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흡혈 박쥐들은 밤이면 사냥에 나선다. 잠자고 있는 동물의 목을 물어 혀로 피를 빤다. 그러나 먹잇감을 못 찾아 허탕치는 박쥐들도 많다. 사냥에 성공한 박쥐는 동굴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피를 토해내 배고픈 박쥐들에게 준다. 박쥐들은 피를 나눠준 친구를 기억하고 나중에 같은 방식으로 은혜를 갚는다. 동물학자들은 이 박쥐들을 '자연계 최고의 헌혈자'라고 부른다.
▶ 스코틀랜드 의사 블런델은 1822년 분만 후 출혈로 사경을 헤매던 산모를 조수에게서 받아낸 피로살려냈다. 수혈이 성공한 첫 사례다. 그 전까지는 양이나 송아지 같은 동물 피를 수혈했다가 환자가 잇따라 사망해 프랑스에선 수혈금지령까지 내렸었다. 30~40%에 그치던 수혈 성공률은 1901년오스트리아 면역학자 란트슈타이너가 ABO식 4가지 혈액형을 발견하면서 크게 높아졌다. 란트슈타이너는 노벨상을 받았다.
▶ 어제는 국제적십자연맹과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헌혈 관련 단체들이 제정한 '세계 헌혈자의 날'이다. 혈액형을 발견한 란트슈타이너의 탄생일을 기념해 아무 보상도 없이 헌혈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다. 우리도 2주마다 한번씩 헌혈에 나서 지금까지 134차례나 피를 나눠준 24세 청각장애인 박예섭씨 등 230명이 표창을 받았다.
▶ 2003년 253만명까지 치솟았던 우리 헌혈자는 2007년 208만명으로 4년 새 45만명이나 줄었다. 에이즈 혈액 사고와 헌혈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으로 사람들이 헌혈을 꺼리면서다. 그러던 '피 가뭄'이 작년 헌혈자가 234만명으로 재작년보다 12.4% 늘면서 해소됐다. 길거리나 단체 헌혈보다 '헌혈의 집' 등을 통한 개인 헌혈이 늘어난 덕분이다. 그래도 헌혈자가 16~69세 인구 100명 중 6명꼴밖에 안 된다. 일본은 고령화와 10~20대의 무관심으로 해마다 헌혈자가 줄고 있다. 우리도 여건이 같다.
▶ 헌혈은 몸에 이롭다. 미국 캔자스대는 헌혈자가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헌혈 경험이 없는 사람보다 30%나 낮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핀란드 쿠오피오대도 3000명 가까운 환자들을 조사했더니 심장마비에 걸린 헌혈자는 0.7%에 불과한 반면 비(非)헌혈자는 12%나 됐다고 한다. 피를 빼면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몸 안 철분농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헌혈은 기쁨이다. 우리 주변에서 매일 1096명, 1시간마다 46명이 '작은 영웅'들의 헌혈로 새 생명을 얻는다. 팔뚝을 걷어붙이기만 하면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