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르게 사는 법(4)-은둔자의 철학,쾌락주의
에피쿠로스 철학은 정원의 철학, 꽃밭의 철학이다.
은둔자와 예술가의 철학이다.
한 송이의 꽃에서 삶의 기쁨을 누리는 철학이 바로 에피쿠로스 철학이다.
에피쿠로스에 의해 아테네에서 창시된 이 철학은 헬레니즘 시대에 스토아 철학과 마찬가지로 그리스 도시 국가의 고전적 삶의 이상이 무너지고 개인이 공동체로 부터 소외되어 불확실한 세계로 내던져졌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철학이었다.
그러나 동시대에 생겨난 스토아 철학과는 물과 기름이었다.
에피쿠로스는 전체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개인의 삶을 희생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한 번 뿐인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이 세네카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황제같은 로마의 정치가가 지지한 반면 에피쿠로스 철학은 베르길리우스나 호라티우스같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정치적 야망이나 명예 보다는 정원에 핀 한 송이 꽃의 아름다움에 탐닉하는 사람들의 철학이었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서 살아라." 라는 에피쿠로스의 조언을 따랐다.
인간의 정치적 활동을 고상한 활동이라 보지 않았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도 없는 사회를 포기하고 내가 직접 다스릴 수 있는
나의 사적인 영역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려 하였다. 작은 일에 만족하고 기쁨을 찾았다.
자유로운 삶속에서는 육체의 쾌락과 마음의 즐거움 외에는 어떤 다른 것도 추구할 필요가 없었다.
"쾌락은 행복한 삶을 형성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종류의 쾌락을 무차별하게 추구할 수는 없다.
바람직한 쾌락의 판단기준은 오직 쾌락 그 자체이다.
순간의 고통보다 더 크고 지속적인 쾌락이 진정한 쾌락이며 한 순간의 쾌락이 순수하고 지속적인 쾌락을 손상시키고 더 큰 고통을 낳는다면 그 쾌락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쾌락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다시 쾌락이기에 에피쿠로스는 맹목적인 쾌락을 주장한 소피스트와는 달리 진정한 쾌락주의자이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동적 쾌락과 정적 쾌락으로 구별했다.
동적 쾌락은 결핍으로 부터 충족으로 이행할 때 우리가 느끼는 쾌락이고(소피스트들이 주장한 쾌락, 사람 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쾌락) 정적 쾌락은 마음에 불안이 없고 몸에 고통이 없는 평정 상태를 뜻한다.
에피쿠로스는 동적인 쾌락이 아닌 정적인 쾌락이 진정한 쾌락이라 주장했다.
고통도 불안도 없는 영혼의 절대적 평온함을 아타락시아(Ataraxia)라 한다.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아파테이아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의 배 위에서 태연히 잠을 청하는 예수의 모습에 비유한다면 아타락시아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밝은 태양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잔잔한 바다라고나 할까.
헐벗고 굶주리지 않으며 목마르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는 것이 육체에 대한 최고의 쾌락이라는 에피쿠로스 는 권력이나 명예 재산에도 관심이 없었다. "가난이 최대의 부유함이며 부유함은 최대의 가난"이라 했다.
에피쿠로스는 개인의 사사로운 관계를 중요시하여 우정을 강조하였다.
또한 미신을 멀리 하였다. 미신이란 정신을 예속하는 것이다.
안 믿으면 벌 받는다는 등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얻기는 커녕 인간을 무력감과 불안에 떨게 한다고 하였다.
모든 초자연적인 세력을 인간의 삶으로부터 추방하여 인간을 운명이나 신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였다.
신의 존재는 인정하여 "신은 영원한 존재이며 지극히 행복한 존재"라 하였다.
신은 행복한 존재이므로 인간의 일에 관심을 가질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이 존재하면 우리는 더 이상 존재 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은 산 자에게도 죽은 자에게도 아무 연관이 없다."
이 말로 에피쿠로스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려 하였다.
牛 步


감사합니다~~~
내일 보겠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