형은 전주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ROTC 33기로 보병 소대장을 역임했다.
2000년 초반 무토(전 무카스)에서 객원 기자로 활동했으며,
소설 ‘이야기태권도’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서산문학 회원이다.
 

Comments

임우순
언제나 재미있는 삼국지가 최고다이,.,..좋은 글 대단히 감사합니다....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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