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번호표
우리는 요즘 어디를 가거나 번호표를 뽑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다.
의정부에서 하동촌길 초입에 낙지 집이 하나 생겼다. 간판은 착한 낙지!!
예전에 무교동에서 낙지를 먹던 기억에 우연하게 그 집에 들르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꽤나 많고 음식 맛도 그런대로 좋았다, 즉 맛있게 매운맛 땀좀 흘리는 맛 뭐, 그런 것...
어느날 다시 그 맛을 보러 갔는데 사람들이 끔찍하게 많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 손에 조그만 종이 한 장씩 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더니 실내 출입구에
은행에서나 보는 번호대기표를 뽑는 기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는 은행, 관공서, 병원에서나 볼 수 있는 대기표를 음식점에서도 볼 수가 있는 이제는
아주 자연스런 사회 현상이 되었다.
나는 이런 장소에 가면 번호표을 뽑아 들고 대기 의자에 앉으면 전광판을 바라보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다. 한 눈을 팔거나 책에 열중했다가는 내 차례를 놓칠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그것을
응시하게 한다. 사실 차례를 놓친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앞사람의 볼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창구로 가서 죄송한데요, 제 번호표가 지나갔어요, 라고 하면 될 일인데
애초 그럴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번호표를 뽑은 사람은 의무적으로 전광판을 보고, 데스크에서 나오는 번호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인 시간은 느리고 지루하게 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기다림은 끝이 있다는 것이다. 나보다 먼저 번호표를 뽑은 몇 명의 사람
들이 돌아가고 나면, 나의 차례가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삶의 번호표를 받았던가?
내 삶은 나의 번호표를 가지고 있을까? 나는 올바른 곳에서 올바른 줄을 서고 있는 것일까?
마침내 나의 차례가 와서 번호표를 내밀었는데, 미안합니다, 저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가
없어요, 다른 창구로 가셔야 하는데요. 라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닐까?
1254번이 찍힌 번호표를 들고 전광판의 숫자가 바뀌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이 기다림이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끝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한다.
牛步


우보 현중재 작가 신묘년에도 건강하기를 ㅠㅠㅠㅠㅠㅠ
우리는 항상 경쟁속에 노출되어 경쟁하며 삽니다.
어디를 가든 순서가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
세상의 줄을 서며,
기다림의 미약을 생각하며 사는 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