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르게 사는 법(7) - 동정심
18세기를 가리켜 계몽주의(Enlightenment)시대라고 부른다.
계몽이란 어리석고 무지몽매한 인간을 가르쳐서 깨우친다는 뜻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권을
강조함으로써 유럽의 중세 시대를 지배한 종교 신학의 독단 교시에서 벗어나고자 노력 하였다.
영국의 존 로크로부터 시작되어 몽테스키외, 볼테르 , 흄, 루소, 칸트, 헤겔 등이 계보를 이었다.
계몽주의 사상은 시민들로 하여금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키게 하였다.
오늘의 철학 이야기는 데이비드 흄(1711~1776)이다.
계몽주의는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의식하게 되었으며 세계는 나에 의해서 감각 되고 사유되는 대상
(Object)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또한 '나'에 대한 물음이 철학의 근본 물음이 되었다.
이때까지의 윤리학은 정념과 이성의 싸움에서 이성의 편을 들어주었으나 흄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고 또 노예이어야 하며, 정념에게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 이외에는 결코 아무 직무도 탐낼 수 없다."
인간을 선하게 만들고 악하게 하는 것은 이제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나 정념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도덕성(morality)은 본질적으로 어떤 종류의 감각 즉 도덕감(moral sense)으로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흄은 인간의 도덕적 능력을 이성에서 독립시켰다.
윤리학 또한 형이상학의 그늘에서 벗어나 고유의 자율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도덕성은 판단된다기 보다는 느껴진다. '도덕의 본질은 감각적 느낌(feel)'이라는 말이다.
그럼 어떤 종류의 감각이 도덕의 원천일까?
그것은 고통과 쾌락(Pain &Pleasure)이라 했다.
쾌락은 언제나 긍지와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고통은 경멸과 증오를 일으킨단다.
쾌락은 유덕이고 고통은 악덕 이다.
쾌락과 고통은 우리의 마음속에 본성적으로 주어져있는 근원적 능력인 동정심 (Sympathy)때문이란다.
동정심은 그리스어의 sympatheia에서 온 것이며 같이(with) 라는 전치사에 감각이나 정념을 뜻하는 pathos
즉 파토스를 공유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감각능력이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조율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은 고통스런 표정이나
몸짓 혹은 소리같은 외적 징표를 통해 우리 마음에 일정한 파장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흄은 동정심의 발생은 현악기에서 한 현의 떨림이 다른 현에 전달되는 것에 비유 했다.
따라서 동정심이야말로 도덕성의 참된 근거라 했다.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 깔려있는 이 동정심으로 인해 이제 도덕은 신의 일이 아니라 인간의 일이 되었다.
아! 햇갈려,,,,,,,,,,,,,,,,,,,
牛 步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