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가슴과 무덤
무엇이든 살아 있는 생물는 아름답기 마련이다.
하나는 심장쪽을 덮고
나머지 하나는 짝을 이루며 눈부시던 어머니의 가슴도
역할이 끝난 뒤에 오는 처연함 앞에서
감동적인 공헌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길게 하지 않는다.
가슴과 무덤이 닮은 것에 대하여
삶의 본능과 정욕의 봉긋한 모양을 본떠 만든 무덤을 만든 사유는
어떤 관계가 있나에 사고하는 버릇이 있다.
태어남과 죽음의 과정이란
눈도 뜨지 않은 신생아가 어머니의 가슴을 더듬으며 찾았던 것과
삶을 마치고 들어가는 곳의 모양이 같은 걸 보면
가슴과 무덤은 서로 시작과 끝에 존재하면서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 가까운 친척의 죽음으로
그 친척의 선산에 묘를 쓸 때
적당한 장소를 살펴 땅을 파는데 박힌 돌이 치솟아
그 자리를 비켜서 파다보니
그 집안 큰아버지의 가묘보다 약간 올라 간 자리였다고 한다.
파다 만 무덤 앞에서 자리 문제로 여지없이 마찰이 생겼다.
어떻게 조카가 큰아버지 묘보다 높이 올라 갈 수 있냐고
친척간에 언성이 올라가고
일꾼들은 망연히 앉아 일손을 놓고 있었고
조상의 무덤들은 낮은 침묵으로 햇살만 내리 받을 뿐 말이 없었다.
땅과 나무와 흘러가는 구름과 바람이
무슨 말인가 한 듯한데 알아 들을 수가 없었고
고함소리 때문에
막 죽은 자의 서러움이 환상으로 나타나 보는 이 마음만 안타갑다.
‘난 아무데나 묻혀도 된다, 돌땅이든 뿌리가 얽힌 땅이든 상관없다’고
한 마디 해 주었으면 편할 걸......
산 자들이 그렇게 끔찍하게 받드는 죽은 자의 무덤이
그토록 강한 신통력이 있다면 왜 말인들 못하겠는가...
유교적 전통에 비추어 보면
천륜과 인륜이 무너지는 것 같아 어른들이 당연한 말씀이고
돌을 피하다 보니 그리 됐기로
툭 하면 조상 묘터를 탓하는 극치가 싫어서라도
화장 문화가 일반화 되었음이 좋겠다고 속으로 읊어보았다.
먼저 태어난 순서대로 대접을 받는 산 자의 규칙을
죽은 자에게도 적용해야 하는 것도
산 자들의 잣대 때문에 일어나는 분쟁이다.
아무도 모른다.
젖가슴이 쭈글해진 이유도
무덤의 사연에 대해서도 다 이해 하려면
흘러가는 시간을 희생해야 하기에
잘 정돈된 무덤과 탄력 있는 가슴에만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산 자의 가장 어리석은 시선이 아닐까.
牛 步
[이 게시물은 최관리자님에 의해 2010-03-31 20:49:30 감동글/좋은글에서 복사 됨]


좋은 명절되세요~~~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자는 말이 많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