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 농지개혁이 마무리 된 때는 1950년 4월 20일이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두달전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농지개혁 작업을 마치게 된 것이 글자 그대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어느 경제학자가 말하기를 그때 농지개혁을 완성하지 못하였더라면 6.25 전쟁에서 패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 지적하였다.
무슨 말인가 하니 농지개혁이 제때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6.25 전쟁에서 지방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으로 인한 소작인인 농민들의 봉기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군이 남침할 때에 서울만 점령하고 나면 이에 호응한 민중 봉기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남한의 공산화를 쉽사리 이룰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전쟁 직전에 소작인들에게 농지를 분배하여 주었기에 자신의 농지를 받게 된 농민들이 받은 땅을 지키기 위하여서라도 북한군에 대항하여 싸웠다. 그래서 남한이 공산화되지를 않고 지켜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토지개혁을 할 때에 좀 더 철저히 하지를 못하고 취약점을 남긴 채 한 것이 훗날 어려움을 일으키게 되었다. 토지라면 농지, 산지, 대지 세 가지가 합하여 토지라 한다. 조봉암 장관이 주도한 개혁작업팀이 마련하였던 원안에는 이들 세 가지 모두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회에서 개혁안이 통과될 때에 지주들의 로비가 먹혀들어 산지와 대지는 개혁 대상에서 빠지고 농지만이 개혁되게 되었다. 그때 집 짓는 땅인 대지(垈地)가 빠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인 대지 값의 상승으로 인하여 주택값이 오르게 되고 주택값이 오른 탓으로 서민들이 집을 마련하는 데에 어려움이 뒤따르게 되었다.


그랬었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