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상(동국대 법과대 교수)
<경력>
현재 동국대 법과대 교수, 정부의 전자거래분쟁조정위원회 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조정위원
전, 동국대학교 법과대학장, 법무대학원장, 전국법과대학장협의회 회장
한국법학교수회 수석부회장 겸 사무총장, 한국법학원 부원장
타율과 통제중심의 시험에 의한 법조인 선발이 아닌 자율과 경쟁의 교육에 의한 법조인 양성을 목적으로 2009년 도입한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이라 함)제도는 사법시험제도의 병폐인 법조진입장벽을 헐고, 선진국에 비해 절대부족한 법조인 수를 늘려 국민에게 적정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법조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문을 연 로스쿨은 당초에 우리가 도입하려 했던 제대로 된 로스쿨과는 거리가 먼, 변형된 로스쿨, 형해화 된 로스쿨, 무늬만 로스쿨이라는 혹평을 받으며 출범하였다. 그러한 혹평의 근저는 간단하다.
새로 도입된 로스쿨은 당초의 제도도입의 취지와는 달리, 자율과 경쟁이 아닌 타율과 통제, 법조인 수를 제한하기 위해 관련 법과 정책을 통한 온갖 정부간섭을 받도록 재단되었기 때문에, 교육의 주체인 대학으로서는 다양화·전문화·특성화된 교육과정의 운영을 통하여 양질의 법조인을 배출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고, 오로지 정부통제하에서 변호사자격을 찍어 내는 공장처럼 변호사시험중심의 단순하고도 기초적인 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즉, 로스쿨 입학총정원을 2,000명으로 통제하고, 대학별 입학정원도 150명에서 40명까지 대학별로 사사건건 구체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졸업 후 변호사시험을 통하여 선발인원을 통제함으로 인하여, 로스쿨진입에서부터 변호사자격취득에 이르기 까지 하드웨어와 소프트 웨어 불문하고 무차별적 규제를 가하여 정상적 로스쿨교육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로스쿨이 변호사시험준비를 하는 학원(?)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므로 현재의 로스쿨환경의 열악함에 대한 책임은 대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법조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부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통제와 규제를 통한 법조인증원을 억제하는 정책하에서는 로스쿨진입도 법조진입도 이전보다 훨씬 폐쇄적이어서 법조선진화나 사법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입학정원 80명이하의 소규모 정원을 받은 절대다수 로스쿨의 경우 정상적인 교과운영자체가 불가능하며 결과적으로 고비용구조를 야기하였고, 높은 인가기준과 갖가지 조건을 붙인 로스쿨인가주의는 제대로 된 로스쿨교육을 시킬 수 없는 상황을 안게 되었다.
또한 학부 법학전공과정을 운영하는 대학의 법학교육은 정부에서 아무런 정책방향도 제시하지 않은체 방치상태에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정말 중요한 학문으로서의 법학교육과 학문후속세대양성기능 등에 대한 좌표는 잃어버린 상태에서 ‘법학’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그야말로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법학교육과 법조인 선발시스템에 관한 문제해결을 위해 백가쟁명의 안이 나와 있고, 이를 입법을 통해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 안들은 사법시험존치, 예비시험제도 도입, 로스쿨에서의 학부법학교육과정 부활 등 다양하다.
첫째, 원칙적으로 사법시험제도의 존치는 로스쿨제도도입 취지와 근본적으로 반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로스쿨과 사법시험으로 이원화된 법조인선발시스템은 양 제도 간의 선의의 경쟁보다는 3년 교육과정의 로스쿨을 형해화 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고, 로스쿨 재학 중인 학생이 사법시험을 준비하므로 인하여 로스쿨교육이 파행화 될 수 있다. 또한 전공불문하고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사법시험 열풍에 휩싸여 우리나라 고등교육(학부교육)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다. 일단 도입한 로스쿨제도를 반듯하게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의 초점이 맞춰줘야 한다는 입장에서 볼 때 로스쿨과 사법시험의 병존은 논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고 본다. 사시존치의 반대의 전제에는 로스쿨의 정상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둘째, 변호사예비시험제도는 원칙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보호측면에서 볼 때 유익한 제도라고 본다. 그러나 로스쿨의 전형요소와 변호사예비시험의 전형요소가 전혀 다르므로 인하여 수험생에게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현행처럼 로스쿨 인가기준이 너무 높아 로스쿨 설치대학의 엄청난 재정적 부담이 입학정원의 과소화와 어우러져서 결국 로스쿨학비의 고비용구조를 조장하여 로스쿨이 부유층의 전유물로 전락한다는 비판과, 로스쿨 진입이 폐쇄적이고 입학정원이 소규모인 이유로 절대 다수의 법조인희망자가 그 뜻을 포기할 수 밖에 없어서 로스쿨이 사회양극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예비시험제도 도입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문제는 예비시험 인원과 교육기간, 교육과정 등에 대한 또 다른 통제를 통하여 겹겹의 통제공화국(?)이 되어 법학교육을 질식시키는 결과가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또한 로스쿨 교육기과 같게 3년간 특별교육기관을 통한 법교육을 강제이수토록 한 것은, 교육에 의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대의와 현행 로스쿨과의 형평성 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이나, 로스쿨교육과 특별교육기관에서의 교육의 성격이나 강도 등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이고, 현재 다른 직역에 종사하고 있는 직장인의 법조로의 이동의 효율성 측면 등의 현실적 입장을 볼 때도 의문이다. 또 현재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학부 법학전공자들에게 그러한 기간의 일률적 적용이 과연 타당한지 등의 의문이 있다. 이 제도도입의 당위를 위한 전제는 변호사시험의 완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로스쿨이 설치된 대학에서 재정적 어려움 등의 이유를 들어 학부 법과대학을 부활하겠다는 움직임 또한 로스쿨제도의 본지에 반한다. 제대로 된 로스쿨을 추구하지는 못할망정, 기형의 로스쿨을 합리화·기정사실화 하겠다는 의도인가? 기존 로스쿨에 진입한 25개 대학의 재정적 운영상의 어려움은 인정하나, 대승적 차원에서 볼 때 너무 치졸한 근시안적·이기적 발상이다. 애초에 로스쿨인가를 받은 대학이 로스쿨교육역량을 갖춘 대학 순으로 인가받은 것도 아니고, 또 엄연히 절대다수의 대학에 법학전공 학부법학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주장을 펼치는 것은 학부 법학교육담당자 입장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현재 학부법학교육의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다 알면서 25개 로스쿨의 새로운 기득권을 형성하여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로스쿨 운영상 많은 어려움이 있은 것은 사실이지만 학부와 로스쿨의 협업을 통한 건강한 법학교육과 실무교육을 위한 시너지 창출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저급한 발상을 하는 것은 결코 로스쿨교육의 발전을 위한 답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조치들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하는 데는 소용이 없다.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원칙으로 돌아가면 된다. 로스쿨제도를 도입하게 된 취지와 로스쿨의 제도적 목적에 충실하게 로스쿨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로스쿨은 도입해 놓고 그 제도의 취지나 목적을 몰각한체 꼼수를 부려서 법조인증원을 근원적으로 막으려는 통제와 규제장치를 풀지 않으면 영원히 문제해결은 안된다. 로스쿨은 로스쿨 다와야 한다. 지금의 로스쿨에 대한 비아냥(No school, low school, Raw school)을 해소하기 위한 답은 간단하다. 원칙으로 돌아가면 된다.
로스쿨 총정원규제를 풀고, 엄격한 인가기준에 따라 그 요건을 갖춘 대학에 대해 로스쿨진입을 허용하고, 대학별 정원 또한 대학 자율에 맡기고, 소정의 교육을 받은 자에게 변호사자격을 부여하면 된다. 다만 정부(법조)는 로스쿨운영결과에 대한 평가를 하면 된다. 나머지 문제는 법률시장에 맡기면 된다. 교육은 대학에 맡기고 정부는 법률시장다변화를 위해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는 법조직역확장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 법치국가에서 법률가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왜냐 하면 그 자체가 소중한 국가자산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로스쿨 운영에 간섭하려 들지 말고 정부 각 부처 및 산하단체, 기초자치단체는 물론 읍, 면, 동, 기업, 공공단체, NGO 등 온갖 직역마다 법률가가 포진하여 예방적 법률서비스를 함으로써 풀뿌리 법치주의 실현을 위한 전사로 소장법률가들이 기여할 수 있도록 입법적·정책적 노력을 다 해야 한다. 로스쿨을 이대로 두고는 어떤 처방도 소용이 없다. 규제를 푸는 외에는 답이 없다.
이와 함께 새내기 법조인들이 송무 만 담당하려는 발상은 버려야 한다. 스스로 자세를 낮추어 희생과 헌신의 자세로,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