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의 풍경 이란 한편의 영화를 보고....
해를 거듭할수록 시간에 대한 감각도 없고 계획이나 희망에 대한 설렘도 없다.
2009년도 2010년도 비슷한 생활 주기곡선이 있을 거라는 걸 직감한다.
어떠한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독서를 취미로 삼고 있는데
내 나이쯤 되면 책을 통해 정체성이나 가치관을 정립하기 보다는 오히려 가치관 혼란을 가져온다.
삶의 반경은 책이 말하는 정의와는 거리가 멀고 편안함이 보장되면
적당히 타협하는 현실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지만 계속 움직이고 있는" 그런 적당한 삶이 올해도 이어질 것이다.
한 친구가 올해 목표가 뭐냐고 물어서 객관적으로 그럴듯한 사항을 얼렁뚱땅 만들어내서
입 밖으로 말하고, 정말 내가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궁금했다.
목표를 이루려면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내게 그런 다부진 의지의 불꽃이 남아있는지 의문이다.
문득 정신차려보니 1월은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다.
내가 따라가든 말든 상관치 않고 시간은 여전히 빠르게 흐르고 있다.
이런 시간 속에 나는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영화 하나를 보게 되었다.
안개 속의 풍경(1988)은 테오 앙겔로풀로스(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1월에 보기에 근사하면서도 어두운 영화다.
줄거리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아빠 우리는 낙엽처럼 여행을 하고 있어요. 남매는 기차를 타면 미지의 아빠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 한다
'불라'와 '알렉산더'는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빠를 찾아 떠난다.
언젠가 엄마가 말해준 아빠는 독일에 계시다 말만 믿고 독일 행 기차에 무임승차를 한다.
영화는 초반부터 남매에게 닥칠 운명을 예견이라도 하듯
슬프도록 아름다운 선율의 연주곡을 간간히 들려준다.
그 선율은 관객의 마음 마저 흔들기 시작한다.
기차표가 없는 남매는 결국 경찰의 손에 이끌려 삼촌 공장을 찾아가지만,
누이가 낳은 사생아를 책임질 수 없다는 삼촌의 말을 들은 '불라(누이)"는 거짓말이라 외치며
그 곳을 뛰쳐나온다.
하지만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다시 경찰서 뿐, 하늘은 아직 이 아이들의 편인가?
그 시간 하늘에서 탐스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경찰들은 눈이 온다는 말만 되뇌며 뒷걸음치며 경찰서를 빠져나온다.
온 세상의 시간은 멈춰버린 듯.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두 남매만이 살아 움직일 뿐이다.
동생 '알렉산더'의 꿈에 나타난 아빠는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그 그리움을 향해 남매는 아빠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아빠가 살고계신 독일을 향해 걷고 또 걸어가고 있다.
지친 남매 앞에 나타난 남자 '오라스테스'는 남매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군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그들을 책임지려 한다.
가난한 그리스 유랑극단의 한 멤버였던 그는 공연이 취소된 날 다른 스폰서를 찾으러 떠난다.
그날 남매는 빗속을 헤매다 트럭 운전사를 만난다.
그는 남매를 데리고 카페로 들어가 삼인분의 식사를 주문한다.
그리고 새로운 카페 여종원을 농락하려다 오히려 봉변을 당하게 된다.
그는 그 앙갚음으로 작은 소녀 '볼라"를 강간하고 만다.
세상에 상처를 받으면서 순리마냥 성숙해지는 누나,
그리고 찾아온 첫사랑, 불라의 마음을 흔든 오라스테스가 동성애자임을 알고
그녀는 무작정 동생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선다.
남매의 뒤를 쫓아 온 오라스테스의 품에 안겨 한참을 흐느끼다
불라는 다시 안렉산더의 손을 잡고 길을 떠난다.
강 건너엔 그들의 희망인 독일이 있다.
안개가 지독하게 낀 그 강을 배를 타고 건너는 순간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린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서서히 드러나는 형체, 동생 알렉산더의 모습이다.
그리고 누나 불라의 모습과 저 멀리 보이는 한그루의 나무를 보며 남매는 "태초에 어둠이 있었어,
그 후에 빛이 만들어졌구!",란 말을 되풀이 한다.
남매는 한 그루의 나무를 오래도록 품고 있다. 관객들의 발소리가 끝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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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 멀리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두터운 안개를 뚫고 힘겹게 남매는 한발씩 내딛는다.
아빠가 있을 거라는 독일을 향해. 그것은 그들의 희망이기도 하겠지.....
안개 속에 비도 내리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차가운 어른,
도움에는 공짜란 없다는 나쁜 어른 세계를 보고 경험하지만 걸음을 멈출 수 없다.
처음, 아빠를 찾아 떠난 길은 이제 짙은 안개에 갇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도 걸음을 멈출 수 없다.
계속 가다보니 안개 너머에 도착했다.
안개 뒤에 목적지처럼 보였던 한 그루의 나무는 반갑지만 종착지가 아니라 또 다른 출발점이다.
나무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며 나무 뒤에는 여전히 두터운 안개가 자리 잡고 있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차가운 대기 속을 달리는 기차에 쭈그리고 앉아 잠을 자거나
적막한 차도에 덩그러니 남겨진 어린 남매의 모습은,
어른 세계에 있는 희박한 희망을 비춘다.
그들이 자라도 많은 절망을 이겨 내야하고 이따금의 선과 환희를 등대삼아 전진해야하는 인생살이.
감독의 정치적 우의가 어떻든, 녹록치않은 삶에 대한 성찰이 담긴 영화다.
삶에 대한 즐거움을 기록하는 것과 절망을 기록한 것 중 희망을 주는 건 뭘까.
가슴속에 밀려오는 스산함과 삶에 대한 비애 그리고
우리가 자라면서 배워가는 그런 아픔과 잃어가는 순수함
이런 것들을 그림 같은 정적이고 긴 화면 속에 담아내고 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이 전하려는 그 의미를 아직 다 알진 못한다.
그럼에도 난 한동안 이 영화를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것이다.
혼자서 고통을 참아내려는 어린숙녀 불라의 눈빛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린다.
牛 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