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화시중의 미소가 던진 파장
엊그제 가볍게 한 잔 먹고 일찌감치 들어온 탓인지 오늘 하루 종일 몸과 마음이 무거웠다.
집에 일찍 들어온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잠시 누웠다가 천근만근 무거워져 오는
윗 눈을 감당하지 못하고 끝내 아홉시 뉴스를 뒤로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바닥에 눕자마자 몸은 마치 블랙홀에 빠져들 듯 이 세상과 격리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빠져 들어간 무한한 꿈의 세상은
나의 곤한 육체를 무중력상태로 붕붕 떠다니게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느닷없는 벨소리가 급히 나를 현실세계로 끄집어낸다.
혼탁한 정신으로 핸폰의 폴더를 열었더니 저쪽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거 훌훌 버리고, 오늘 푸른 밤 그 별 아래 이제는 더 이상 얽메이긴 우리 싫어요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나 : “(잠기고 짜증난 목소리로) 여보세요”
저쪽 : “여보슈~ 현씨! 자남?”
“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오늘 푸른 밤 하늘 아래로”
나 : (눈을 부스스 비비며) “어? 이게 누구여?”
저쪽 : “그려. 쓰벌 나요. 이 노래 들리남? 의정부 푸른밤이요.
현씨가 갑자기 보고 싶어 함 불러보고 있소. 왜 자는 사람 깨워 기분 나쁘요?“
나 : “아니. 기분 무쟈게 조아. 근데 한 잔 찐하게 했나 보네?”
저쪽 : “그래. 이 빌어먹을 세상 무쟈게 기분 조아 한 잔 했소.”
<노래 소리는 계속 들린다> “도시의 침묵보다는 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
“어이 현씨! 애모 노래 함 들어 볼껴?”
나 : “그려 함 불러봐.”
반주가 흘러나온다.
저쪽 : “현씨! 요번 주 토욜 시간 좀 내슈. 모처럼 얼굴 함 봅시다.
○○이. ○○이, ○○이, 그리고 누구 누구 다 용발이 홍탁집에 불러내어 모처럼
진짜루 모처럼만에 회포 함 풀어 봅시다.”
나 : “그러자구. 내 꼭 시간내리다. 암 내고 말고”
저쪽 : “이여사도 같이 오구료”
나 : “알았어.”
저쪽 : “이제 용무가 끝났으니 이보슈 현씨! 전화 끊어”
나 : “건 사람부터 끊어”
저쪽 : “아니 현씨부터 끊어”
나 : “아니 니부터 끊어”
“딸끄락”
그새 정신이 돌아온 나는 어두운 방안에 멍하니 앉았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새벽 1시다. 다시 자려고 누웠다.
근데 이런, 제기럴. 잠이 안온다.
배란다 밖 어두운 조명에 비춰진 흐릿한 천정만이 내 시야에서 흐물거릴 뿐이다.
지독한 외로움으로 사무칠 나이를 훌쩍 넘겨버려서 그런가?
이 밤 홀로 누워 있다는 생각에서 조차도 내 감정에 복받쳐 오는 그 어떠한 것도 느낄 수없다
.전화기를 통해 전해오던 끈끈한 입김의 여진만이 밋밋한 시간을 죽이고 있을 뿐이다.
인간사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그저 꽃피고 지는 것만 바라보며 살아도
(不言人是非 但看花開落)
이 망할 넘의 세상은 서로 헐뜯고 시기하며 오해하고 오해받으며 살기 십상이건만,
그런 세상에서 그저 염화시중의 미소만 던져도 반갑고 좋을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거다.
그렇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인가?
맞다. 행복한 사람이다. 순간 내 얼굴에 얇은 미소가 잔잔히 흐른다.
이번 주말은 모처럼 그들과 함께 우리의 중년을 위하여 잔을 힘차게 들 수 있을 것 같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그 행복한 순간을 미리 꿈속에서 그려보고 싶어진다.
헝클어진 이불을 정리하고 다시 뒤집어쓴다.
200.4월 어느날 새벽에 牛步 玄 重 載
[후기]
이제 부처님 오신날도 몇일 남지 않았습니다.
拈華示衆 의 微笑 (염화 시중의 미소)는
어느날 부처님은 그간의 오랜 설법과 교화 후에도
깨우친 제자들이 없음에 뭔가 새로운 혁신을 시도키로 하였슴니다.
그래서, 어느날 이른 새벽 산책길에 호수에 들러 연꽃 하나를 꺾었습니다.