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유치환, 깃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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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것이든 저것이든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왜 깃발의 시작이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어야 했는가.
어찌하여 이 땅에는 숱한 세월이 지나서도 또렷한 외침이 아닌
소리 없는 아우성만이 차고 넘치었는가.
깃발을 든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깃발을 들었다는 것은 무리 중에서 소리를 내며 방향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깃발을 들었다는 것은 농축된 경륜과 지혜를 가진 자가 깊은 고뇌와 숙고로
방향을 잡고 대중을 이끌겠다는 거룩한 몸짓이다.
애굽왕의 박해를 피해 홍해를 건너는 모세처럼 피와 노력, 눈물과 땀을 이야기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처칠처럼 말이다.
농축된 경륜과 지혜를 가졌다면 소리없는 아우성도 네 편 내 편도 없다.
최선과 차선이 있고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이 있을 뿐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
차에 탄 사람들, 거리를 분주히 걷는 사람들 표정은 여느 날과 별다른 변화가 없다.
어제까지 같은 계층,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다르게 뒤섞여있을 때는
분노와 얼굴을 붉히기까지 소리없는 아우성이 있었다.
나와 같음에 안도하고 나와 다름에 다름이 아닌 틀렸다는 지탄과 분노를 던지고 싶던,
가리키는 방향도 없으면서 너도 나도 깃발을 들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던지.
차 문이 열리고 꽃바구니에 꽃다발까지 든 노인이 택시 뒷자리에 앉는다.
이른 아침인데 꽃 배달을 나가는 모습이었고 꽃다발 하나를 받아들었을 때,
장미꽃 향기가 몸 안으로 스민다.
펼쳐 든 지면을 보고 ‘차이가 얼마였는지? 나에게 넌지시 묻는다.
“연세도 있으신 것 같은데 배달가시는 거세요?”
일흔이 넘었다는, 교직에 근무했다는 그 분은
“전후 그 시절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었어요. 다들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이제 할 일이 있는데도 맘에 들지 않는다고 놀고 있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아요.
편하게 살겠다고 남을 속이는 일에 끼어든 사람들도 많고,
밥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서 그런 것 같아요.
열심이 살아야 하는데 말이어요.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어서 참 좋은데”
미래는 당연히 불확실한 것이지만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던 걸음은
이제 어리석음처럼 뒤를 돌아다보고 있다.
얼마만큼이든 어려웠더라도 밥의 소중함을 가진 세대들은
이제 축복받은 이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 불평하고 불만을 드러내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견디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밥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는지 모르는 세대들,
나의 아들딸들에게 이제 그 노인이 말하던 밥의 의미를 이야기해줄 줄거리는 있는가.
저급하고 유치하더라도 과거를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공정함은 다음으로 파이를 부풀릴 동력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견디고 치고 나가는 힘을 주어야 한다.
잠시 노인의 꽃다발을 품었던 차 안에는 장미꽃향기로 배어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