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군 제1보병사단 반격작전 참가 부대기
한국전쟁 당시 초기전투에 참가한 제1보병사단의 부대기입니다. 사단의 모체인 제1보병여단은 1947년 12월 1일 제1연대(태릉), 제7연대(청주), 제18연대(춘천)를 기간으로 창설되었으며, 제1여단 사령부는 서울 남산동에 위치하였습니다. 이후 1949년 5월 1일에 사단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제1보병사단은 1950년 7월 5일 육군 개편 계획에 의거 예하 연대로 제11연대, 제12연대, 제13연대가 편성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제1보병사단은 개성 · 문산 지구전투(1950. 6. 25 ~ 30), 다부동 전투(1950. 8. 3 ~ 29), 낙동강 선 방어(1950. 8. 30 ~ 9. 24), 평양 탈환작전(1950. 10. 11 ~ 19), 임진강선 방어(1951. 6. 25 ~ 1952. 4. 2), 노리 · 베티 고지 전초전(1952. 10. 6 ~ 12. 13)등 많은 전투에서 활약하였습니다.

육군 제1보명사단은 대한민국 육군의 보병 사단으로서 한국전쟁 이전에 창설된 부대입니다. 1948년 송악산 전투에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육탄 10용사가 속한 부대이며, 한국전쟁때 다부동 전투, 평양선봉입성, 베티고지 전투등 단 한번도 북한군에게 진 적이 없는 부대입니다, 1950년 10월 19일 국군 최초 평양선봉입성을 하여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진 휘호를 받아 전진부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단은 일반적인 경례구호인 “충성” 대신 “전진”을 붙입니다. 특히 동쪽으로 임진강서쪽 지역부터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 출입로, 도라산역, 도라전망대, 대성동, JSA등과 같은 가장 중요한 시점에 가장 중요한 위치의 경계를 맡고 있는 부대이기도 합니다. 또한 전두환 前 대통령이 군복무시절 한 때 이 부대의 지휘관이였다는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제1보병사단은 1947년 12월 1일에 창설된 제1여단을 모태로 하여 지속적으로 병력을 증강하여 제1보병여단은 1949년 5월 12일에 사단으로 승격됩니다. 한국전쟁 전 사단사령부는 수색에 두었고, 경기도 문산 및 개성 방어를 담당했습니다. 1948년 5월 4일 송악산 전투에서는 적의 토치카를 육탄으로 파괴하고 장렬히 순국한 육탄 10용사로도 유명합니다.
다른 국군 사단들처럼 1 보병사단도 한국전쟁 초기 북한군의 T-34를 앞세운 기습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합니다. 사단장 백선엽 대령은 다른 고위 장교들과 함께 전날 있었던 파티에 참석하여 자리를 비운 상태였으며, 사단은 처음 접하는 전차에 큰 피해를 입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사단장의 복귀 후 전열을 재정비하여 봉일천에서 밀려오는 적군에 대해 필사적으로 반격작전을 감행하였지만 전력의 차이는 너무나 컸습니다. 결국 예하 포병대대의 포탄마저 바닥난 상태에서 1사단은 한강을 건너 시흥군으로 철수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중화기를 상실하였고, 많은 병력도 잃은 상태였습니다. 이때 부대재편을 통하여 기존 13연대와 새롭게 편입된 지원부대인 제15연대를 통합하여(제15연대로의 명칭변경은 낙동강 방어전시 변경), 예하부대는 제11연대, 제12연대, 제15연대로 재편되었습니다.
제1보병사단은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했고,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대구와 낙동강 이남을 적으로부터 지켜냅니다. 그후 미국 제1군단의 미국 제24보병사단, 미국 제1기병사단과 함께 배속되어 인천 상륙 작전이후 반격전에 참가합니다. 그리고 1950년 10월 19일 평양을 완전 정복하는 쾌거를 올리게 됩니다. 그 후 10월 20일 평양선봉입성 공적으로 제1보병사단 전 장병은 1계급 특진하게 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제1보병사단에 대통령 표창과 더불어 전진 휘호를 내리게 됩니다. 그후 이 부대는 전진부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953년 휴전 협정조약이 체결되던 당시, 현재는 파주쪽의 비무장 지대내에 있는 베티고지를 점거하고 있던 제1보병사단 제15연대 김만술 상사가 이끄는 1개 소대가 중공군 한 대대를 맞서싸워 이기는 대승을 거둡니다. 그 결과로 김만술 상사는 1계급 특진에 태극 무공훈장을 받았고, 생존자들은 베티고지의 영웅들로 추앙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