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흑싸리 껍데기

감동글

사월 흑싸리 껍데기

현중재 5 126
흑싸리 껍데기
내가 택시를 한지도 벌써 1년이 다가온다. 올 11월 17일 이면 만1년을 채운다.
망설이다 망설이다 잡은 핸들이다. 처음엔 그렇게 어색하던 직업이었건만
지금은 어느 정도 몸에 밴 티가 난다. 그래서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란 표현이 맞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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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교대자와 차를 주고받을 때 둘이서 일정한 장소에 갖다 놓으면 자기가 일할 시간에 맞추어 나가서 차를 갖고 시작을 하면 된다. 그런데 얼마 전 오후반이 돼서 낮 11시에 나가 차가 있는 곳으로 가던 중 나는 길가에서 우연히 화투 한 장을 주었다. 팔광도 삼광도 아니다. 격조 있는 이월 매조나 사월 열자리도 아니다. 물론 십이월 비피처럼 화려한 놈도 아니다. 껍데기다. 껍데기 중에서도 사월 껍데기다. 그래도 손에 쥐고보니 손안에 딱 맞는다. 볼수록 그림에서 신선한 바람이 분다.
 

쥐고 보니 욕심을 부릴 일도 아니다. 띠라면 잠깐 욕심도 부려 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게 오히려 마음에 든다. 팔광이나 똥광을 주웠다면 나름대로 헛꿈을 한번 꾸었겠다. 내 앞에 놓인 오늘의 패를 쭉 펼쳐 보며 혹여 내 손에 들어올 것과 나갈 것을 계산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월 흑싸리 껍데기는 나를 자극하지 않는다. 암만 봐도 세속적이지 않다. 그 안에는 권력과 부귀영화가 없다. 오히려 욕망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무욕의 기쁨에 젖어 들게 한다. 바라볼수록 적요(寂寥)의 매력이 있다. 그런 점에서 사월 흑싸리 껍데기는 피 끓는 청년이 쥐어야 할 패가 아니다. 사월 껍데기는 팔팔한 기운이 많이 꺾인 패다. 열정과 패배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인생의 쓴맛을 깊이 느낀 오십 대에게나 맞는 패이다. 오십 대도,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후반에 들어선 시람의 것이다.
 

볼수록 사월의 흑싸리 껍데기는 여백이 있다. 지난날 열정의 잔해와 잔영마져 아득하게 사라진, 매우 초연한 여백이다. 인생을 다 알아 버린 서늘한 선사의 기운이 감돈다. 사월 껍데기의 풍경은 사월이 아니라 엄혹한 삼동 끝에 마주 선 일월쯤이다. 서리 내린 뒤, 빈 벌판에 홀로 서 있어도 서럽게 느껴지지 않는, 차라리 준엄한 풍경이다. 비록 사월 껍데기에서 한기가 느껴진다 하나 맑은 소리가 있다. 절벽 밑을 흐르는 벼랑 물소리가 울려 난다. 준봉에서 이제는 아래를 향하여 내려설 줄 아는, 남보다 자기 자신에게 더욱 지엄한 물소리가 냉랭히 들린다.
 

사월 껍데기. 그 껍데기라는 말 때문일까. 살아온 인생이 허전하게 느껴진다. 마치 알맹이를 잃어버린 소라 껍데기의 허망함이 있다. 그래도 고도리를 하거나 쿠사를 할 기회는 아직 있다. 그게 어렵다면 피박을 쓰기 전에 껍데기를 던져 피를 챙겨라. 뒤집을 기회는 있다. 판이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牛步
Jose Feliciano

 

Comments

임우순
아주 감동적인글이네,,, 인생도 껍데기면 어떤가? 알멩이를 감싸주는 역할도 중요하지....좋은 글 음악 대단히 감사합니다.....
최해원
감동글/좋은글 정말 오랜만에 들르다보니 한동안 우보를 잊고 있었는것같아 미안하네 !!
핸들 잡은지가 일년이 되었는데도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야 ~~~~ 무심했음을 용서하게 !!
우연히 땅에 떨어진 화투장속에 이렇게 엄청난 인생철학이 담겨져 있다니 ~~~
그걸 캐내는 자넨 정말 문학적 천부의 소질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누먼 ~~~~
안전운행하고 더 많은 인생살이 현장을 목격하면서 더 좋은 글들을 남겨 주게나 ~~~~~~
뱃살쫌 빠졌냐 ??
혹시 핸들에 닺지나 않는지 ㅋㅋㅋㅋㅋ
조주현
역시 우보!! 필력이 대단허이-----. 한동안 글을 볼 수 없어 궁금했는데 바빴구랴. 행운을------비네.
이종섭
지금도 몇번을 읽어본다....
우리 모두 힘내자!!!!!!!!^^
 
최종왕
맛있는 글
가슴에 쩌억 쩍 붙는 좋은글 피가되고 살이되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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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2 기타 쌍호 김홍배장군 부인 그레이스 최(천숙)의 글 입니다. 댓글10 문순만 04.18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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