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이른 시간에 숙소를 나섰다. 아직 넘어가지 않은 달이 서쪽 하늘에 걸려 있다. 아침 안개가 낮게 깔렸다.
어제 밤에 먹은 술도 미처 깨지 않은 아침. 음주산행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모처럼 제자와의 만남을 어찌 밋밋하게 지나치리오? 아침 산 공기는 차고 맑다.
건의령에서 피재로 향한 길은 편안했다. 발밑에 밟히는 낙엽의 감촉이 부드럽다.
피재(920m)는 태백과 삼척 하장면을 잇는 35번 국도에 위치한다. 피재는 일명 삼수령이라고 한다.. 낙동강, 한강, 오십천의 분수령을 이루는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매봉산을 오르다 만나게 되는 경계석. 낙동정맥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낙동정맥은 백암산, 주왕산, 운주산을 거치면서 부산 앞바다에 풍덩 빠질 때까지 장장 392.4km를 달린다.

기분좋게 조성된 대간길. 최근에 만든 모양이다. 산림을 깎아내고 조성된 고랭지 채소밭. 매봉산 능선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서있다.


당당히 바람을 맞이하고 선 너.
매끈하고 우아한 자태에서
어떤 기품도 느껴진다만
허공을 젓고 있는
너의 긴 팔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내 마음은
헛헛해진다.
행여 동해를 연모해 휘달려가는
바람을
감히 막아서려는 의도는
아닐테지?
그리고 보니 매봉산은 온통 고랭지 채소밭이다. 수확이 끝나 텅 빈 배추밭. 그냥 배추밭을 가로질러 내려간다. 눈 앞에 비단봉이 막아선다.
비단봉(1279m)에 오르니 오늘의 목적지인 두문동재(싸리재)가 멀리 보인다. 잠시후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 갈림길을 지나게 될 것이다. 이번 구간에는 유난히 근원과 출발점이 많은 것 같다. 이곳을 우리 인체에 비유한다면 척추 중에서도 핵심을 이루는 부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같다. 그렇다.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이 지척 아닌가?
이번 산행에 동참한 후배 사모님. 지칠 줄 모르는 체력도 놀랍지만 우리의 삭막한 발걸음에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 갈림길. 총연장 481.7km의 한강이 시작되는 지점 바로 위에 섰다. 매봉산과 금대봉 사이의 백두대간 기운이 모아져 저 아래 금대봉 골짜기 검룡소에서 용출되는 물줄기. 몇 년 전 검룡소에 섰을 때 온 몸을 휘감던 전율이 다시 전해진다. (검룡소는 자료 사진)

금대봉에 떨어진 빗물의 운명은 순식간에 갈린다. 북동쪽에 떨어진 물방울은 한강으로, 남쪽 기슭으로 떨어진 물방울은 낙동강으로 흘러내린다. 하지만 상관있으랴. 결국은 대양에서 한 몸으로 섞이게 되는 것을. 하지만 죽음으로 만나는 우리 인생이 각자 살아온 길은 제각각이듯, 저들의 운명 또한 우리의 삶의 방식과 다르지 않구나!
금대봉에서 두문동재로 향하는 길은 기분 좋게 정비되어 있다. 자원보호 때문인지 길 따라 줄을 쳐놓았는데 마치 어릴 적 기차놀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두문동재(1268m)에 내려선다. 하산길이 즐거워서였는지 별로 피곤하지 않다. 태백시와 고한을 잇는 38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는데, 최근에 터널이 개통되어 고개는 적막하다. 고개 정상에 있는 구멍가게에 들려 캔맥주를 들이킨다. 온몸이 저리도록 시려온다. 목표 지점에서의 성취감과 맥주의 상쾌함이 어우러지면 그것이 환희 아닌가? 더구나 금년도 목표인 태백산까지 한 구간을 남겨 놓은 마무리여서 마음이 더 좋다.

일명 싸리재라고도 부르는 두문동재는 망한 고려의 유신들이 이곳에 와서 두문불출하며 살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오늘 출발한 ‘건의령’도 그렇고, <정선 아리랑>의 기원도 고려 유신의 은둔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흥미로운 추론이 가능하다.
삼척은(태백도 원래는 삼척이었음)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이라는 역사의 종료와 시작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지역이며,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로서 그 근원적 힘들이 모이고 쌓여 다음 목적지인 민족의 영산 태백산의 정기로 승화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멀리 함백산과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바라본다. 설렘 때문인지 가야 할 먼 길이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08-01-07 15:11:34 동기칼럼/수필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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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사나 원효대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