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저녁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답니다.
평소와는 달리 울먹이는 목소리로 하셔서 조금은 긴장하였는데
오늘이 친정어머니 생일인데 처음으로 내일(토요일) 가족들하고
예배를 보고싶다고 하시면서 시간이 되냐고 물어보시는데
아뿔사 골프약속이 있어
부득이 일요일에 하면 어떠냐고 말씀드리고
여동생한테 바로 전화를 하여
어머니한테 전화를 드려 달래드리라고 하였답니다.
다행히 일요일에 전 가족이 모이기로 하였답니다.
한 번도 뵙지도못한 외할어니의 생신이라는 이유로
예배를 본다는 것이 좀 생소하지만
어머니를 위해서 하기로 한 것이라 생각하면서
동시에 어머니가 그토록 원하시는 것을
자식이 못해드린 것에 대해 반성해 보았답니다.
저희 어머니는 평안북도 강계군 후창에서 아버님과 결혼하기위해
홀로 내려오신 이후 38선이 막혀 영영 고아아닌 고아가 되셨답니다.
물론 결혼하시어 2남 1녀의 자식을 낳아
손자까지 보아 쓸쓸하지는 않으셨지만
어머님 마음 한 구석에는 이북의 가족에 대한 생각으로
늘 허전해 하셨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북도민회 여성회 부회장도 적극적으로 하셨고,
이북도민회 체육대회(제 모교인 신일고등학교에서 매 년 하였음)에 가셔서
빈대떡도 열심히 부치셨답니다.
어느 날 제 여동생이 저보고 들어보라고 테이프를 건냈답니다.
어머니가 가족모르게 KBS에서 이북에 계신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는 프로에 홀로 가셔서
울먹이시면서 편지를 읽으시는 것과
아나운서와 대담하는 것을 녹음한 테이프였답니다.
그 테이프를 들으면서 어머니에 대한 제 자신의 무관심 했던 것이
눈시울과 함께 내내 가슴을 무겁게 하였답니다.
이산가족 방문신청은 여러 번 하셨지만 탈락되었고,
백두산도 , 금강산여행도 다녀오셨지요.
그리고 탈북자 중 옥수수 국수를 판매하는사람을 도와
교육방송에도 방영되고
지금은 탈북자 중 어린 학생을 돕고 있는 것으로
실향민의 아픔을 달래고 계신답니다.
자식으로서 해 드린 것은 여행보내드리는 것과
돈을 들여 캐나다와 일본을 통해
이북에 계신 가족소식을 알아내는 것이었는데
결과는 연락불가로 나왔답니다.
이는 출신성분이 좋지않으면 고향에 없고
수용소에 격리되었을 것이라는 관계자 얘기를 들었지만
그 얘기를 충격받으실까봐 어머니에게 말씀 못드렸답니다.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어머니가 탈북자를 돕고 계시는 일을
저도 조금이나마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니 이따가 뵙겠습니다.
남승희 배상 [이 게시물은 최관리자님에 의해 2010-03-31 20:52:15 감동글/좋은글에서 복사 됨]


올해 구순이신데 작년에 이산가족 상봉에서 아들 딸 만나보고 오셔서 우리들에게 전해 주신 말씀이 게신데 이북의 생활상이 적나라하게 들어나는 부분과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했던 어른들의 비애를 우리 자식들이 얼마나 이해하겠는가? 이 글을 읽고나니 고향에 한번 만이라도 가보고 싶다고 하며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잠겨본다.
북에 두고온 부모,형제 이산가족 찿기도 한번 몬하시고 일찍이 가셨다네.
김일성이 일가 친척들이 한데 모여살면 말을 잘 안듣는다고 뿔뿔이 강제이주 시켜버려 고향땅을 밟는다해도 아무도 없을거라며 김정일 정권이 빨리 망해야 고향땅을 밟을수 있으며 금강산, 개성공단, 대북지원, 등등 김정일이 좋은일 시켜준다고 못마땅해 하시는 철저한 반공주의자 이시다.
하루속히 통일되어 살아생전에 이산의 아픔을 달랠수있는 그날이 속히 왔음 좋겠다 .
지금은 꺼내놓고 야그도 할 수 있지만, 우리 군생활 할때에는 이북에 친척이 있거나 연고가 있는 사람들은 남들이 알까 쉬쉬하며 가슴졸이며 사셨을텐데
울아부지께서 보병학교 입교한다고 인사하러 갔더니 니가 군에 있을 동안 만큼은 절대로 전쟁이 나면 안된다 ~~~ 만일 전쟁이 나면 니 사촌들과 서로 총을 겨루며 싸워야 하므로 !! 하시면서 기도해 주셨다네 !!
빨리 저것들이 사라져야 할텐디
ㅉㅉㅉㅉㅉ
가슴만 답답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