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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산에 달이 뜬 듯 구멍이 뚫린 석월량(石月亮)을 지나 들어간, 꽁샨두롱족누족자치현(貢山獨龍族怒族自治縣)의 꽁샨(貢山)은 작은 현도(縣村)였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가오리꽁산을 넘어들면 이라왓디(Irrawaddy)강 상류, 두롱쟝(獨龍江)이 흐른다. 이 강은 영국인 식물학자 프랭크 킹던 워드(Frank KingdonWard)가 1937년 미얀마의 이라왓디강 상류에 솟은 하카보 라지(Hkakabo Razi·5,881m)봉 유역을 처음으로 답사하고 쓴 <Burma’s Icy Mountains, 1949> 책 속 첨부된 지도에 타론(Taron)으로 등장하는데 이를 중국어로 음차하여 지금에 두롱쟝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강 유역은 7,400명 가량의 두롱족(獨龍族) 삶의 터전인데 특히 여자들은 얼굴에 흉측한 문신을 하는 풍습이 남아있다고 한다. 아쉽지만 우리의 촉박한 일정은 이곳에 들어갈 여유가 없다.
지질구조상 이곳은 인도판이 유라시아판을 밀어붙임으로써 히말라야 산맥이 생성되고 그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횡단산맥이 형성되었다. 심하게 이동 중인 지판은 잦은 지진을 발생시키고 또한 곳곳에 유황온천을 만들었다. 밭에서 일을 하는 누족(怒族) 남자들은 검은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두루마기 모양의 원피스에, 천으로 허리를 둘러매었으며 끝이 절단된 긴칼을 차고 있다. 또 이들은 활총과 화살을 휴대하기도 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일직선으로 흐르던 강물이 누쟝제일만(怒江第一灣)을 굽이돌고 그곳을 지나자 넓은 삼각주에 과일 나무들이 선 빙종루(丙中洛)였다. 마을의 북서쪽에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삼각뿔의 암설봉이 나타났다. 1911년 킹던워드가 해발 6,666m가 넘는다고 추정하여 케니춘푸(Keni chun pu)로, 미국인 박물학자 조셉 락(Joseph F. Rock)의 사진이 1926년에 내셔날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Magazine)에 실려 세상에 알려진 카와카부(瓦布·Kawakabu·5128m)로 주민들 모두에게 신산(神山)으로 여겨진다.
라마교뿐 아니라 다양한 종교 믿는 빙중루 주민들
이 마을은 리수족, 누족, 짱족(藏族)이 뒤섞여 사는데 믿는 종교 또한 제 각기 다르다. 라마교의 곰파와 초르텐, 성당, 교회가 뒤섞여 있다. 티베트인들은 모두 라마교를 믿을 거라는 편견은 쉽게 무너졌다. 영국이 미얀마를 지배하고 있을 당시 선교활동의 흔적들이다.
정든 택시운전사와 작별을 고했다. 훈석이 알아서 팁도 챙겨준다. 즉시 우리는 매리설산 답사의 실질적인 출발지인 차와롱(察瓦龍)까지의 접근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약간의 식량을 구입했다. 변변한 지도조차 없던 참에 다행히 이 마을 부근의 관광지도 한 장은 어두운 밤길의 횃불이었다.
다음날 덜덜거리는 지프에 실려 수백 미터의 바위협곡 시먼관(石門關)을 뚫고 치나통(秋那桶) 마을로 들어갔다. 그곳에 매리설산을 몇 번 가이드 했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치나통은 정감 있는 마을이다. 돌판을 얻은 지붕, 그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옥수수, 또 그 밑 벽에 매달린 대나무 바구니 속에 계란이 소복하다. 추수가 끝난 밭으로 거름을 내는 아낙네들과 소 두 마리를 이용해 밭을 가는 촌로를 지나쳐 가이드가 있다는 집에 들어갔다. 우선 내어준 수유차를 마신 후에 그의 입에서 나온 정보는 수유차만큼이나 시큼했다. 차와롱까지 차량은 갈 수 없고 말을 타고 이삼일 가야한다는 대답이었다.
서둘렀다. 한 시간이라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타고 온 지프차의 운전사를 구슬리고 달래 길이 끝나는 곳까지 일단 가자고 했다. 바쁜 우리의 사정을 아는 그는 적정 이용료에 몇 배 가량을 불렀다. 어쩔 수 없다. 좁고 덜컹거리는 절벽 길을 달린다. 차가 튀어오를 때마다 우리의 머리는 낮은 천장에 심하게 부딪혔다. 이런 시달림에 반해 티베트 말, 걀모 누추(Gylmo Nu Chu)에서 유래한 누쟝 계곡은 아름다움을 넘어서 신비롭기까지 하다. 내 표현으론 부족하여 다비드 넬의 <My Journy to Lhasa 1927>에서 들어보자.
‘누 계곡만큼 우아함과 장엄함이 완벽히 조화를 이룬 곳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우리는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 나갔다. 때때로 다채로운 모양의 크고 작은 바위들이 눈에 띄는, 인공적으로 가꾼 정원 같지만 자연의 산물 그 자체인 잔디밭을 지나쳤다. 그 중에는 초원 위에 비석처럼 서 있는 바위며, 한 면이 풀로 뒤덮인 바위들이 있었다. 또 푸른 나무들 사이로 살그머니 얼굴을 내밀고 있는 진기한 모양의 바위도 있었다. 골짜기의 모든 것이 수수께끼 같은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었다. 마치 오래 된 전설을 다룬 동화책에 그려져 있는 삽화 속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귓전에서 빛의 요정들이 속삭인다 해도,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사는 궁전이 눈앞에 펼쳐진다 해도 전혀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지프 운전사가 위험하여 더 가지 못하겠다고 생때를 쓴다. 그를 돌려보내야겠다고 판단을 할 즈음 뒤에서 트럭이 따라왔다. 놓칠세라 얼른 트럭의 짐칸에 배낭을 던지고 올라탔다. 나무 장대가 가로막힌 검문소를 지났다. 이제 행정구역상 시짱자치구(西藏自治區) 자율현(察隅縣) 차와롱진((察瓦龍鎭)으로 들어선 것이다.
밤이 깊도록 트럭은 전조등을 켜고 위험천만한 암벽을 깎아 만든 길을 달렸다. 치나통에서 들은 말과는 달리 공사 중인 길은 계속 연결되어졌다. 짐칸에 탄 우리는 추위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작은 다리를 건너고 도대체 어딘지 모를 곳에 차는 멈췄다. 먼지를 뒤집어쓴 몸으로 옛날 마방(馬房)으로 쓰였을 처마 밑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침낭에 기어 들어가자 말자 곯아떨어졌다.
2006년 10월18일, 새벽에 일어나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키 큰 선인장이 자라는 아래 절벽 밑에 티베트 승원인 곰파가 있고 주위에 초르텐과 마니석이 세월을 말해준다. 동쪽으로 계곡물이 쏟아져 나왔다. 순간 아침 찬 기운에 스치듯 소름이 돋았다. 다비드 넬이 난창강변에서 출발, 도카르 고개(Dokar La·4,487m)를 넘고 아벤(Aben·2,230m)을 거쳐 드디어 누쟝에 도착한 지점을 그녀는 라캉 라(Lhakang-ra)라고 했다. 바로 이곳임에 틀림없었다. 좁은 계곡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옆의 바위벽에는 많은 불상이 채색되어 있다. 다비드의 기록이다.
‘라캉라 강의 왼편 기슭으로 건너가니 주변 경관은 급작스레 달라졌다. 골짜기가 갑자기 좁아지고 가팔라졌다. 양쪽으로는 200m도 넘어 보이는 높고 어둠침침한 절벽이 우뚝 버티고 서 있어,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늘은 그 절벽들 틈새로 리본처럼 좁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풍경이 암울하고 황량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칙칙한 바위 위에 새겨져 있는 그림이나 조각 등이 자아내는 기묘한 분위기 때문인 듯했다.
바위 위에는 수백 명의 부처와 보살과 여러 신들 외에 예로부터 이름 높은 라마승들의 모습이 잔뜩 새겨져 있었는데, 모두가 한결같이 선정(禪定)에 잠긴 자세로 눈을 반쯤 뜨고 않아 내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움직임이 없는 그 조용하고 성스러운 군상들은 좁은 협곡 안에서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뭔가 독특한 정신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사이사이에는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는 문구나 신비스런 내용이 담긴 짧은 문구뿐만 아니라 철학적 논문의 일부가 새겨져 있기도 했다.’
다비드는 티베트 말을 읽고 말할 줄 알았다. 그 때의 모습은 사라지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든 불상의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진 상태였다.
- [중국히말라야 탐사2] 티벳 옛 풍습에서 원초적 본능 되찾다
- 매리설산 순례길 따라 류쿠~빙중루~치나통~추나니초 답사
올려 놓은것은 좋은 데 보기가 참 그렇다.
하여튼, 경치하나는 좋다.
티벳에는 좋은 풍습도 있네 ㅎㅎㅎㅎㅎ
남과 여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되는구나 ㅊㅊㅊㅊㅊ
한잔의 술로 ㅍㅊㅍㅊㅍㅊ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