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 고마운 마음으로--보은행

감동글

노상 고마운 마음으로--보은행

권영택 8 59

덕일 에세이

노상 고마운 마음으로-보은행報恩行


천축잉어란 바닷물고기가 있답니다.
특이하게도 어미물고기는 산란하자마자 바로 떠나고,
아비물고기가 그 알이 부화할 때까지 계속 입안에 넣고 물고 있다지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건 당연지사.
망망대해에 수없이 존재하는 적들로부터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겠지요.
그리고 부화한 새끼들이 떠나면 비로소 아비고기는 자유의 몸이 되지만,
기력이 쇠잔하여 곧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서글픈 이야기.

지난 5월 어느 날 새벽녘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주위의 모든 분들이 호상好喪이라고들 했습니다. 저 또한 그리 생각했습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부모자식 간에도 통용되는 성어였습니다.
그간 우리 5형제는 서서히 아버지를 떠나보내실 준비를 해왔습니다.
노환으로 힘에 부치시는 아버질,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질 언제까지나 함께 하자고 할 순 없잖습니까?
함께 있다고 해서 아버지의 고통을 우리가 대신할 수도 나눌 수도 없는 일.
아버지 또한 진실로 고통과 질곡桎梏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검고 거친 살갗과 뼈만 남은 앙상한 다리를 조심스레 만지면서
잠이 드신 아버지를 내려다본 적이 있습니다.
얼굴엔 저승꽃 만발하시고, 최근 몇 년간 통증과 싸우시느라
이젠 지칠 대로 지친 나의 아버지.
새끼들을 부화시킨 후 바닷말이 무성한 심연深淵에서
조류潮流에 이리저리 몸을 맡긴 채 죽음을 기다리는
천축잉어의 모습이 바로 그때 내 아버지 모습이었습니다.

나의 아버지. 삼일만세 운동이 일어나던 해
일제점령기이던 1919년생으로 올해 연세가 92세입니다.
그 시대 아버지들이 다 그러하셨겠지만,
나의 아버지만큼 근대사의 험한 소용돌이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오신 분은 그리 흔치 않을 것입니다.
태평양전쟁 참전, 해방, 육이오 전쟁, 사일구, 오일륙 등 사건마다
연관되어 고통을 받아오신 말 그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였던 분이었습니다.

어머니와 결혼 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일제에 의해 강제 징병되어 동남아 전선에 투입,
대만을 거쳐 인도차이나반도로 이동 중 통킹 만에서 미군의 폭격을 받아 격침,
겨우 생존한 10여 명과 함께 대나무(구명조끼 대신 굵은 대나무 통을 지급받음)에 의지하여 구사일생으로 베트남 상륙,
겨우 본대에 합류하여 태국 북부 산악지대를 거쳐 미얀마로 이동 중
일본의 무조건 항복, 영국군에게 체포되어 필리핀 연합군 수용소에 수용,
해방 1년 후 천신만고 끝에 귀국합니다.

그러나 국내 사정 또한 아버지를 질곡에서 꺼내주질 않았습니다.
독립 후 좌우익의 대립, 사상의 대립은 급기야 집안에까지 미쳤고,
1950년 육이오 전쟁 발발, 피난과 복귀 과정의 연속에서
겪은 수많은 고초 등등. 비교적 간단하게 소개했지만,
소설로 써도 열권은 넘을 거란 어머니 말씀처럼 아버지의 일생
그 자체가 하나의 대하소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진 늘 가족에게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비록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집안에 감나무, 고욤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앵두나무 따위를 심어
우리 형제들의 입을 심심치 않게 하셨고,
뒤뜰 살구나무 아래에 그 시대로선 보기 힘든
야외 식탁까지 손수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호상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간 자식으로서 아버지에게 어느 정도 효를 해 왔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지금 떠나고 계시지 않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의 부모에 대한 효심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부모님에 대한 은혜를 잊고 살지나 않았는지 자성自省케 합니다.

은혜는 평생으로 잊지 말고 수원은 일시라도 두지 말라.
효순은 심덕의 대원이요 백행의 근본이며, 보리행의 으뜸이 되는 것이니라.<회당>

사람들은 가끔 부모의 자식 사랑은 당연한 것이라 여겨
그 은혜를 잊고 살아가지만,
사람으로서의 참 가치가 ‘보은행報恩行’에 있음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첫 행 말씀을 풀어보면,
은혜는 곧 삶의 길이요 수원讐怨은 죽음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삶이란 곧 은혜의 활동으로서,
올바른 삶이란 은혜 속에서 살고 있음을 뜻하며,
수원이란 삶을 거역하고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뜻입니다.

보은행의 삶이란 노상(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감사하는 마음은 스스로 만족하는 삶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감사해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어찌 부모님의 은혜만 은혜라 할 수 있겠습니까?
잡초라 하찮게 여기는 풀 한 포기도 땅을 품고 살아가는 벌레들이나
새들의 먹이가 될 수 있고, 그 자양분으로 활력을 얻은 벌레나 새들이
땅을 풍요롭게 하고 자연을 아름답게 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누구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게서도
은혜를 입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삶 자체가 알게 혹은 모르게 어느 것으로부터든지
은혜를 입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생들은 그 고마움을 잊고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진 것부터 우선 고마운 일인데도
그 고마움을 모르고 있습니다.
물속의 물고기가 물의 소중함을 모르듯,
뭍에 사는 생물들이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의 삶을 이어주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살아갑니다.
허나 보은행의 길은 청정한 마음 없이 걸을 수 없는 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다운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이 청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보은행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나야만 진정 보은하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보은하는 마음은 또한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유도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중생들은 은혜의 산물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법계]는 보은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습니다.

보은의 마음은 삶의 의욕을 갖게 하지만, 은혜를 잊으면 삶이 팍팍해지며,
원망하는 마음이 충만하면 삶이 조화를 잃고 맙니다.

노상(늘) 감사하는 마음은 보은의 마음을 일으킵니다.
보은 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은 스스로의 삶을 만족하며
원망하는 마음을 배격합니다.
그리고 보은하는 마음의 원천은 바로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정 그 중에서도 부모님에 대한 효순입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새삼 일깨웠던 진리입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또 과연 내가 아버지 살아계실 제 효를 다 했나 자성하며, 노계盧溪 박인로朴仁老 선생의 시조 한 수 올립니다.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Comments

임우순
아주 감동적인 글이네....돌아가신 아버지를  한번 불러보고 싶다....가끔 꿈속에서 뵙는데 요즘은 꿈에도 잘 보이시질 않는다...효가 너무나도 부족한 자식들...살아계실때에 잘 해드려야지...돌아가신다음에 아무소용이 없구나...부모님이 더 생각나게 하는 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감사합니다....
유재황
그려! 살아계실때 잘 하세나,  오늘 따라 돌아가신 엄마가  그리워지네.  아버님하고는 매일통화를하면서  전화목소리로 건강상태를 확인하곤한다오,  난 밤에라도 아버님 목소리가 걱정이되면 내려가곤했더니  최근 군에간 아들이 편지에 아빠가 할아버지한테 한것처럼 저도 아빠한테 잘하겠노라고 썼더라구, 그래서 아하! 백마디 말보다 애들보게행동으로 부모한테 효도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오,  암튼 좋은글  고마우이.....
엄기준
아부지.엄니 그립습니다~~~
김형목
좋은 글 고마우이 ~~~~~~
영택이 자서전이네 그려 !
효행수족이면 덕행이 본이라,
아무튼 부모님이 살아 생전에 마음편하게 모시는 것이 효행일세.
양가 부모님이 안계시니, 형제자매나 자녀들에게 신경이 쓰이더구만 !
이웃사촌들과 격이없이 지내며 사는것이 인생 산락 인것 같다.
동기생들 !
우리의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혹자들은 한번 내 밷는 말은 꼭다시 되돌아 온다고 합니다.
오늘은 순수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내 주변을 한번 돌아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라 !
너무 삶에 허덕이며 살지말고,
중년의 넉넉함으로 중후한 신사로 살기를 바랍니다.
최해원
보은, 감사, 효도, 삶, 의욕, 은혜, 조화, 만족, 죽음, 그리움 ~~~~~~~~~~
정용상
당신은 효자이십니다.
최종왕
부모님 돌아가시기전 어느날 찾아뵌 어머니 아버지
화내실 일이 있어도 자식들에게 화를 내지않고
옛날의 당당함이 사라지신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내 자신이 화가 나던지........
이승준
참으로~ 감동적인 얘기..
가슴 아린 얘기네요..

살아 계실 때 잘~ 좀 하세요..

우리 같은 고아는 효도??  하고 싶어도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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