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것 (연재 28회)

감동글

내가 사랑하는 것 (연재 28회)

현중재 2 73
야, 온다 온다. 진희야 저기 오는 게 달수씨가 맞지. 얘 얘 달수씨 멋지다 ...진희 넌 좋겠다.”

등산객 차림을 한 세 여자와 달수는 울산바위로 오르는 계곡의 물가에 앉았다.
그들은 진희가 싸온 김밥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며 말이 없다.
하루 종일 들어도 지칠 것 같지 않는 계곡의 물소리가 그들의 어색함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달수는 그녀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지, 왜 면회를 오는데 친구를 2명이나 거느리고 나타났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슴에 하릴없이 입안에 집어넣은 김밥에 목이 메여 물을 찾았다.
진희가 킨사이다를 달수에게 내밀었다.
‘칠성도 아니고 맛 없는 킨사이다?’ 달수는 어릴 적 왜 "킹"도 아니고 "킨" 이냐고 엄마에게 물었으나 대답을 듣지 못한,
이름부터 맘에 들지 않는 킨 사이다를 마시면서 그녀에게는 풍겨나오는 자신과 다른 냄새를 맡았다.
어쨌거나 부대를 떠나 계곡에서 김밥을 먹고 사이다를 마시니 마치 초등학교때 소풍을 온 것 같은 가볍고도 명랑한 분위기다.

“ 달수씨, 글을 참 잘 쓰는 것 같아요”

진희의 친구 옥경이가 어색함을 깨려는 대화를 먼저 시도했다.
진희가 달수의 편지를 친구들에게 보여준 모양이다.
달수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해 어디선가 읽은 구절이지 창작시가 아니라고 하려다 그냥 함구하고 미소를 지었다.

“ 어떻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어요?”

이번에는 진희의 친구 경숙이 물었다. 달수는 "내참 이거 누가 누굴 면회 온거야"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달수는 그렇게 무례하지도 용감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굵은 검정테 안경을 쓴 모범생처럼 경숙의 질문에 정답을 했다.

“ 그냥 옛날에 읽은 책에서 생각나는 부분을 제 방식으로 포장하고 다듬는 거죠 뭐”

그러면서도 달수는 진희의 친구들에게 면회를 같이 오게 된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진희가 면회를 혼자 왔으면 싶었다는 것으로 오해,
아니 진심이 들킬까봐 그러지도 못했다.
달수는 그냥 속으로 ‘무슨 사연이 있겠지’ 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진희는 달수가 보고 싶은데 수줍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하루를 넘기는 여행을 허가하지 않는 부모님에게 중학교 때부터 절친한 친구와의 여행이라는 것을 사진으로 증명해야만 했다.
진희는 이렇게 고지식할 정도로 답답한 구석이 있었다.
이거다 싶으면 호탕하고 밀어붙이는 성격의 달수는 매사에 소심하고 남의 시선을 필요이상으로 의식하는
진희가 어쩐지 자신과 걸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찌 되었건 그 소심함이 조신한 여성스러움으로 작용을 하여 참한 여성미를 풍겼다.

그 이후 진희는 몇 번 더 달수를 찾았다.
그리고 달수도 수연을 만나기 전까지는 휴가 나갈 때마다 진희와 시간을 같이했고 밤새 시간을 같이 보내는 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나 달수는 부대에 복귀하여 일상에 빠지면 곧 그녀를 잊어버렸다.
글쎄 뭐랄까 좋은 여자인 것은 분명한데 답답함과 지루함이 느껴졌다.
그녀가 너무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 달수의 그녀에 대한 불만이라면 불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으니 불평도 할 수 없었다.
달수는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가 분명하고, 화가 나면 왜 화가 났는지 명확한 이유를 들어 분노를 표시하고 기쁘면 환호하는 타입인데 그녀는 정 반대였다. 도대체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가 뭔가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성격 자체가 그러한 것 같았다.

달수와 진희는 남들이 그렇듯 별반 다르지 않게 다투기도 하고, 연락을 끊고 버티다가 심심해서 연락하여 또 만나고… 그러면서 정을 쌓아갔다.
하루는 달수가 대학 선배 최문식에게 진희와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했다. 그러자 선배가 느닷없이 옛날 얘기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그가 취한 혀로 가볍게 한 말이, 일에 빠지면 빠질수록 더욱 외로움에 빠지게 되는 달수에게 육중하게 들렸다.

“ 내가 어렸을 때 사과나무 서리하다 주인에게 들켜 잡혔어.
무릎을 꿇고 발이 되도록 싹싹 비니까, 그 주인이 자기 과수원에서 제일 큰 사과를 가져오면 용서해주겠다는 거야,
그런데 이 사과를 따면 저 사과나무에 있는 게 더 크게 보이고 저 사과를 따면 이쪽 사과 나무에 있는 것이 더 커보이고…
이거다 싶으면 잡는거야. 개낀 도낀이야. 꺼억~”

남자는 심심해서 결혼하고 여자는 호기심에 하였다가 둘 다 실망한다고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던가.
그래서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라지만 달수는 그 차고 컴컴한 무덤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어머니가 삶의 기준이고 살아가는 이유이며 희망이었던 달수는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부와 명예를 가진다 해도 어머니에게 보여드리지 못하면 의미가 없었다. 달수는 외로움과 허탈함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나 심심하다고 외롭다고 하여 결혼이 맘에 안들면 들었다 놓았다 하는 돌처럼 쉽게 내 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되새길수록 달수의 생각은 단순해졌다.
은행나무는 반드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나무와 짝을 이룬다고 하였다.
지금 가장 가까히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니 크게 망설일 것이 없었다.
달수는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장소에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자신에게 어울리고 필요한 사람이라고 결정을 내렸다.

어떤 이는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으로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같이 걷고,
어떤 이는 흔들리는 사랑에 한없이 고통받고 덕수궁 돌담 길에 사랑의 상처로 지친 다리를 끌면서 흐느낀다 하지만
달수와 진희는 그렇게 스므드하게 백년가약을 맺었고 적어도 달수가 희정에게 전화를 거는 순간까지는 무미건조하지만 비교적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다.
달수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지 아니면 잡념을 떨쳐내려는 것인지 고개를 흔들어 지금까지의 생각을 털어내며 벌떡 일어서 공중전화로 향했다.
달수는 학원 교무실 직원을 통해 희정이 동찬의 아내라는 것 이외에 서울대 불문학과 교수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후로 달수는 잃어버린 것 없는데도 뭔가를 빠뜨린 것 같은 형언할 수 없는 허전함에 버둥거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Comments

정진앙
이 글이 계속 되는겨? 오~메~다음편이 기다려진요! 빨리 올려주세요!
임우순
긴 장편소설이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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