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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대 마크
▲ 월남에 파병되었던 육군 제9보병사단(백마부대)의 부대기
사단은 1950년 10월 25일 국방부 일반명령 제29호에 의거, 서울에서 창설, 예하부대로서는 제28연대가 대전, 제29연대가 공주, 제30연대가 청주에서 각자 창설 되었으며, 이듬 해 1월 보병사령부가 광주에서 편성되었습니다. 사단은 편성 1개월도 못된 동년 11월 23일부터 경북지구(영주, 김천, 문경) 공비 토벌작전에 참가하였으며, 1951년 1월 25일 연합군의 제2차 총 반격시에는 제1군단 예하부대로서 북한군 제10보병사단의 주력을 포착 섬멸하여 적 사살 5,549명, 화기 노획 1,622정의 대전과를 올렸으며, 그 후 철원지구 반격작전, 금화지구 방어작전, 사두봉 전투를 거쳐 용맹한 백마고지 전투에서는 중공군의 정예부대인 제38군의 12차에 걸친 인해전술에도 불구하고 처절한 피아공방전 끝에 적병 8,234명을 사살하고 백마고지를 회복하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휴전이 되기까지 8개월동안 중부 및 중 · 동부 전선에서 삼각고지, 금화 저격능선 등지에서 전투를 계속하였으며, 홍천 이후 금화, 포천, 인제, 화천, 양평, 양주 등지에서 부대정비와 전선 방어임무를 수행하면서 저눝력을 배양하여 오던중 1966년 6월 1일 사단은 국방부 지령 제3호에 의거, 제2차 파월 사단으로 지명됨으로써 자유십자군의 일원으로 해외에 파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73년 귀국 시까지 월남의 ‘나트랑’에 주둔하여 불도저 작전, 백마작전 등의 작전을 실시하였습니다. 파병 기간 중 총 100,376명이 참전하여 대부대 작전 478회, 소부대 작전 211, 236회를 실시하여 월맹군 제18연대를 비롯한 베트공을 섬멸하였습니다. 한편 심리전과 대민 지원활동을 시행하여 월남정부의 평정 및 지역개발 사업지원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귀환 후 주요지역에서 주둔하면서 G군단의 전략예비사단으로 주요 전투훈련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등 전략예비부대로서 우리를 든든하게 합니다.
▲ 사단가
철원뜰 백마고지 싸움터로 삼고서
▲ 백마부대 환송식
▲ 파월군가 ‘달려라 백마’
▲ ‘달려라 백마’
아느냐 그이름 무적의 사나이 세운공도 찬란한 백마고지 용사들 정의의 십자군 깃발을 높이들고 백마가 가는곳에 정의가 있다. 달려간다 백마는 월남땅으로 이기고 돌아오라 대한의 용사들
아느냐 그이름 역전의 사나이 그이름도 찬란한 백마고지 용사들 자유의 십자군 깃발을 높이들고 백마가 가는곳에 자유가 있다 달려간다 백마는 월남땅으로 이기고 돌아오라 대한의 용사들
아느냐 그이름 상승의 사나이 청사에 찬란한 백마고지 용사들 평화의 십자군 깃발을 높이들고 백마가 가는곳에 평화가 있다. 달려간다 백마는 월남땅으로 이기고 돌아오라 대한의 용사들 |
들어본 기억도 없는것 같애! 흑흑흑~~~! 이렇게 기억력이 나빠서야~~!
그러니, 기억 안 나는 것이 당연하지..
옥하야.. 너무 자책하지 마라..
소집해제된 동기는 155명일세 ㅎㅎㅎ
임진강의 추억이 고스란히 잠겨있는곳~~문산,용주골도 근처에 있고~~
월남 파병 갔던, 명성이 자자한 부대네..
9사단 출신 인재도 많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