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별....

감동글

인생 이별....

현중재 3 46
 

인생 이별 연습 <누구던 한번은 경험할 우리들...> 50대 가장이 겪었던 일을 단편으로 ......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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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건강진단 위해 들렸던 S의료원 건강의학센터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크게 걱정할 것은 아니고 가슴 CT촬영 결과

 뭔가 보이니 바쁘지 않으면 오후 2시까지 나와 설명을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찜찜하지만 크게 걱정할 게 아니라는데 뭐 대수로운 게 있으려고?
전화까지 한 상황이고 보면 시간 맞춰 가야겠지만 밀린 일의 한두 가지가 아닌데 가고 싶지 않다. 허지만 건강진단서를 

직접 확인하는 

상황이고 보니 가지 않을 수도 없다. 

다른 일을 하고있는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은 일의 일찍 끝나 남대문시장에 들을 작정인데 오랜만에 오붓하게

외식이나 하자는 제의였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무슨 일때문이다, 건강진단이다, 뭐뭐다 해서 아내와 마지막 외식이 언제였던지 가물가물하다.
남대문시장은 그런 나를 일깨우기 위한 아내의 핑계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너무도 바쁘게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일로 너무도 흥분했었던 같다.
레스트랑에 마주 앉은 아내는 의료원 전화 탓으로 내 얼굴이 어두웠던지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다. 의료원 전화 이야기를 하면서

 CT촬영 이야기는 슬쩍 빼고 넘긴다.
"크게 걱정할 건 아니라는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설마?"
불안으로 어두워진 아내는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면담을 마치는 대로 전화해달라고 신신당부한다.
"물론이지!"
일부러 밝게 대답한다.

약속 시간에 병원에 도착하니 기다리고 있던 의사가 서류를 넘기며 검사결과을 말한다.
"다른 곳은 깨끗한데 기관지에서 양쪽 폐로 갈라지는 부위에 임파선이 부어 있군요. 크기는 가로 2cm, 세로 1.8cm입니다."
"어떡해야 하나요?"
엉겁결에 뱉어냈지만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의사는 그걸 알리고 해결하자고 부른 것이 아닌가?
"별일은 아닐 겁니다. 호흡기내과에 3시로 외래예약을 해놓았으니 가 보십시오!"
일어서는데 등골이 서늘해지며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무게의 불안이 어깨를 짓누른다. 예상보다 문제가 훨씬 심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이다 

밖으로 나오자 간호사가 '영양 면담과 스포츠의학 면담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건성으로 흘리며

정원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 습관처럼 담배를 빼어 문다.

임파선이 왜 부었지? 문득 담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에 든 담배를 끄며 아내가 당부한 전화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찾다보니

어느 사이엔가 담배는 다시 입에 꽂혀 있다. 핸드폰은 차에 두고 온 모양이다. 저만치 공중전화부스가 보여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아내에게 전할 말을 정리해보지만 정리가 되지 않았다. 전화는 무시하기로 한다.
어느 사이엔가 시계는 3시 5분전이다.
벤치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호흡기 내과로 찾아간다.

밀린 환자들 때문에 20여분 남짓 기다려서야 담당의사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이미 컴퓨터 화면에 CT사진을 띄워놓고 이리저리 화면을 바꾸며 살피던 담당의사는 신음 같은 탄성을 내지른다.

"아, 이것 때문에 이리로 보낸 거군요. 보자……부은 게 아니네, 약 2cm?"
순간 어두운 그림자가 확연히 그의 얼굴에 드리워지지만 나를 의식했는지 애써 표정을 바꾸며 대수롭잖다는 듯 묻는다.
"하루에 담배를 얼마나 피우시죠?"
"글쎄요, 한 갑은 약간 못 되게……담배 때문입니까?"
의사는 화면만 들여다보며 가타부타 대꾸가 없다. 급한 마음에 다시 물었다.
"부은 게 아니라면……그럼 악성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글쎄요, 드문 경우이기는 한데……."

말끝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의사는 화면을 바꾼다.
"악성이라면 가능성이 없다는 뜻입니까?"
"가능성이라……3대 7……4대 6?"

무거운 둔기가 뒤통수를 세차게 때리고 지나간 것처럼 주위의 사물들이 모두 아득해진다. "임파선이 아주 고약한 부위라서

증상이 없더라도 이 정도까지 진전된 걸로 봐서는……악성이라면 사회생활을 포기하시고 투병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그, 그렇군요!"
그렇다니, 뭐가 그렇단 말인가. 그것은 멀어지는 생명을 잡으려는 안간힘이었을 뿐 일상의 대화가 아니었다.
"우선 조직검사부터 해봐야 하니까 입원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당장 조치할 테니 서둘러 주십시오!"
의사는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뭔가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의 말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 이런 게 처음부터 내 인생에 준비되어 있었어, 언젠가는 부딪칠 줄 알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외면하고 싶었고 피하고 싶었던

그 것이 하필이면 내 삶의 반 이상을 투자하며 기다려 왔던 목표가 이루어지려는 순간에 꼭 이런 방식으로 마주쳐야 했단 말인가.

주차장의 차에 올라앉으니 남아있던 핸드폰에 아내의 음성 메시지가 담겨 있다. 걱정하는 줄 알면서 왜 이렇게 전화가
없느냐는 원망이다


내일 당장 입원해야 하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한단 말인가?

집으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사람들과 풍경들이 모두 낯설고 생경하기만 하다.
다시 한 번 병원에서 마주친 현실들을 복기해 본다.

나름대로 경험과 전문성에 자신감이 있어 보이던 의사는 신중함마저 엿보여 일단은 신뢰가 간다.

자신의 생각을 환자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숨길 줄 모르는 솔직함도 다소 젊어 보이는 나이 탓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3대 7……4대 6?'할 때는 진지하기보다는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 같았다. 솔직하기보다는 경망스러울 수도 있다는 의미인데,

인생을 경망스럽게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희망은 3대 7이나 4대 6이 아니라 7대 3, 6대 4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아무리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보려 하지만 '3대 7……4대 6'이란 무게는 결코 덜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난단 말인가?
영원을 살 것처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인연을 만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결정의 갈림길에서 양보 없는 고집으로

상대들은 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단 말인가. 


성년의 안된 아이들이 남들은 다 있는 아버지를 잃기엔 너무 어리지 않은가?

버릇 없는 아이 소리 들을까 봐 제대로

한 번 살갑게 안아주지도 못 했는데……아버지 없는 삶을 제대로 견뎌낼 수 있을까?
살아남은 아내는 내가 남겨놓은 짐까지 혼자 져야 한다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든 슬픔이리라……

 

친구들이 남편 이야기만 해도 빈 곁 때문에 눈물 흘리리라.
부모는 산에다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데 가장 큰 의지로 삼았던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님은 여생을 얼마나 버텨내실까.
아아, 아직도 나는 이별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데…… 

일터에 돌아와 밀린 일들을 처리한다.
퇴근 무렵에 함게일하는사람들에게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의 지시를 말씀드린다.
담담하려던 생각과 달리 감정이 억제되지 않고 얼굴에 비쳤던지 별일 아닐 거라는 위로와 걱정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약한 모습을 더 보이고 싶지 않아 서둘러 집으로 나섰지만... '마지막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 뒤돌아보아진다.
이 길, 이 복도, 이 계단을 다시 걸을 수 있을까.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했는지 모르는 굵은 비가 계속 내려 퇴근길은 엄청나게 밀린 차들로 모두 거북이 걸음이다.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삶을 이렇게 길 위에서 허비해야 한단 말인가.
억울함과 안타까움으로 바라보는 답답한 거리 풍경 너머로 다가오는 아내의 목소리.

수년 전부터 가장으로서의 책임론을 들먹이며 그렇게 담배 끊을 것을 요구했지만 아내의 요구가 강경하면 할수록

아내의 권고는 의도적으로 철저히 무시해 왔었다.
진즉에 아내의 말대로 금연했더라면 며칠 후에 갈린 두 길 가운데 어느 길을 가든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가족들에의

미안함은

지금보다는 훨씬 가벼울 텐데.

내집에 도착하자, 문을 열어준 아내는 불안을 애써 감추며 면담결과부터 묻는다.
"별 건 아닌데 정밀진단을 받아야 한다나 봐. 내일 입원하기로 했어!"
"뭐가 잘못되었는데?"
"글쎄, 잘 모르겠지만 CT촬영에 뭐가 보인다나 봐."
"심각해?"
외면하면서 대답한다.
"잘 모르겠어, 아 피곤하다!"
아내의 시선을 피해 안방에 들어와 누웠다.

눈물이 흐른다.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자기연민일까, 죽음이 두려워서? 그러나 죽음은 실감되지 않는다. 아직 이렇게 싱싱한데……

그렇다, 남은 사람들이 나로 입을 상처와 연민 때문일 것이다.
정말 미안하다. 하필이면 나 같은 인간을 남편으로, 아버지로 만났단 말인가.
삶이란 처음부터 좋아하는 것, 익숙한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준비된 이별로 향하여 가는 부단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쉰을 넘겼다면 적어도 한 달에 서너 번쯤은 이런 이별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를 했어야 마땅했는데……
흐르는 눈물 사이로 준비 없이 살아온 삶이 원망스럽다.
도대체 무얼 하다가 갑자기 막판에 몰려서야 그동안의 무신경, 무관심에 갈팡질팡 몸을 떨며 후회한단 말인가.

거실에 나가 보니 둘째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쓰러진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잠든 아이를 안고 방으로 가는데 쏟아지는 눈물이 아이의 얼굴에 떨어진다.
이 아이를 다시는 안아다 눕히는 것도……이게 마지막이란 말인가?

둘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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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30분.
"몇 시까지 병원 가야 해요?"
출근하던 아내가 묻는다.
"글쎄, 적당히 가면 되겠지, 뭐!"
무심을 가장한 채 대수롭잖게 대답한다.
"아빠, 왜 출근 안 해?"
"으응, 따로 볼 일이 있어서....."
애써 평범한 얼굴을 해보이며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내와 아이들이 나가고 텅빈 집의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가족과 둘러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이야기하고 떠들며 웃었던 거실, 아내의 손길이 묻어 있는 싱크대와 식탁, 안방의 옷장과 화장대,

 그리고 조그만 손길이 묻어나는 아이들 방의 책상과 침대, 흩어진 장난감들,
1년 전에 찍은 가족사진 속에서 행복한 우리 일가,
그래 이때는 행복했었지.
그러나 그들은 나를 거부한다. '당신은 우리를 남겨두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 차라리 빨리 나가!'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슬픔과 죄책감으로 거실 소파에 앉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병실이 세 시에 나니 그때까지 도착해 입원수속을 밟으란다.
시계를 보니 9시 30분, 2시에 출발한다면 아직 4시간 30분의 여유가 있다.
공황에 빠진 것일까?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 창밖 풍경에 눈을 주지만 머리에 들어오는 영상은 하얀 화면뿐이다.
보이고 들리는 건 문득문득 눈이 가는 시계와 초침소리뿐! 시간은 계곡의 급류처럼 빠르게 흘러간다.

마침내, 2시!
다시 한 번 집안을 둘러본다. 거부조차 귀찮은 듯 집안 풍경은 무표정이다.
아무도 배웅해주지 않는 집을 나서며 눈으로 나만의 이별 의식을 치른다.

그렇게 불만스러웠던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돌아온다면 그때도 현재의 내 가정, 현재의 내 위치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이 행복했던 과거와의 마지막 순간일까.

운전하며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다.
언젠가 그 날도 이런 기분이었는데 그 날이 언제였더라? ......맞아, 군대에 입대하던 그 날이 이런 기분이었어.

신호대기선에 와 멎는 옆차에는 차양 넓은 모자와 선글라스로 한껏 멋을 부린 일가족이 타고 있다. 이른 휴가를 떠나는 가족인가 보다.
견디기 힘든 충격과 절망의 깊은 수렁에 빠진 나를 두고 세상은 저희들끼리 무심하게 잘도 흘러간다.
차라리 한시라도 빨리 병원에 도착해 나와 같은 이유로 마지막 싸움을 하는 사람들 틈에 끼면 이런 소외감은 나마저 소외시킬지도

모르겠다.

입원수속을 마치고 호흡기내과 1853호 2인실로 올라간다.
외출에서 방금 돌아온 듯한 50대 초반의 남자가 환자복을 갈아입는 중이다.
"언제 입원하셨습니까?"
"오늘이 5일짼데 귀하가 그 침대 3번째 주인이시네요! 근데 왜 들어오셨수?"
"CT촬영에서 뭐가 나왔다고 해서......"
"저런 저런, 젊어 보이시는데....."
저 환자가 들어온 지 5일만에 내가 3번째 환자라면 나보다 앞서 침대를 거쳐간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내가 걸터앉아 있는 이 침대는 시체말로 재수 없는 침대는 아닐까.
"처음 병원에 들어오면 아주 불안하지만 2, 3일이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내 속을 읽기라도 한 듯 위로을 건넨다.

간호사가 오더니 포도당을 꽂아준다.
"오후 늦게 정밀CT촬영이 있으니까 금식하세요!"
"수술은 언제쯤?"
"모레쯤 할 것 같은데요. 오늘하고 내일은 일반검사를 해야 하니까요."

학교를 마친 아내가 병실에 도착했다.
환자복을 입고 포도당을 꽂은 나는 내가 보아도 영락없이 환자다.
그런 모습을 본 아내는 분명히 당황해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과장해서 이야기하지만 우습지도 않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포도당 병이 거의 비워져 갈 즈음에 담당 전문의가 회진을 돌았다. 5시였다.
말을 지나치게 아끼는 사람이다. 묻는 내가 미안할 지경이다. 아내가 뭔가 꼬치꼬치 물으며 따라간다.
잠시 후 돌아온 아내의 표정은 심각하다. 막연하던 불안이 구체적인 공포로 변한 모양이다.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억지로 웃으며 자위하지만 아내는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잠시 눈을 감고 있다 뜨니 지켜보는 아내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눈물을 닦으며 애써 피하는 아내. 아내는 나와 눈만 마주치면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줄줄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전염성이 강한 모양이다.
그런 아내를 보는 내 눈에서도 준비되지 않은 눈물이 흐른다.

아내가 돌아간 뒤 밤 10시, 본관 2층으로 가 정밀CT촬영을 했다. 특수물감을 혈관에 주입하여 몸 속으로 퍼져가는 모습을 촬영하면 훨씬 정교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세쨋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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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가 '금식 지시'를 전달한다.
지정의가 기왕에 시작한 검사이니 기관지 내시경도 검사할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오후 1시 30분,  본관 3층으로 가서 부분 마취를 하고 기관지 내시경을 했다.
마취를 하긴 했지만 코 속으로 들어간 호스가 목을 넘어가 속을 헤집어 놓으니 정신을 잃을 지경이다.

병실로 돌아오면서 왜 기관지 내시경까지 했을까 생각해본다.
임파선 부기의 원인을 다른 부위의 악성 종양 때문으로 판단한 것은 아닐까.
CT촬영으로 폐 자체는 일단 깨끗하다는 결과가 나왔으니 기관지에 뭔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임파선의 부기는 다른 부위의 종양 때문이거나 자체의 종양 때문이란 결론인데,

이런 검사를 거치는 것은 악성 쪽에 비중을 두고 발병의 진원지를 찾기 위한 것일 것이다.
헤어나기 힘든 절망감이 엄습해오며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간다.
그렇다, 그들은 나를 잠정적으로 암환자로 판정하고 진원지를 찾기 위하여 검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깊은 잠에 빠져 아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편할 것 같아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산책을 나간 옆 침대의 환자 보호자인 아주머니가 친지의 전화를 받으며 흐느낀다.

"그 OO병원 놈들이 아프다는 사람을 여덟 달 동안이나 잡아두면서 CT촬영 한 번 안 하고 정형외과, 소화기내과, 호흡기내과로 뺑뺑이 돌리더니

여기 와서 보니 폐암 말기래요.

이제는 늦어서 수술도 안 된다는데 어떡하면 좋아?

저 양반은 아직도 이런 사실조차 까맣게 몰라요. 자기는 멀쩡하다고 내일부터라도 사무실엘 나가겠다는데 어떻게 말해요?

막내가 중학교 3학년인데 우린 이제 어떻게 살아요......"
가슴 절절한 아주머니의 사연은 아내의 사연일 수도 있다.
우리 막내는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잠이 올 리 없다.


인생에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어둠이 있다는 걸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양지와 음지에 한발씩 딛고 선 삶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양지쪽만을 보며 밝은 얼굴로 그것이 내 인생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삶은 틈틈이 우리를 음지로 밀어 쓰러뜨리고 마침내는 그 음지에서 삶을 마치게 하는 것이다.

삶의 광장을 줄기차게 달리는 동안 어디에선가 무수히 많은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 많은 화살 가운데 어떤 화살 하나를 오늘 아니면 내일, 아니 1년 뒤나 아니면 10년 뒤에는 반드시

맞아야 한다는 걸 한 번도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아는 것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 아닌 수천 수백 명이 화살에 맞아 쓰러져 삶의 광장에서 밀려났거나 났다는 정도이다.

그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나만은 화살이 영원히 빗겨 갈 것이라고 믿었던 착각이 신비롭기만 하다.

단 한 번의 스침만으로도 영육을 음지로 쓰러뜨리는 그 무수한 화살을 어쩌면 그렇게 철저하게 외면하며 살아올 수 있었단 말인가.

삶을 위협하는 화살을 인식하고 준비했더라면 오늘 같은 날 훨씬 담담하고 성숙하게 삶을 정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기다리던 지정의의 오후 회진은 없었다.
음지로 밀려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운명이 어떤 종말을 준비해놓았는지 확인하는 절차 뿐이다.
저녁에 회사 동료들과 친척들이 문병왔다. 삶의 양지에 서있는 그들은 음지에 쓰러진 나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기정사실화하며 명랑하게 농담도 섞어 위로하려고 애쓴다.
그들의 그런 성원이 고마워 의연한 척하려 하지만 내가 서 있던 양지에 남아 있는 그들을 바라보는 1분 1분이 고통스럽기만 하다.

저 높은 곳에서 내 인생, 내 가정의 운명을 결정하려는 그 누군가가 정말 있단 말인가?


네쨋날.

+++++++++++++++++++++++++++


아침 7시, 오늘 첫 번째 수술대상자임을 간호사가 알린다.

수술조차 할 수 없는 옆의 환자에 비하면 아직도 나에겐 조그마한 행복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학교를 결근한 아내가 수술실로 향하는 동안 침대를 잡고 따라온다.
중앙수술실의 철문이 열리자 애써 웃음을 지으며 침대에 누워 있는 어깨를 감싸주는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이 여자의

상처를 아물게만 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양지에 아내를 남겨둔 채 철문은 닫힌다.

수술대로 옮겨진다.
“열 번만 심호흡을 하세요. 자, 하나 두울 세엣 네......”
다섯을 세지 못하고 아득히 깊은 그 어딘가로 끝없이 떨어지는데 그 어디쯤에서 아득히 먼 곳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계속 부르고 있다.

“일어나세요, 수술 끝났습니다!”
잠시 후 망막 위에 보이는 낯선 풍경들이 차차 익숙해지면서 회복실에 누워 있음을 깨닫는다.
여러 명의 간호사들이 부산하게 회복실을 오간다. 그 중 한 명이 다가와 미소짓는다.
“수술은 잘 되었답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몽롱한 내 의식은 얼른 판단하지 못한다.
10시 30분, 회복실에서 병실로 옮기는데 아내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긴다.
“수고했어요, 여보!”
아직 수술 결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표정이다.

11시 30분, 상태를 살피러 온 간호사에게 아내가 조심스럽게 수술 결과에 대해 들은 것이 없냐고 묻는다.
“글쎄요, 수술은 잘 된 것 같구요, 암은 아닌 것 같다고 하던데요.”
잠시 멍하니 간호사를 바라보던 아내가 화급하게 달려나가더니 30분이 채 넘지 않아 밝은 표정으로 돌아온다.
“수술하며 떼어낸 조직을 급속 냉동시켜 검사했는데 암세포는 나오지 않았대요!”
“?”
“정밀검사 결과는 2,3일 후에 나오지만 암은 아니래요!”
확신으로 환하게 밝아진 아내의 얼굴을 보면 눈을 감는다.
감사합니다.

아직도 저 위에 있는 누군가가 나를 양지쪽에 두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오후 4시, 병동 주치의와 레지던트, 병리사, 간호사를 대동하고 회진차 병실에 들어선 지정의가 밝은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들으셨죠,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오신 걸 축하드립니다!”
다시 확인하고 싶은 아내가 묻는다.
“정밀검사 결과는 내일모레쯤 나온다고 들었습니다만 간이검사의 정확성은 얼마나 되는지요, 선생님?”
“99.9퍼센트입니다!”
“그럼 임파선이 부은 건?”
“물혹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악성이 아닌 물혹이 생기는 경우는 정말 드문데 천만다행입니다.”
이제부터의 삶을 덤으로 치부해야 하는 것일까?

덤이라고 해도 나머지 내 인생임이 틀림없다. 이번 일을 교훈삼아 진실로 느끼고 감사할 줄 알고 나누고 연민할 줄 아는 삶을 살리라.

이번엔 비껴갔지만 여전히 화살은 날아올 것이고 내 발의 한쪽은 양지를 한쪽은 음지를 밟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게시물은 최관리자님에 의해 2010-03-31 20:52:15 감동글/좋은글에서 복사 됨]

Comments

최해원
읽고있는 동안에 줄곧 내가 저 주인공 인것같은 착각속에 헤메이며 읽었다네 !!
몇년전 대학병원 검진실에서 담배 피우신지 몇년 되십니까? 하기에 35년쯤 되는것 같다고 했더니
나이도 그렇고 Xㅡ rey 상으론 아무 이상은 없지만 혹시나 해서이니 CT촬영을 해 보는게 어떠냐기에
섬짓함을 느끼던차  교수왈 " CT상으로도 이상이 없으면 그래도 담배를 피시겠읍니까 ? " 하고 묻기에
그침없이 " 그럼요 ~~~~~ " 하고 답했더니 어이가 없는지 " 왠만 ~~ 하면 끈으십시요 !! 제가 도와 드리지요 하면서 약 처방을 해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
언제 정신이 번쩍 들란지 ??? ㅉㅉㅉㅉ  아직도 펴데고 있으니 ~~~~
엄기준
눈이 아른거려 복사해서 읽었습니다~~~
복사본(A4용지 가로로 10매)을 주위 동료교사들에게 회람토록 하였습니다 .
감동적인 좋은글 감사합니다~~~
임우순
미리미리 챙겨야 큰화를 면 할 수가 있지...좋은 글 실로 고마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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