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힌 세월을 잔에따라, 술처럼 마시다.

감동글

묵힌 세월을 잔에따라, 술처럼 마시다.

현중재 5 49
"예전에 어느 선술집에서 옆자리에 주인과 어느여인네의 대화 속에의 말들이 귓전을 떠나지 않아
 한번 단편으로 엮어보았습니다. 서로가 주고 받는 말속의 구구절절함이 가슴과 뱃속에서 터져
 나오는 세월의 탄식이 우리네 서민들의 일상이기도 할것 같고 해서...................." 
 
영춘(迎春) 뙤약볕에 끓는 가마솥처럼
항상 목말라 하는 그녀.
숨막힘이 목끝까지 차올라
메기처럼 모가지가 퉁퉁 부어있는 그녀를 보는 날은
어떨결에 읍조리는 한소절 뿐인 노래가사가
감기끝 미열처럼 그만 내 입가에 달라 붙고 만다.

'아~ 세월아~ 빨리가라~ 빨리..'

오늘도, 술상 너머 바라본 그녀의 얼굴은
끓는 가마솥 안을 들여다 보는 뺑덕어미다.
거기다,
쓴잔 목구멍으로 달찍하게 넘기고 나선
붉어진 양볼을 아래로 아래로 더욱 가라앉히곤
희망도, 하다못해 내일에 대한 계획을 모두다 털어버린 얼굴을
만들어낸다.
나조차도 바라보기가 숨가프다.

찌게더미 속에 숟가락 깊이 찔러 넣어 휘적이다
생각난김에 자신에게 묻듯,
가래침 밷아내듯 내지르는 한마디가 주저없다.

"야! 씨팔, 내 팔짜는 왜 이런거니?"

"엄살 떨지마, 이년아! 바람난 니서방 중병 걸려서라도,
니 옆에서 너만 의지하며 달라 붙어 있으니 좋아서 환장하것냐?"

"야이 썅년아! 말이면 단줄아니? 실컷 딴년이랑 놀아나다가,
암 걸렸다고 나한테 와서 빌붙어 나만 달달 볶는 놈이 사람이니? 응?"

실핏줄이 터진 노른자 눈을 위로 치뜨며,
꽥! 질러대는 소리가, 주점 안 사람들의 시선을 졸라 맨다.
알콜중독으로 인한 경련은,
찰랑거리며 라도 안으로 모이려는 것들을 금새 한두방울 떨궈내곤,
쓴약 털어넣듯 입안으로 냉큼 부어넣는다.

"미친년.. 니 꼴을 보니, 경수아부지 보다 니가 더 일찍 죽겄다, 이년아!
술좀 작작 쳐먹어! 니 눈깔이 겨란 노른자다 이년아!"

친구년을 향해 악다구니를 퍼부으면서도 잔 부딪히며 비워내길 재촉하는
나도 차암.. 모지락스런년 이다.

열일곱에 신랑을 만나 열여덟에 살림을 차리고,
일찌거니 내질러 놓은 자식 둘 이 장성을 해도, 늘상 이어지는 근심은
주렁주렁 엮어 놓은 곶감 같아서 야금야금 떼어 먹는 남편과 자식이
웬수 같다는, 이제 스므번의 결혼 기념일을 바라보는 그녀.
'문지방 들어서면 내 서방, 나서면 남의 서방'이라는 그녀의 지론을
충실히 이행하는 그 남편은, 주말이면 그녀의 집 문지방을 들어섰다가,
월요일이면 단내 풍겨오는 애첩한테로 콧구멍 잔뜩 치켜 세우곤,
똥끝이 탄 엉덩이를 조강지처 코끝에 들이민다.
말이 주말부부라지만, 그저 말뿐인 주말부부라고,
하숙생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고 말은 하지만
갈수록 그 남편을 향해 기린목이 되었었다.

지금은, 마흔이 갓 넘어 암이라는 혹덩이를 달고 문지방에 들어선 그 남편은
'바람따라 문지방 넘은 남편은, 늙고 병들면 다시 조강지처 찾는다'는
그녀의 또다른 지론을 더더욱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인간.. 죽으면 얼마 나올까, 보험료 계산하는게 낙이었는데
지금은 죽을병 걸렸다고 나한테 비비고 있는걸 보니 불쌍하기두 하드라.
불쌍하다가도 승질나구, 불쌍하다가도 또 승질나구.. 그렇다구 아픈인간
두둘겨 패줄수도 없구.."

반쯤 비어버린 술잔에 탄식처럼 이죽거리는 입놀림을 채워
또 홀짝 들이키는 그녀.
갑자기 생각난듯 표정을 바꾸어 피식! 웃는다.

"잼난 얘기 해주까?"

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참으로 그녀 다운 웃지 못할 이야기다.
중학교 다니는 큰아들 녀석이, 다음날이 개학식이라며
늦어도 아침 7시 40분까지 꼬옥 깨워달라고 부탁하는 아들에게 몇번이고
그러겠노라! 다짐을 해주고,
늦은밤에 친구가하는 카페에 들러 새벽까지 술을 머리 꼭지까지 채워가지고
귀가한 그녀는, 아들과의 약속때문에 몇시간 눈도 못붙이고 일어나
아들방으로 향했다.
얼굴을 벽쪽으로 향한채 모로누워 자고 있는
아들녀석의 엉덩이를, 일어나라는 고함과 함께 손바닥으로 몇번을 찰싹!
때려도 아들녀석은 엉덩이만 들썩거릴뿐 일어날 기미가 없자
이번엔 손바닥에 힘을 실어 있는힘껏 엉덩이를 후려치며,

"이놈새끼! 안 일어나? 언능 일어나, 언능!"

참다못해 후다닥 일어나 앉은 아들 입에선,

"이 썅놈의 여편네! 아유~ 술냄새! 워서 술은 퍼 쳐먹고 들어와서
아들인지 남편인지 구별도 못하구 패구 지랄이야? 저리 안 나가?"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걷어 차듯이 후려 친 것은 가끔씩 아들 침대 에서 자는
남편의 엉덩이 였던거다.
덕분에 미운 남편의 엉덩이를 원없이 때려 봤다는 그녀의
깔깔거리는 웃음에 들고있는 술잔도 자지러진다.
술잔이랑 같이 웃다가..
그러다가..
운다!

열린 문 틈 사이로,
태양의 휘어진 꼬리를 억세게 잡고있는 그림자를 물리치며,
개선장군처럼 급하게 당도해 있는 어둠이 보였다.

"너 취했다, 가라! 니 신랑 지랄하것다.
이쯤이믄 너나 나나 오버 글라스다."

밍기적거리듯 일어서면서도 하는수 없다는 표정에,
집에 있는 신랑 입으로 들어 가는 저녁 찬거리거 보였다.
비틀거리며 앞장서는 친구를 급하게 따라가
손흔들어 택시 잡아 태워, 앉은 무릎 위로 만원 한장을 던져 주곤
뒤로 돌아섰다.
다시 뒤돌아 서서 멀어져 가는 택시를 바라 보자니,
한마디 축원이 냉큼 튀어 나왔다.

"미친년! 잘 살아라~"
 
 
牛 步



[이 게시물은 최관리자님에 의해 2010-03-31 20:52:15 감동글/좋은글에서 복사 됨]

Comments

임우순
좋은 글과 음악 참말로 고마우리.....
엄기준
감사합니다~~~
이명희15D
등단은 언제 할건가?

생생한 이야기가 피어오르누만..
오자진1D
저러다 태백산맥이나 토지같은 장편 뽑아  내는것은 아닌지
최해원
그러게 말일세 !! 정말 대단한 재주를 가진게 부러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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