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과 전통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었고, 전쟁은 시대와 장소 교리와 전투방법에 따라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따라서 승패의 요인을 달리하여 왔다.
그러나 총칼을 들고 전장에 나가 싸우는 사람은 군인이며, 승패는 그 군의 전통이 어떠하냐에 좌우된다. 또한 군인의 능력은 그 나라 군의 전통 속에서 살아있어야 한다.
고대 그리이스의 도시국가인 스파르타의 어머니들은 전장에 나가 죽어서 돌아온 자식을 묻으면서 “나는 스파르타를 위하여 죽은 자식을 낳았다.”라고 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자식을 전사로 키워야만 남의 나라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사회여건이 전사를 키우는 스파르타의 전통으로 이어졌다.
중동전에서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아랍제국과 싸우면서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로마군단에 멸망당한 에루살렘에서 도망나온 960명의 유태인은 마사다 요새에 몸을 숨겼다. 로마군에게 포위당한지 수개월 후에 지도자인 엘리아잘의 최후연설을 들은 후에 전원 자살했다. 장교들은 임관식 때에 요새에서 엄숙히 임관선서를 하면서 조상의 얼을 읽는다.
6일 전쟁 시 미국의 이스라엘 유학생은 귀국하여 전선으로 달려갔고, 아랍 유학생은 귀국명령이 두려워 애인과 휴양지로 도망을 갔다. 이것이 대국 아랍제국과 싸워 이긴 저력이고 전통이다.
영국 에리자베스 여왕은 2차대전시 16살의 나이로 군용트럭 운전사로 근무했고, 부군인 필립공은 해군대위로 바다에서 싸웠다. 엔드류 왕자는 포크랜드 전쟁 시 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여 동료들과 같이 싸웠다. 넬슨 제독은 트라팔카 해전에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전사했다. 처칠은 1차대전시 해군장관 시절 다다넬스 전역의 실패를 자인하고 장관을 사임하고 전선으로 달려가 육군 소령으로 참전, 대대장과 여단장으로 솜무 및 베르당 전투에서 싸웠다. 전선의 전투경험이 그가 수상이 되고난 후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배운 자와 있는 자의 솔선수범이 영국군의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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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시 미군장성 아들 142명이 참전하여 35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